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푸블리카 [19]
나는 인턴쉽이야말로 현대사회의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최악의 제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까운 시일 내에 인턴쉽에 관한 강력한 법적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인턴쉽의 긍정적 기능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 속의 지식에만 머물지 않고, 실제 업무가 이뤄지는 현장에서 숙련자의 지도 아래 실무적인 능력을 함양하는 것은 당연히 효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인턴쉽은 도제제도의 장점과 근대식 교육의 장점을 혼합한 궁극의 인재양성 제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보는 것은 한가지 단면만 보는 것이다. 문제는 인턴쉽이 유발하는 불평등과 격차 확대라는 문제이다.
우선 본격적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인턴쉽이 한국에서 점차 강조되는 맥락을 보자. 인턴쉽의 중요성 확대는 “직무능력 중심의 채용”의 확대와 맞물려 있다. 기존에는 학위 보유자를 채용하던 기계적인 채용에서 벗어나, 실제 그 사람이 맡을 업무에 맞는 직무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고 채용한다는 기조는 얼핏 들으면 굉장히 희망적으로 들린다. 학력과 학벌에 의한 치졸한 차별을 없애고 진정으로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직무능력 중심의 채용”은 거의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여져 왔다. 전체 인구로 따지면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은 극히 일부이고, 그렇기 때문에 학벌주의를 대신해서 도입되는 직무능력 심사는 아무래도 학벌주의의 차별적인 폐단을 넘어서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대체 직무능력을 어디서, 어떻게 배운단 말인가?
회사에서 사용되는 직무능력이라는 것은 회사 밖에서는 접하기 힘들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업무처리용 소프트웨어나 사내 기안문 작성 포맷과 같은 것들을 사외에서 어떻게 쉽게 접한단 말인가. 물론 일부 미리 배울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중요한 것들은 어떻게든 회사 안으로 들어가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게 일반 학생들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결국 보통의 학생이 기업이 요구하는 “직무능력”을 입사 전에 기르기 위해서는 인턴쉽을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서는 회사 외부에 있는 학생이 회사 내부의 지식을 흡수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무능력 중심의 채용”은 많은 경우 “인턴쉽 기반 채용”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포트폴리오나 인증된 시험을 통해 직무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예외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직무능력을 기르는 방법은 인턴쉽이 가장 주된 방법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인턴쉽의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데 있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인턴쉽이 채용의 전제조건이 되려면, 일단 인턴쉽을 얻는 것이 쉬워야 한다. 전단계가 다음단계보다 쉬워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턴쉽이란 구하기가 쉬운가?
불특정 다수에게 거의 체험학습 수준으로 제공되는 인턴쉽이 아니라, 제대로 멘토의 지도하에서 시장에서 확실히 먹히는 기술과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인턴쉽의 기회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턴쉽 자리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 되고, 그 권력은 기존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그 자녀들에게 차별적으로 분배되기 쉽다. 대개 인턴쉽의 채용과정은 공개채용만큼의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기존의 권력자들의 자녀들에게 인턴쉽이 유리하게 분배될 우려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정한 인턴쉽을 언제 어디서 뽑는지에 관한 정보 자체가 공평하게 유통된다고 보기 어렵다. 인턴쉽은 공개채용과 같이 대대적으로 홍보되지 않으며, 심지어는 몇몇 지인들을 위주로 하여 뽑는 경우도 많다.
결국 인턴쉽은 인사이더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부모와 친척, 교수 등을 통해서 인턴쉽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으며, 인턴쉽 채용에 대한 명시적, 암묵적 추천이 이뤄지는 학생들에게 인턴쉽은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사업가의 자녀가 아버지와 교분이 있는 변호사가 운영하는 법률사무소에서 인턴을 하는 것과 같은 사실상 내부자들의 나눠먹기식 인턴쉽이 나타나기 아주 쉬운 구조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맥이 많지 않은 평범한 학생의 경우 언제 어디서 좋은 인턴쉽 프로그램이 진행되는지 알기도 어렵고, 설령 안다고 해도 그 경쟁이 치열해서 쉽게 들어가기 어렵다.
심지어는 주기적으로 터져나오는 “황제 인턴” 논란처럼 아예 권력자들이 자기 권력을 이용해 자녀를 유망한 인턴쉽에 꽂아 넣거나, 아니면 상류층 엘리트 집안들이 서로 품앗이 식으로 인턴쉽을 챙겨주어 국민의 공분을 사는 사건이 있는 것을 보면 인턴쉽의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어려움을 다 뚫고 인턴쉽을 얻었다고 해도 문제가 되는 것이 인턴은 정규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임금을 못 받거나, 받더라도 극히 적은 금액만을 지급받는다. 단기 인턴쉽이라면 문제가 안 되지만, 6개월 이상의 장기 인턴쉽이거나 혹은 해외에서 진행되는 인턴쉽이라면 결국에는 인턴이 스스로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결국 수개월의 생활비를 댈 수 있는 가정의 자녀가 훨씬 유리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이것은 변형된 형태로 “경험을 돈으로 사는”것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인턴쉽이 다 차별적인 것은 아니다. 투명한 공개채용과정을 통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려는 인턴쉽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인턴쉽의 경쟁률은 살벌하게 높다. 그래서 인턴쉽에 들어가기 위한 스펙쌓기용으로 또다른 인턴쉽을 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흔하게 벌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인턴쉽은 각계각층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재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하기 쉽다. 부족한 인턴쉽 자리, 투명하지 않은 인턴쉽 채용과정, 정보의 격차와 같은 문제들이 인턴쉽을 기존의 권력자, 상류층 자녀들에게 유리한 것으로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결국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인턴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턴쉽을 했기 때문에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그 기회 자체는 그 사람의 사회적 배경(“느그 아부지 뭐하시노?”)가 결정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턴쉽을 기반으로 채용을 진행하는 것은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확대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채용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제아무리 인턴쉽이 좋은 제도라고 해도 이렇게 불공평하다면 과연 그것이 정의로운지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