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자민당 총재 당선과 한일관계

레스 푸블리카 (12) (특별편)

by 이그나티우스

2025년 10월 4일 토요일, 다카이치 사나에 중의원 의원이 자민당 총재로 선출되었다. 내각책임제 하의 일본 헌법 특성상 큰 이변이 없는 한 그가 이시바 시게루 현 총리를 이어 차기 내각총리대신으로 선출될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사나에 신 총재에 대하여 한국 내에서 걱정의 목소리가 많이 있다. 극우 인사가 일본 총리가 되어 한일관계가 경색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걱정에는 일리가 있으며 나도 그가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을 공격하는 발언이나 정책을 하지 않을지 걱정이 없지 않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먼저 다카이치 사나에 본인이 최근에는 한국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톤다운을 하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 과거에 한국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던 것과는 달리 이번 총재선을 앞두고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을 계속했다. 물론 본심이야 어떤지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정치인이 그렇게 방향전환을 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즉, 지금 현재의 상황만 놓고 보면 다카이치 사나에가 일본 현지의 과격한 혐한류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음으로 일본 현지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흔히들 일본 사람들은 스스로의 나라를 공기(空気)의 나라라고 자조적으로 표현하고는 한다. 공기라는 단어는 영어로 번역하기에는 까다롭지만 한국에는 아주 완벽한 대응어가 있는데, 바로 “분위기”이다. 즉 일본에서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분위기를 살펴 알잘딱깔센하는 것이 처세에 있어 중요한 원칙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 전체에도 해당되는 말로, 일본사회의 현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재 일본사회를 지배하는 공기(분위기)가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 대한 일본 사회의 ‘공기’는 어떤 것인가?


나는 이것을 살펴보기 위해 일본 대형 외식업체들의 이벤트를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본 대형 체인 레스토랑들이 2025년 내내 진행했던 것이 “한국 페어”이다. 즉, 한국식 기간한정 메뉴를 출시하여 이벤트를 여는 것이었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많은 업체들이 이런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2019년의 경색된 한일관계 당시 한국에 관한 것들은 가급적 입에 올리지 않으려 일본 현지 업체들이 전전긍긍했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2024년의 홍백가합전이다. 홍백가합전은 매년 12월 31일 제야의 종이 치기 직전에 일본 NHK가 방송하는 연말 가요대축제인데, 이 프로그램에는 그해 일본 가요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전에도 일본인 멤버가 있는 트와이스와 같은 그룹이 홍백가합전에 출전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2024년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한국 아티스트들이 출장했다. 산업계와 마찬가지로 미디어 역시 2019년경 한일관계의 경색 당시에는 가급적 한국 아티스트의 출연을 꺼렸던 것과는 굉장히 비교되는 대목이었다.


즉, 현재 일본 사회의 ‘공기’는 “한국과 일본은 교류협력 관계이다.”라고 읽어야 한다. 한국과 일전을 불사할 듯하던 2010년대 후반의 공기는 지금은 많이 누그러진 상태이고, 이제와서 한국인에게 공공연하게 헤이트스피치를 쏟아내는 것은 약간 공기를 읽지 못하는, 그러니까 분위기 파악이 안되는 행동으로 일본 사회에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총리대신은 사실상 제1의 권력자로 그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총리가 전제군주는 아니다. 그 역시도 사회의 분위기에 맞추어 행동하지 않으면 대중의 지지와 이해를 얻기 힘들다. 소수의 혐한류 극우세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제는 한국과 교류할 때”라는 분위기를 갖고 있는데, 총리 혼자서 한국과의 대립각을 세운다는 것은 ‘공기’에 반하는 일이다.


세번째로 살펴볼 것은 현재 자민당이 소수여당이라는 것이다. 현재 일본 중의원(일본은 참의원과 중의원 양원제이지만 입법에 있어서의 실권은 중의원이 갖고 있다.)은 정원 465석 가운데 자민-공명 연합이 220석으로 제1당으로서 여당으로 집권하고 있다. 즉, 여소야대의 국면이라는 것이다.


보통 내각책임제 국가에서 여소야대의 상황이라면 연립정권을 수립하는 것이 보통인데 현 이시바 정권은 특이하게도 소수여당인 상황에서 사안별로 야당, 무소속과 연대하여 곡예처럼 정권을 운영해 왔다. 이것은 국민민주당 등 중도우익계 정당과의 연립이 실패한 부분도 있겠지만 오랜 경험과 연륜을 가진 이시바 시게루 특유의 정치술이 빛을 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다카이치 사나에는 이시바 시게루가 아니다. 그는 개혁성향으로 중도파에도 어필할 수 있으며 대중적인 지지도도 높은 이시바와 달리 강경 보수 성향으로 유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도보수에 가까운 국민민주당이나 입헌민주당과의 연계 플레이가 어느정도 가능할 지는 미지수이다.


