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파에게 주눅들 필요가 없는 이유

레스 푸블리카 [20]

by 이그나티우스

학벌주의가 많이 힘을 잃은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전문직 자격증과 더불어 개인의 능력을 입증하는 중요한 수단이 “해외파”라는 타이틀이다. 우리나라의 학교나 기업들도 수준이 많이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고, 해외에서 일했다는 경험은 그 자체로 아우라를 갖는다. 당장 이 브런치만 들러봐도 시리즈의 상당수가 외국생활을 마치 대단한 경험인 것처럼 홍보하는 시리즈들이다. 똑 같은 내용을 한국 생활을 바탕으로 썼다면 그 글들이 그런 클릭을 받을 수 있었을까? 라는 부분을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해서 해외 대학의 졸업장이나 외국 기업의 경력의 가치 자체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미국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살인적인 코스웍과 면도날 같은 논문심사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수틀리면 바로 짐을 싸야 하는 외국 기업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만한 능력의 입증이리라. 애초에 우리나라보다 더 발전한 나라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무언가를 체험하고 배웠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외국에서 공부를 하거나 일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그 사람이 어느정도 “해택받은” 계층이라는 것을 시사하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우리나라에서 외국에 나가는 것 자체가 일종의 특권의 상징이다. 아무리 저가항공이 등장하고 비행기 티켓값이 내려가도 가장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을 방문하는 것조차 상당한 교통비가 소요된다. 우리나라가 EU 국가들처럼 국경이 개방된 지역에 위치한다면 외국에 나갔다는 것이 단순히 그 사람이 가진 도전정신의 표현인 것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외국에 나가려면 무조건 배 아니면 비행기를 타야 하고, 국경을 넘는 자체로 상당한 비용이 지출된다.


물론 백번 양보해서 비행기 티켓값이야 어차피 일회성으로 지출되는 비용이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장벽이 외국에 체류하는 자격을 얻는 것이다. 크게 외국에서 비자를 얻기 위해서는 유학, 취업, 사업, 결혼 등이 있는데 이 중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유학의 경우 일단 해당 학교의 입학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물론 정말로 시골에 위치한 아무도 모르는 학교에 등록금을 기부(?)하러 가는 것이라면 몰라도 조금이라도 이름이 난 학교, 이름이 난 과정의 경우 그 나라 학생들도 못 들어와서 안달이 나 있는 곳이라 입학 허가를 받기가 녹록치 않다. 취업의 경우 일종의 뫼비우스의 띠, 캐치-22인데 해외의 고용주들은 비자 문제가 클리어 되었기를 구직자에게 바라지만, 반대로 취업이 클리어되지 않으면 해외의 비자를 얻기 어렵다. 그래서, 고용주가 비자 스폰서 비용을 감당하고도 부를 만한 능력을 갖추거나 특정한 스킬을 갖지 않으면 외국에 취업하기 어렵다. 사업이나 결혼은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데 외국에서 쉬울 리가 없다. 이것 역시 약간의 예외에도 해외에 네트워크를 갖춘 중-상류층의 전유물이라 해야 할 것이다. TV에는 해외에서 성공한 사업가나 국제결혼을 한 커플이 자주 나오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통계는 말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 장기체류를 위해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인 유학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생각해보자.


우선 앞서도 말했듯 해외대학의 수준높은 과정은 애초에 입학허가를 받기가 어렵다. 대학원을 기준으로 외국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학점, 영어성적, 학업계획서, 추천서 등을 요구한다. 이것만 보면 클리어하기 쉬워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학비를 마련하기가 쉽지가 않다. 물론 생존자편향에 의해 해외 유학에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북미권 대학의 석박사 과정은 대개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급하는 기준으로 입학을 받기 때문에 자기 돈 거의 안 내고도 다녀올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이런 좋은 조건으로 학생을 받는 과정들은 그만큼 기부를 받기 좋은 실용적인 전공이거나, 혹은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내가 잘하는, 혹은 공부하고자 하는 전공이 반드시 재정 지원이 넉넉하게 주어지는 전공이라는 보장이 없다. 많은 경우 입학 허가는 받았으나 전액 장학금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허가가 난다. 아니면 실력이 있어도 그 학교의 재정 상황에 따라 탈락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인기전공(공학, 상경계 등)을 선택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친 않다. 대개 인기 전공들은 졸업한 후에도 학계, 산업계, 공공기관 등으로 뻗어나갈 커리어가 보장되기 때문에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박사학위를 받고자 분투한다. 장학금이 넉넉하게 나오는 인기 전공은 이제 현지의 우수한 학생들 뿐 아니라 글로벌화의 영향으로 전세계의 유학생과 경쟁해야 한다. 특히 자금력과 수학실력(북미권 대학은 전공 불문 수학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갖춘 중국과 인도 출신의 유학생들이 넘쳐나는 전공에서 한국인이 살아남기 쉽지가 않다.


