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푸블리카 (9)
최근 전세계적으로 부활하는 권위주의와 부족주의 정치의 부상과 같이 등장하는 하나의 바이브가 “배신자” 정치인에 대한 응징이라는 서사이다. 권위주의와 부족주의 정치를 옹호하는 데마고그들은 하나같이 배신자를 설정하고 대중에게 그러한 배신자를 응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열광적인 지지자들은 배신자를 응징하자며 로마시대 검투사 경기를 보는 군중들처럼 소리를 질러댄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배신이 정치에서 왜 잘못인지 잘 모르겠다. 배신은 정치와 전쟁에서 가장 오래된 전술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상의 영웅들 중 배신이라는 악덕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가 아주 위대한 영웅이라고 찬미하는 사람들조차 권력을 쥐는 과정에서 숱한 배신을 자행했다.
잘 생각해보면 그 정치가가 얼마나 높은 뜻을 가지고, 일생에 걸쳐 고귀하게 행동했는지가 중요하지 지엽적인 배신이라는 사건 자체가 그의 평가를 바꿀 만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치란 말 그대로 죽느냐, 죽이느냐의 처절한 투쟁의 장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는 경쟁자를 직접 죽이는 일은 드물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정치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허용된 가장 처절한 투쟁 중 하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민주공화국의 국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그 정치가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얼마나 봉사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동료 정치인들을 다소 배신하는 비열한 행동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 동료 정치인들에게 불쾌한 일일 뿐이지 우리와 같은 일반 국민과는 무관한 일이다.
물론 배신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이 국민과 국가를 배신하는 죄를 저질렀다면 그에 대해서는 처절하게 응징해야 할 것이다. 간첩행위를 한다거나, 위임받은 권력을 남용했다던가 하는 그런 문제들 말이다. 하지만 정치가들 내부의 권력다툼에서 한 정치인이 다른 정치인을 배신했다 한들 그게 국민의 입장에서는 뭐 그렇게 대수로운 일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최근 정치가들이 “배신자”라는 키워드로 대중으로 하여금 특정 정치인에게 분노하도록 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주권자인 국민으로 하여금 특정 정치인에게 감정적으로 동조하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의 정치적인 꼭두각시처럼 되도록 하는 아주 악질적인 전술이라고 생각한다.
아닌 말로, “배신자” 어쩌고를 부르짖는 정치인에게나 그 배신이 뼈아픈 것이지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배신을 했건 안했건 국민을 위해서 얼마나 일했는지가 중요한 일이 아닌가? 왜 정치인의 입장을 일반 국민들이 이해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헌법상 주권자이다. 정치인들은 그저 우리의 권리를 대신하여 정치를 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 정치인들은 우리를 위해 일하는 존재이지, 우리가 자연인이 아닌 공인으로서의 정치인들의 기분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권리를 잘 보호하고 공동체를 잘 이끌어 나가는가이다. 그들 사이에 있었던 사소한 분란(배신)을 가지고 우리에게 고자질을 해봐야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정치인들은 국민 위에 서는 존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중에서도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해 얼마나 잘 일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되어야지, 그가 그 과정에서 사소한 정치적 책략(배신)을 저질렀는지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 사이의 ‘사소한’ 드라마가 정치인이 국민을 호도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