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통령은 언제나 격노하는가?

레스 푸블리카 (13)

by 이그나티우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언론보도의 형태 중 하나가 대통령이 공무원들을 모아놓고 보고를 받으면서 그들에게 “왜 일을 제대로 못 하느냐?”라고 격노하는 장면이다.


언뜻 보면 복지부동과 부처이기주의로 일관하는 무능한 공무원들을 국정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이 준엄한 죽비로 단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왜 대통령이 저기서 화를 내고 있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애초에 대통령이 혼내고 있는 바로 그 공무원들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 자신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들이 그들 공무원과 공무원이 하는 일들을 일일이 다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정부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마치 자기는 그 일과 아무 관련도 없는 외부자인 것인 양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임명장을 받은 공무원들에게 역정을 내는 장면은 기괴하다.


물론 이런 경우는 있을 수도 있다. 입법부나 사법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처럼 대통령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 기관에 대해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분노와 억울함을 표시하는 것은 어떤 최소한의 정당성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중앙행정부처나 대통령의 직간접적 통제를 받는 기관의 직원들에게 대통령이 마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이 뭔가 ‘아료’를 부렸다는 식으로 호통을 치는 것은 적어도 대통령의 입장에선 경우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들이 그런 식으로 잘못을 했다면 그런 직원들의 총 책임자인 대통령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단 말인가?


예를 들어서 우리가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에 낚싯바늘이 들어 있어서 주인을 불러서 항의를 했다고 치자. 물론 그 주인은 요리를 직접 하지 않아서 낚싯바늘의 존재에 대해서는 몰랐을 수 있고, 그러한 이물질 혼입의 실수는 주방장의 책임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손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책임자를 불러서 책임을 묻는 이유는 그가 애초에 그런 책임을 맡고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후한 보상을 하고 예의를 갖추는 이유는 그들이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만약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그들이 책임을 지게 되는 점을 감안해서 ‘위험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식당 주인은 자기가 개별적으로는 그 사안을 몰랐다고는 해도 그 식당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을 지고 잘못한 점이 있다면 사과를 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물론 식당과 행정부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최고책임자의 책임소재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점이 없다. 만약에 행정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의 직원들이 잘못을 했다면 그 잘못의 최종적인 책임은 대통령에게도 있는 것이다. (법률상으로는 그렇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도의상으로는) 그렇다면 그 자신도 관리책임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이 마치 자신은 잘 모르는 일이었다는 듯이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들을 ‘갈구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식당의 예로 돌아가서 음식물에 뭔가 들어가서 주인을 불렀는데 주인이 손님에게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주방에 있던 셰프를 불러 호통을 치고 있다면 경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물론 나도 그런 장면을 연출하는 정치적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그런 장면에 열광하는 국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책임자인 공무원이 누군가에게는 책임추궁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고, 선출직 공무원이자 여당의 실력자인 대통령은 그런 국민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런 장면을 연출하여 WWE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장면을 보노라면 대통령과 여당의 열성 지지자들과 제왕적 대통령제 지지자들을 위한 한 편의 잘 짜인 쇼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과 차별화되는 뭔가 다른 구름속의 존재라는 관념은 구시대적이고 동시에 위험하다. 이것은 단순한 쇼라기엔 현대 민주주의에 걸맞지 않는 잘못된 관념을 배양하는 문제가 있다.


과거 황제와 왕들은 자기는 백성들을 어여삐 여기지만 귀족과 대신들이 자신을 구중궁궐에 가둬두고 눈과 귀를 가로막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정사를 그르치게 된다는 식의 이미지메이킹을 즐겨 했다.


이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1936년에 일본에서 일어난 쿠데타 사건은 2.26 사건이었다. 당시 일본의 몇몇 젊은 군인들은 민간 정부의 고관들이 텐노의 올바른 정치를 가로막는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총리와 정부 고위 관료 다수를 습격하여 일부를 살해하고 도쿄 시내의 요지를 습격하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들은 민간정부의 폐지와 천황 전제정치의 부활을 요구했다. 하지만 청년 장교들의 희망과 달리 쇼와 텐노는 자신이 신뢰하는 중신들을 일개 군인들이 참살한 데 대해 분노하여 쿠데타군을 직접 진압하겠다고 나섰다. 초기에는 쿠데타군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던 일부 장군들이 배신하면서 쿠데타군은 버려졌고 결국 이들은 진압되어 주모자들은 처형되고 만다.


이 사건은 행정의 최고책임자에 대한 과도한 환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결국 국가 수반도 어쨌거나 정부의 일원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UFC’는 극단적인 진실의 순간이 드러났을 때 돌연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왕과 대통령은 다르기에 2.26 사건을 오늘날의 사회에 바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수반이 뭔가 정치인이나 행정부의 관료들과는 다른 순수하고 고결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교훈은 다르지 않다.


차라리 이런 장면이라면 어떨까? 국민의 대표가 대통령을 불러놓고 “당신은 왜 이렇게 일을 개판으로 처리하느냐?”고 힐난하는 장면 말이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원리에 따르면 이게 오히려 맞는 것 같지 않은가?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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