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 대한 증오가 당신의 인생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

레스 푸블리카 [23]

by 이그나티우스


한때 이런 유행어가 있지 않았나. “이게 다 XXX 때문이다.”라는 말 말이다. 이 말처럼 많은 사람들은 어떤 특정 정치인을 악마화하고 그 정치인이 모든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생각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들의 소원대로 그 정치인이 정계에서 은퇴하거나 죽는다고 해도 별반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그 정치인이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행동을 했던 이유가 그 정치인 개인의 캐릭터 문제라기보다는 그 정치인이 반영하는 사회 구조적인 변화 혹은 사회 전체의 분위기의 문제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치인도 기본적으로 직업의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정치인은 “당선”이라는 KPI를 위해 움직이는 프로페셔널의 1명이다. 그들은 당선에 도움이 된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제일 잘 하는 것이 현재 존재하는 사회적인 변화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이다. 대세에 따라야 그만큼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의 행동은 많은 측면에서 이미 발생해버린 변화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가령 이런 사례들을 생각해보자. 좌파들은 (요즘에는 잠잠해지긴 했지만) 우파 정치인을 “친미”라거나 “친일”이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정말로 그 나라들의 로비를 받아 행동하는 비양심적인 정치인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한국이라는 나라의 구조 상 미국과 일본에 우호적인 정치인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내수산업에 종사하는 일반 국민들은 인지하기 어렵지만, 한국은 미국 및 일본과 경제, 안보, 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주 밀접한 협력관계에 있다. 가령 주한미군이 없으면 한국의 안전보장에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안보와 외교면에서 한국과 미국은 원팀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이 안보나 외교 문제에서 미국의 편을 드는 발언을 하거나 정책을 펴는 것은 그 정치인이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내가 우파 정치인들의 친미, 친일 행동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구조가 그대로 살아있는 상황에서 특정 정치인을 친일이나 친미로 찍어서 제거해버린다고 해도 그 자리를 메운 다른 정치인도 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 우파 유권자들은 좌파 정치인들이 중국의 간첩이라고 극단적인 비난을 퍼붓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번에도 정말로 중국의 로비를 받는 정치인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정치인의 입장에서 중국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객관적인 환경 또한 존재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최대 수출국은 중국이었다. 중국은 한국의 물건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구입해주는 나라들 중 하나이고, 또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중국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거나 중국산 물건을 수입하여 가공하거나 가공해서 재판매한다. 아무리 중국이 우리와 안보적으로 긴장관계에 있다고 해도 경제적인 관계는 밀접하며 당분간 우리는 이러한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산업계의 입장을 고려하여 중국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격한 정책을 반대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유리한 경우가 제법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정치인을 “중국 간첩”이라고 낙인찍어 제거한다고 해도 앞서의 친일, 친미 정치인의 경우처럼 그 자리를 계승한 다른 정치인이 전임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결국 우리와 중국의 경제적인 협력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이상에는 정치인들이 주기적으로 일반 국민이 보기에는 의아한 “친중” 행보를 보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떤 정치인의 정말로 개인적인 특성이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라면 그 정치인의 몰락이 문제의 해결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정치인이 사라지는 순간 그 정치인의 행동방식을 답습하는 후배 정치인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정치인을 악마화하고 그 정치인만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믿어버리는 것은 허무한 일이다. 실제 내 인생이 그것을 대변하는데, 나는 항상 특정한 정치인을 진심으로 미워해온 역사가 있다. 하지만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고 그 정치인들도 세월의 힘에 밀려 몰락하고 사라져갔는데, 그들이 사라져간 자리에는 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거의 비슷한 밉상스런 정치인이 비슷한 그런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정치인을 아무리 저주하고 증오한다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특정 정치인을 증오하는 것은 많은 경우 특정 정치인을 신격화하고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이다. 나는 사람들이 더 이상 한정된 “관심”이라는 자원을 특정 정치인을 욕하는 데에 낭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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