레스 푸블리카 (8)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의 총 취업자 수 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20.1퍼센트로 OECD 국가 중 5번째로 높다. 우리가 흔히 비교의 벤치마크로 삼는 미국은 6.6퍼센트, 일본은 9.6퍼센트, 독일은 8.7퍼센트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2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통계청, 조선일보 “자영업자 비중 사상 첫 20% 깨질듯…미일중보단 여전히 높아.”) 이는 선진국형 경제로 갈수록 자영업보다는 기업, 그 중에서도 대기업에 고용된 근로자들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자영업자 비율이 높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된다. 자영업이라는 근로형태 자체에 도덕적 결함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영업, 그 중에서도 영세한 규모의 자영업은 자영업자 개인에게 지나치게 많은 위험부담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연간 100만건 이상(1,007,650건)의 폐업이 기록되었다. 이는 자영업자들이 얼마나 치열한 생존경쟁의 위기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자영업과 임금근로자의 리스크 형태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자영업의 경우 소득 리스크를 본인이 그대로 안게 된다. 장사가 잘 되면 무제한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겠지만, 장사가 잘 안되면 그만큼 자신이 가져가는 돈이 줄어들고 심지어는 빚을 지거나 망할 수도 있다. 반면에 임금근로자는 고용주에 대하여 일종의 채권자의 위치에 있다. (임금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 물론 회사의 매출에 따라 성과급이나 고용유지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사가 안 된다고 해도 원칙적으로 회사(고용주)는 직원에게 급료를 지급할 의무를 갖는다. 소득 리스크라는 측면에서 자영업과 임금근로자는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업황에 따른 리스크를 질 능력(개인의 역량, 자본, 인맥 등)을 가진 사람이 자영업을 하고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은 회사, 그 중에서도 큰 회사에 고용되어 안정적으로 소득을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의 비중이 높은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합리적인 선택을 못 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소위 ‘대공공(대기업, 공기업,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소득을 지급하는 곳에 고용되기를 사람들이 선호한다는 점을 볼 때 우리나라의 근로자들도 내가 위에서 한 것과 같은 리스크 매니지먼트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영업 비율이 높은 이유는 큰 회사나 공공기관, 정부에 사람들이 고용되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창업을 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생계형 창업인 것이다. 40대 중후반에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연금 수령까지의 생계유지를 위해 치킨집을 연다는 것이 가장 잘 알려진 생계형 창업의 스토리이다.
즉, 이런 경우는 연금 수령 전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었더라면 굳이 창업을 하지 않았을 사람들인 것이다. 자영업은 그 자체로 소득변동의 리스크를 온몸으로 지는 일인데, 어지간히 장사에 미친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이다. 우리나라의 높은 자영업 비율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창업에 미쳐서가 아니라 대기업이 그만큼의 고용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밀려난 것에 더 가깝다.
높은 자영업자 비율은 단순히 개인의 소득 불안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높은 자영업의 폐업 건수가 말해주듯 많은 자영업자들은 언제 망할지 모르는 처절한 생존경쟁의 장에 내던져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에게 가격 인하, 생산성 개선, 혁신과 같은 높은 수준의 경영상의 요구를 하기는 어렵다.
즉, 자영업자들에게 경영상의 혁신이나 시장에서의 창조적 파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물론 개중에는 생존의 위기 속에서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천재적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상황이 구조적으로 혁신을 저해하는 환경으로 작용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또한 신규 창업자의 등장, 경쟁업자의 기업가 정신 발휘, 기술혁신과 같은 시장에 활기를 돌게 하는 여러 사건들은 이런 생계형 자영업자들에게는 기회라기보다는 위협으로 다가갈 가능성이 더 높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제발 내일도 무사히.” 이지, 슘페터가 말하는 것과 같은 창조적 혁신은 능력 밖의 일이다. 따라서 이들은 혁신을 옹호하기보다는 혁신을 반대하는 집단이 되기 쉽다.
즉, 이런 상황에서는 자영업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서비스 산업과 같은 분야에서는 사실상 혁신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기존의 자영업자들이 “생존권 보장”을 이유로 격렬하게 반대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기도 하다. 혁신이고 나발이고 간에 당장 자기 밥그릇이 뺏기게 생겼는데 머리에 띠를 안 묶겠는가?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한계상황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일반 소비자, 잠재적 경쟁자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도 처음에는 소비자들을, 사회 전체를 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이 경쟁할 때 생존을 위해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일부 가격담합이나 “한놈만 걸려라”식의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신규 진입자에 대한 사보타주와 같은 안 좋은 사례들이 간혹 목격되는 것은 이러한 이들의 절박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영업자들에게 도덕적 비난을 해선 안될 것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집어서 본다면 자영업자들로부터 피해를 보는 집단(소비자, 잠재적 경쟁자 등)이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가장 가진 것 없는 자들끼리 피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서글픈 상황이 우리나라의 현실인 것이다.
이제 생계형 자영업자의 포화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 정치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자영업자의 과포화 상태가 소수 기득권자들을 제외한 사회 전체에, 심지어는 자영업자 본인들에게도 출혈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