다음으로 그 돈이라는게 등록금과 생활비만 지급받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단 북미권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지하철로 통근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 일단 차부터 1대 장만해야 한다. 그리고 기숙사가 제공되지 않을 경우에는 방을 빌리거나 집을 사야 하는데, 그곳은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높기 때문에 그러한 주거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만약에 입학허가가 난 학교가 월세가 대단히 비싼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지역이라면 학교에서 받는 지원금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어느 나라 사회건 그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부만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킹을 해서 인맥을 쌓아야 한다. 그런데 그 인맥을 쌓는 과정이 다 돈이다. 꼭 스코틀랜드의 컨트리클럽에서 골프를 치고 아프리카 사냥을 다니고 해야 돈이 드는게 아니라, 방과후에 잠시 펍에 들러서 맥주 한잔을 기울이거나, 여름방학에 3박 4일로 박사과정에서 만난 친구들과 캠핑을 다녀오는 것과 같은 활동들 역시 보통의 가정 입장에서는 비용부담이 된다. 우리나라가 유학을 가는 미국, 캐나다, 영국과 같은 나라들은 우리보다 물가가 훨씬 비싼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네트워킹 없이 공부만 하고 온다면 정말 졸업한 이후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신세가 되어 글로벌 커리어는 커녕 우리나라로 귀국해 처음부터 다시 국내파들과 경쟁해야 한다. 게다가 공부 외적으로 학업에 비용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지도교수와 같이 학회에 참가해야 하는데, 그 학회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서 호텔에서 며칠 묵어야 하는 곳인데 비용이 지원되지 않거나 지원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 비용을 내가 지불해야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해외에서 공부하는 것은 외롭고 심란한 과정이라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취미생활을 갖거나 프라이빗한(보험이 안 되는) 심리상담을 받는 등의 서포트가 필요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것들도 다 돈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고 생존모드로 살아남아 학위를 마치는 사람들도 있고 그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질이 반필수인 게임에서 나무위키와 유튜브를 벗삼아 무과금덱으로 살아남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가능은 하지만 그것은 개인에게 그렇게 쉽지 않은 선택인 것이다.


게다가 유학의 경우 공부를 하는 동안 내가 한국에서 일을 해서 벌 수 있는 기회비용을 포기하는 것 뿐 아니라, 공학이나 경제학과 같은 일부 잡마켓이 활성화된 전공이 아니라면 졸업 이후의 진로에 대한 위험도 내가 다 감수해야 한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이름만 들으면 깜짝 놀랄 만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들이 학교에서 시간제로 학생들을 가리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것은 그만큼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취업하기가 녹록치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제 인구구조 변화로 대학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임박했는데, 그것이 실행될 경우 교수나 연구원이 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물론 아까도 말했듯 가챠겜에서 무과금덱을 돌려 독하게 살아남듯이 짠물 생활로 해외에서도 살아남는 유학생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극악의 테크트리를 일반적인 케이스로 볼 수는 없다. 실제로도 인터뷰에서 외국 유학생활의 어려움을 자랑하듯 말하는 유명인들의 나무위키 항목을 보면 부모가 건물주였다던가 할아버지가 유명한 기업인이었던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다.


현실적으로는 이런 장애물 투성이의 유학생활을 스무스하게 끝내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의 넉넉한 재정지원이나 혹은 든든한 스폰서(정부, 기업, 장학재단 등)가 필수적이다. 즉,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학위를 딴 사람은 정말로 그 사람이 최고의 인재여서라기보다는, 학위 취득에 필요한 자원을 조달할 수 있는 여유있는 배경의 사람들 중 “그나마”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한정된 지원자들 풀 안에서 우수한 인재인 점에서는 변함이 없지만, 우리는 1명의 박사 뒤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눈물을 머금고 그 길을 단념해야 했을 10명 20명의 더 능력있는 포기한 사람들이 있고 그 포기한 사람들이 박사학위 취득자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즉, 외국에서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자동으로 그사람이 “최고로” 우수한 인재라는 것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외국 학교 출신이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처럼 우러러보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렇게까지 기가 죽어서 그 사람들을 숭배할 필요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외국 대학의 학위는 그 사람이 정말로 최고로 능력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그만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을 상징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외국에서 기울인 노력조차 폄하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 노력의 뒤편에는 노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누군가가 주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안 된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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