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푸블리카 [21]
정치평론에 외로움이라는 주제는 굉장히 생경하다. 대법원이 어떻고, 관세협상이 어떻고 하는 와중에 “외로움”이라니.
하지만 나는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은 이미 다양한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면 그 역시 정치의 한 문제가 되지 않을까? 나는 정치가 반드시 국회의사당과 세종시에만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외로움이라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책 몇권을 써도 부족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언급하고픈 문제는 “만남”이라는 문제에 관해서다.
생각해보면 “만남”이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데, 애초에 만남이 성립하지 않으면 인간관계는 발생할 수 없다. 인간관계의 가장 본질적이고 필요불가결한 부분은 역시 만남이라고 한다면, 만남을 빼놓고는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태어나서 줄곧 한국의 대도시 지역에서 생활해온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애초에 사람을 만난다는 행위 자체가 쉽지 않다.
물론 이러한 나의 주관적 인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감히 용기를 내어 말하자면 내 말에 동의하는 사람도 제법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이를 들어가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쉬운 것은 쉽게, 어려운 것은 어렵게”라는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건 쉬운 부분과 어려운 부분이 있다. 쉬운 부분은 쉽게 처리할 수 있어야 어려운 부분에 집중할 수 있다. 게임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자면 어떤 게임이건 간에 이동은 가장 쉬운 커맨드에 해당한다. 물론 처음에는 약간 혼동이 있을 수 있지만. 만약에 게임의 캐릭터나 유닛을 이동시키는 것 자체도 어렵다면 그 게임은 시작부터 유저에게 불쾌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가장 첫 단계인 만남 자체는 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남이 인간관계로 발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남이라는 단계부터 어렵다면 뒤이어 수반되는 인간관계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바에 따르면 한국의 대도시에서 인간이 인간을 만나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다.
애초에 다른 사람과 순수하게 만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거의 없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는 경로는 크게 생산활동과 소비활동을 통해서이다. 즉, 학교에 다니면서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준비하거나 직장에 다니면서 직접 생산활동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면서 마주치는 판매자와 중개자들이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활동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과 소비활동 자체가 목적이고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만남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아무래도 사람을 만나기에는 그 자체로 적합하진 않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운좋게도 좋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어 인간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 자체가 반드시 보장되는 결과라고는 볼 수 없다.
예를 들어서 학교의 경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면 되잖아?”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학교는 얼핏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환경인 듯하지만 막상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울리는 것은 끼리끼리이고 수많은 동기동창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성적이나, 가정환경이나, 취미와 같은 부분에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 몇몇과만 어울리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그런 짝을 찾지 못하면 혼자서 학교를 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게다가 공부가 극단적으로 중시되는 우리나라의 학교 환경에서 적극적으로 인간관계에 임하기도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나마 초중고등학교 과정에서는 강제로 한반에 묶여 있으니 억지로라도 친하게 될 여지가 없지 않다. 하지만 대학 이상으로 올라가면 그마저도 쉽지 않다. 학점제로 학교가 운영되어 같이 수업을 듣지 않는 이상 같은 과 동기라고 해도 4년동안 말 한번 섞어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대학에서는 이전보다 더 끼리끼리 어울리게 된다.
물론 대학에서도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학에서 더 많은 만남, 특히 이성과의 만남을 갖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대학에서의 만남의 허들이 낮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학과의 경우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결국 끼리끼리 어울리게 된다. 인기있는 학회나 동아리는 애초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보통의 동아리에 들어가더라도 그곳에는 이미 존재하는 기존의 인간관계들이 있어서 신입생이 파고들기가 마냥 쉽지는 않다. 역사학의 금언 중 하나가 “반복되어 강조되는 말은 현실과 반대되는 경우가 많다.”이다. 동아리나 학회는 언제나 자신들이 얼마나 신입 부원들에게 친절한지를 강조하는데 이것은 사실상 실제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도 학생 자치단체나, 학교간 동아리, 조별과제 등등 만남을 가질 기회가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자신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입증하지 않으면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환경이다.
사실 학교의 사례를 자세하게 살펴봐서 그렇지 나머지 장소들도 크게 다르지가 않다. 흔히들 만남의 장소로 거론하는 취미 모임이나 종교단체 같은 경우에도 표면상으로는 신참자를 환영한다고들 하지만 막상 들어가보면 기존의 구성원들끼리만 사이가 돈독하고 새로 온 사람에게는 심드렁한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누군가 다리를 놓아주는 후견인이 없으면 어떤 단체에 들어간다고 해서 바로 긴밀한 인간관계를 갖기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물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곳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운좋게 그런 곳에 들어간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이런 이야기에 대해 가장 흔하게 나오는 반응이
“그건 너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서야.”
“너의 성격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야?”
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인간에게는 만남과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 자연상태에 더 가깝다. 오히려 지금의 대도시처럼 사람들과의 만남과 어려운 환경이 비정상적이고 자연스럽지 않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말들은 공통적으로 만남을 갖기 위해서는 무언가 내가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놓치는 것은 만남과 인간관계는 무언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향유하는 트로피가 아니라는 점이다. 만남은 공기처럼 모든 사람이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어야 한다. 마치 게임에서 “이동”이 가장 쉬운 커맨드이듯이 말이다. 결점이 있으면 있는대로, 부족한 점이 있으면 있는대로 남들과는 조금 다를지언정 만남이라는 사건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도시지역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렇지 않다. 마치 희소한 재화처럼 어떤 특정한 자원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향유하는 트로피에 가깝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로는 말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게임으로 치면 마치 캐릭터를 이동시키는 것의 커맨드 자체가 엄청 어려운 느낌인 것이다.
나는 이런 만남의 어려움이 공개적으로 거론되지 못하는 이유가 인간관계에서의 실패를 도덕적인 결함이나 불명예스러운 일로 보는 뒤틀린 체면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을 털어놓는 순간 주위사람들로부터 더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싫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풍조가 있는 것 같다. 당장 온라인 커뮤니티만 봐도 “찐따”나 “아싸”로 낙인찍히면 얼마나 많은 조리돌림의 대상이 되는가? 사실 현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만남의 어려움에 대해 말해져야 한다. 인간관계란 쉽지 않다, 외로움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고통이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먼저 이야기가 되어야 외로움이라는 문제가 공적인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