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푸블리카 [17]
지나칠 정도로 특정 정치인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그 정치인을 비난하는 유튜버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유튜브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거액의 돈을 후원한다.
이해는 한다. 나도 무척이나 싫어하는 정치인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래서 그 정치인만 보면 혈압이 오르고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최근에는 정말로 정치가 내 건강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아서 다소 우울한 기분이다.
그런 정치인들은 항상 있었다. 단순히 그 정치인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그 정치인 개인에 대하여 깊은 증오와 혐오를 느끼는 경우가 항상 있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 정치인이 빨리 사라지는 것을 보고 싶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한가지 좋은 소식은 그런 정치인들의 권력이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한때 내가 정말로 싫어하던 한 정치인이 있었다.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 정치인의 인간성 자체가 싫었다. 하지만 선거에 당선되는 데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그 정치인은 오랫동안 신문 정치면을 장식하면서 내 입장에서는 분통 터지는 일들을 정말로 많이 했었다.
하지만 심판의 날은 왔다. 그 정치인은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몰락했고, 법의 처벌을 받았으며, 모든 권력을 잃었고, 무엇보다도 지금은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흘러간 전직 정치인들의 모임에 대한 기사에서나 가끔씩 보일 뿐이다. 한때 그 정치인을 열렬히 지지하던 정치 평론가들이나 유튜버들은 지금은 아무도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무플보다 악플이 무섭다던가. 그 정치인을 정말로 그렇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정치인들은 때로는 우리 생각보다는 훨씬 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나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들이대는 것이 더 맞는지도 모른다. 다크나이트에 나오는 조커와 같은 나름의 철학과 철두철미한 지략을 갖춘 무시무시한 빌런이라기보다는, 안 좋은 의미로 평범해서 시시하고 별 볼일 없는 그런 인물들인 것이다.
물론 정말로 역사상에 남을 그런 사악한 정치인들도 있다. 삼국지의 동탁과 같은 그런 인물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뭐 그렇게 역사에 자주 등장하겠는가?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보는 그 혐오스런 정치인들은 동탁과 같은 수천년 후에도 거론될 악인이라기보다는 몇 년만 지나도 사람들이 그가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할 그런 시시한 정치인들일 가능성이 더 높다.
정치인들은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그저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기를 바라는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계약직 공직자일 따름이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직업적 이해관계가 선거 당선에 달려있기에 선거운동을 위한 후원금을 받고, 선거운동을 위한 운동원들을 모으며,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 ‘비즈니스’인 사람들이다. 독재국가나 권위주의 국가라면 선거보다는 줄을 잘 서는 것에 더 신경을 쓰겠지만, 아무튼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이란 그런 선거라는 다음번 계약(선거)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직업인들일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 국가의 일개 정치인을 어마어마한 거대한 악으로 묘사하거나, 반대로 그 정치인을 아이돌처럼 숭배하는 것은 어느 쪽이나 공허한 일이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치라는 직업을 갖고 그 비즈니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존재일 뿐이다. 결국 아무리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그들은 결국 그 정도 존재 이상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권력이란 변덕스럽다. 권불십년이라는 진부한 문구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중앙정치에서 살아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에 등장하는 숱한 참주와 폭군들은 얼핏 생각하면 30년, 50년씩 권력을 누렸을 것 같지만 대개는 몇 년, 기껏해야 십 몇 년의 권력을 누리다가 죽거나 몰락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정치란 항상 경쟁자들이 들끓는 곳이고, 또 경쟁자들이 아니더라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자기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자라고 할지라도 언제 역사의 심판을 받을지 모르는 일이다.
다모클레스의 칼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왕의 자리를 부러워하는 자에게 왕이란 실 끝에 달린 칼 아래에 앉아있는 것과 같다는 고대 그리스의 이야기다. 정치란 그런 종류의 것이다. 동탁이 장안의 궁궐로 입궐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렇게 자기가 쉽게 몰락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구태여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정치인에 대해 정서적으로 투자하는 것의 허무함을 설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가 더 중요한 문제로부터 우리의 관심을 빼앗아 가는 것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는 왜 정치에 관심을 갖는가? 정치적 의사결정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치란 단순히 정치인들이 아웅다웅 다투는 격투기나 스포츠가 아니다. 정치에서 결정된 사항들은 교육, 세금, 복지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개별 정치인을 미워하고, 숭배하기보다는 정치를 통해 어떤 사항이 결정되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투기판처럼 변해버린 오늘날의 정치적 여론에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른바 ‘정치 유튜브’라는 것들을 보면 마치 스포츠 선수의 기량을 분석하고 다음 경기에서의 활약을 예측하는 것처럼 정치인을 바라보는 것 같다. 그런 곳에서는 정책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국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곳은 드물다.
어차피 아무리 미워하는 정치인도 길어야 몇 년이다. 너무 중요하지 않은 일로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보다는 더 중요한 정책과 사상에 관심을 가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