간사이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강경보수 성향의 일본 유신의 회(이하 유신회)의 경우 다카이치 사나에와 합이 맞아보이긴 한다. 하지만 잘 뜯어보면 유신회의 인사들은 스가 전 총리와 교분이 깊은데 스가 전 총리는 이번에 총재선에서 낙선한 고이즈미와 연대관계에 있다. 즉, 유신회 역시 다카이치와의 연계에 있어서 장벽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애초에 현재 당연한 상수처럼 되어있는 공명당과의 연합의 미래조차 불분명하다. 공명당은 자민당과 일심동체인 것처럼 움직여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개의 정당이다. 이들은 온건보수, 평화주의 노선을 지지하고 있으며 다카이치 사나에의 정치관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정당이다. 물론 당장 자-공 연합이 깨진다는 소식은 없지만 철학의 차이로 인해 연합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정을 인지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다카이치 신 총재는 최근 참정당, 보수당 등 극우계 정당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지만 이들은 합쳐도 10석이 채 안되는 의석을 갖고 있어서 연대를 한다고 해서 자민-공명 연합이 다수당이 될 수는 없다.


즉, 다카이치 사나에는 이시바 총리처럼 절묘한 정치력을 발휘하여 연정 없이 사안별로 야당, 무소속과 합의하에 정권을 운영하든지, 아니면 인사권 등을 일부 양보하고 국민민주당이나 유신회 등 야당과 연립정권을 꾸려야 한다. 만약 그것이 안 된다면 중의원을 선거하고 다시 총선거를 해서 국민의 신임을 다시 받아야 한다.


즉, 어느쪽이건 다카이치 신 총재 입장에선 녹록치 않은 것들 뿐이다. 우리나라 일각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그가 극우적인 드라이브를 밀어붙이거나, 한국에 대하여 적대적인 행위를 하기에는 우선 일본 국내 정치의 상황이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은 상황인 것이다. 다카이치 신 정권이 들어선다면 일본은 대외정책보다는 우선 내각 자체의 존립을 위해 사안별 연대건, 연합이건, 해산총선거건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 정치의 기류 변화이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자유당과 민주당의 연합정당으로 자유당계의 보수 본류(온건보수)와 민주당계의 보수 방류(강경보수)가 오랫동안 권력투쟁을 해온 역사가 있다. 그러던 것이 2000년 ‘가토의 난’이라는 사건으로 보수 본류(온건보수)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가토의 난이란 온건보수의 실력자인 가토 고이치와 그 일파가 야당의 내각 불신임안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정권 흔들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건이다. 이후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고이즈미, 아베 등 강경보수의 색채를 지닌 총리들이 오랫동안 집권하면서 한일관계가 꾸준히 경색되어 왔다.


(참고: 물론 보수 본류와 방류의 구분은 역사적인 것에 가깝고 현재도 그와 같은 명확한 구분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민당 내 온건보수와 강경보수의 역사적 차이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그러한 개념을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2021년 온건보수의 기시다 후미오가 오랜만에 총리대신 직을 차지하면서 분위기가 일변했다. 오랫동안 비주류로 밀려났던 보수 본류에 해당하는 파벌과 인사들이 대거 정치의 중심으로 속속 복귀하기 시작했다. 이후 자신의 계파가 해체되며 총리가 되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관측까지 있었던 비주류의 대표주자 이시바 시게루까지 총리직을 역임하면서 일본 정치의 분위기는 더 이상 보수 방류(강경보수) 일변도의 흐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최근 일본 정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정치헌금 부실기재 문제로 강경보수의 아성인 아베파의 의원들이 다수 선거에서 낙선하거나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는 등 영향력이 크게 약해진 상태이다.


즉, 일본 정치권의 분위기 자체도 2차 아베 내각과 같이 강경보수가 일방적으로 헤게모니를 쥐고 흔드는 상황은 더 이상 아니라는 추론이 가능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다카이치 신 총재 시대에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현재 한국과 일본은 공통의 적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 미국, 정확히는 트럼프 행정부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과 일본에 대해 거액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관세협상의 반대급부로 거액의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 시장에 많은 물건을 수출하면서 동시에 현지 공장 설립 등 직접투자도 진행하고 있어 미국의 요구는 기업과 국가 전체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은 어느 정도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측면이 있다. 양국이 느슨하게라도 연대할 경우 미국의 공격에 대비한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메리트가 있다. 이시바 내각도 한국의 이재명 정부와 대미협상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시바 총리는 1년이라는 짧은 집권기간 동안 한국과 2번이나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한일관계에 있어 상당히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미국의 기류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무리 정치인이 개인적으로 한국에 부정적인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러한 국제정치의 역학관계 변화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일관계는 여러 대립하는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기본 가치를 공유하고, 서로 문화적으로 활발히 교류하는 우호적 인접국가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일본의 극우세력, 혐한류가 득세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자민당 총재선 한번으로 한일관계가 다시 경색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는 아직 시기상조일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정치권의 부침과는 무관하게 양국의 평화롭고 상호호혜적인 교류가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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