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푸블리카 (11)
나는 솔직히 더 이상 대학을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대학과 직업 사이의 파이프라인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의과대학이나 일부 계약학과처럼 대학 입학이 어느정도 취업을 보장해주는 경우라면 몰라도 그 이외의 일반 학과들은 별로 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학사학위가 정 필요하다면 나중에 학점은행제로 취득해서 자격요건만 갖추면 될 것이다.
나 말고도 대학 무용론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인터넷과 AI의 시대에 4년씩 낡은 강의실에 앉아서 낡은 교재로 공부를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루라도 빨리 세상에 나와 경험을 쌓는게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의 대학 무용론에는 반대한다.
지식이 인터넷에 널려 있는 것과 실제로 그 지식을 얼마나 잘 흡수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확실히 인터넷에 있는 정보만으로도 이미 4년제 대학이 제공하는 정도의 정보는 충분히 다 구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나무위키가 전공책보다 더 자세한 시대이니까.
하지만 대학의 유일한 기능이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배움에 있어서 지식 그 자체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식을 흡수하는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인지능력에 제한이 있어서 모든 정보를 무제한으로 순수히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인지적 편향에 있어 지식을 취사선택하고 편집하여 저장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을 바라보는 관점을 훈련하는 것은 지식을 단순히 습득하는 과정 이상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대학은 (적어도 학생이 제대로 공부했다는 가정하에) 그러한 관점을 훈련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교수의 지도 아래 토론하고, 과제를 수행하고, 중간-기말고사를 보면서 지식을 정리하고, 잘 갖춰진 대학 도서관에서 관심있는 분야를 찾아 스스로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그러한 능력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훈련을 “교수”라는 멘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지식을 습득한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대학은 충분히 유용한데, 인생에서 4년간 지식의 습득만을 위해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란 어렵다. 대학이 제공하는 수업과 여러 인프라를 통해 지식을 집중적으로 습득할 시간적 여유와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따라서 나는 순수히 내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여전히 대학은 인생을 가치있게 만들어 주는 아주 중요한 단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학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대학이 더 이상 학생들에게 직업을 알선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식인들 중에서는 “대학은 직업훈련소가 아니다.”라는 원칙론을 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대학은 항상 직업훈련소였다. 현대 대학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중세시대의 대학은 법학, 신학, 그리고 철학 등을 공부한 지식인들을 군주의 궁정에서 일하는 관료나 법관으로 양성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의 대학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유사한 시기에 존재했던 이슬람 사회나 동아시아의 고등교육 기관들 역시 기본적으로는 관료 예비군에게 국가 통치에 필요한 지적인 베이스를 가르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 외에도 의사를 양성하는 의과대학 역시 가장 오래된 대학의 전공 중 하나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싱싱한 노동력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장기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교육만 시킨다는 것 자체가 큰 투자이다. 이러한 투자를 기대수익률에 대한 고려 없이 집행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가장 열심히 일해야 할 20대에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 공부만 한다는 것 자체가 그 시간을 투자하여 장래에 더 많은 보상을 거둬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에 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학과 직업 사이의 관련성은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계속되었다. 고등학교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면,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적어도 90년대생까지는 미래에 대한 투자로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갔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이러한 대학과 첫 직장 사이의 파이프라인이 무너졌다. 기업들은 단순히 대학 졸업장을 가진 사람보다는 이른바 “실무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기 시작했고, 더 이상 대학을 잘 나왔다고 해서 좋은 직장을 구한다는 보장이 없어지게 되었다.
앞서 대학이 개인의 지적 성장에 얼마나 가치있는 단계인지를 설명했지만, 아무리 이렇게 지적으로 성장한다고 해도 그것이 생계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커리어상으로는 가치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순수 개인의 만족을 위해 3-4년과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여 학교에 더 다닌다는 것인데 부잣집 자식이 아닌 이상에야 커리어를 위해 이런 투자를 할 가치가 있을까?
물론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좋은 직장에 간다는 명시적인 계약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좋은 대학에 나와도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없다면 대체 “좋은 대학”이란 뭔가? 막말로 좋은 대학이란 좋은 직장에 졸업생을 많이 보내는 학교 아니던가? 대학 졸업장이 있어도 취업이 안 된다면 고등학교 시절에 그렇게 고생해서 공부를 할 필요가 없고, 대학도 그렇게 비싼 돈을 받고 학생들을 받을 이유가 없다. 대학이 인턴쉽 발사대에 불과하다면 그냥 대학을 문을 닫고 인턴쉽 준비학교로 전환하는 것이 서로에게 편하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21세기 초반의 가장 큰 변화는 채용방식이 학력위주에서 인턴쉽을 중심으로 한 실무능력 위주로 변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이런식으로 채용방식이 변한 이상 의대나 공대와 같이 아직도 대학 졸업장과 첫 직장 사이의 암묵적인 파이프라인이 살아있는 곳을 제외한다면 수지타산이 안 맞는 것이 대학 졸업장이 된 것이다.
나는 대학을 멸망시킨 것은 AI혁명이 아니라 기업의 채용방식 변화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최대 고용주인 기업이 대학을 더 이상 선호하지 않는 이상 대학은 이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학력사회의 붕괴가 자신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대학의 빈자리는 자녀에게 좋은 인턴쉽 자리를 알선해줄 수 있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자녀의 직업이 결정되는 신 중세사회의 도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