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푸블리카 [18]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 이후로 ‘주류’ 정책노선의 위치를 놓지 않았던 신자유주의가 이제 슬슬 종말을 앞두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정책담론으로서 “친시장”이라는 말은 울림을 가지고 있지만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와 정치적인 동력은 현저히 떨어졌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와서 노동유연화와 복지축소를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이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남아있을지.
나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가해지는 도덕적 비판의 상당수는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신자유주의가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엘리트의 음모라는 식의 논리는 잘못되었다. 애초에 신자유주의가 등장한 1980년대 초, 자유진영의 주요 국가들은 지나친 정부개입과 반시장적 경제정책으로 인해 신음하고 있었다. 청소부의 파업으로 길거리에 쓰레기가 쌓이고, 장의사의 파업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으니.
그렇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과도한 정부개입과 비효율적인 시장 운영에 대한 교정책으로 한 세대 정도 나름대로의 시대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20세기 중후반 냉전시기 동안 “수정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시장원리가 침해되는 정책들이 줄줄이 등장했고 그 폐해가 쌓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벌써 한 세대도 전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그 이후로도 닷컴버블, 2008 금융위기, 코로나 19 사태 등을 거치면서 많은 시대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사실 신자유주의의 주장 자체는 원론적으로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원칙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시장원리가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매커니즘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기 어렵다. 물론 행동경제학과 새로운 경제학 이론들의 등장으로 수요공급의 법칙이 얼마나 사회 전체의 복리를 증진시키느냐에 대한 일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포기하고 계획경제로 돌아가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실 개인의 창의를 증진하는 자유로운 체제가 경제발전의 핵심적인 요소라는 사실은 더글러스 노스와 애런 대스모글루 등 경제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장원리가 만병통치약이라는 식의 게으른 주장은 옳지 않은 것을 넘어서 더 이상 현실세계에서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적, 그러니까 높은 수준의 자유시장원리의 구현은 필연적으로 개혁을 수반한다. 규제완화, 감세 등등. 모든 국가들은 시장경제원리를 거슬러 특정 집단이나 국가권력에게 이익이 되도록 이런저런 정책과 제도를 덕지덕지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책과 제도는 법률로 제정되어 있는데다 이해관계자가 복잡하여 쉽게 고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깨는 강력한 개혁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은 사회 전체가 누리는 이익의 크기를 더 크게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개혁이 반드시 희생자를 낳는다는 것이다. 기존의 시스템으로 인해서 이득을 보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 이득을 포기하게끔 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명분이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이라는 정도이다.
‘낙수효과’라는 표현의 말대로 내가 지금 당장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지금 입은 손해를 개혁의 선순환으로 인해 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사람들은 개혁에 찬성할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처와 레이건이 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보통 사람들이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일종의 합의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개혁이 결국에는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믿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한 세대 이상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양극화는 심화되고 보통 사람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솔직히 그 잘난 개혁이 이뤄진다고 해도 피해를 입는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 장기적으로 그에 대한 보상이 돌아올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부정적인 추세가 완화되기보다는 앞으로 더 심해질 것 같다는 것이다. 기업의 경영자, 부동산 소유자, 공공부문 종사자, 전문직 종사자와 같은 기득권 세력은 눈부신 기술혁신과 글로벌 경제의 등장으로 점점 더 많은 부를 쌓고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다. 물가는 오르는데 소득은 제자리걸음이고, 나의 선배들이 가질 수 있었던 일자리와 사회적 지위는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시장원리를 관철하면 언젠가는 나에게도 보답이 돌아온다고 믿었지만 그게 언제인지, 애초에 그런 보답이 존재라도 하는지 알 수 없다.
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나는 역사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전세계적으로는 앞으로 다가올 AI 시대에는 더 이상 이런 인문학 전공자는 필요가 없단다. 그래서 미래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컴퓨터공학이나 전자공학과 같은 ‘미래지향적’ STEM 전공을 배운 사람들이 필요하고 이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수요자(기업) 중심으로 노동시장을 재편해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이다. 한마디로 나 같은 존재는 시대착오적 폐품이라는 얘기지.
사회 전체적으로는 그게 맞는지도 모른다.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수요가 없는 공급은 가격을 낮춰서 떨이를 하거나, ‘재교육’을 통해 ‘거듭나야’ 할 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나는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전공과는 무관한 기술 분야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식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지지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학 전공자들 중심으로 노동시장을 뜯어고치는 것이 장기적으로 나와 같은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이득이 될 것 같지 않다. 결국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사회에서 배제되고 게임은 끝날 것 같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나를 제거하려는 사회적 흐름을 지지하고 거기에 동조할 이유가 별로 없다. 세상은 그렇게 바뀔지라도 독박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 억울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고용 유연화, 복지혜택 축소, 감세, 규제혁파, 이민 확대 등 신자유주의가 전매특허처럼 내놓는 정책 패키지에 대한 반발이 터져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 본다. 물론 그런 시대적 흐름이 경제학 이론에는 부합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독박을 쓰는 사람들에게 “나 빼고 남들만 이득을 보는” 축제에 박수를 치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독박을 쓰는 피해자들에게 장기적으로 그들에게 어떤 혜택이 있는지를 납득시키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게 안 된다면 설령 반시장적이라 할지라도 반대의 목소리가 계속 터져나올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는 논리가 안 통하는 세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