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푸블리카 [24]
한국 극우세력의 정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분노’이다. 그들은 한국이 “악의 세력”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악당들을 몰아내기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극우세력이 사회통념에서 벗어나는 과격한 주의주장을 반복하는 밑바탕에는 이러한 종말론적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다.
극우성향의 인터넷 방송과 극우계열의 소셜 미디어 계정들을 통해 전파되는 극우세력의 세계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물론 이하에 소개하는 내용들은 상당부분 사실이 아니다.)
1. 한국 정치권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 조종되는 괴뢰들로 가득 차 있다. “일부 양심적인 정치인(=극우 정치인)”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중국 공산당의 로비자금을 받는 간첩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다.
2. 특히 진보진영의 유력 정치인들은 중국 공산당과 범죄조직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고 있으며 진보진영 내부의 분열은 중국 범죄조직 간의 프록시 전쟁이다.
3. 한국에는 백만 단위의 북한 간첩들이 암약하고 있으며 이들은 각계각층에 자리잡고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4. 유력 진보 대권주자들은 북한에 평화교류를 명목으로 북한에 입국하여 조선노동당 입당원서를 내고 충성맹세를 한 자들이다. 이들은 귀국해서도 북한의 지시를 받으며 그 지시에 따라 행동한다.
5. 과거 2000년대 초반 한국과 북한의 해빙무드가 있었을 당시 한국의 유력 정치인과 엘리트 인사들이 북한에 대거 방북했는데 이들은 북한 여성들과 만나 살림을 차리고 사생아를 낳았으며, 북한 정권은 이들의 섹스 테이프를 입수하여 약점을 잡고 북한에게 유리하게 행동하도록 조종하고 있다.
6. 일부 한국의 유력 정치인들은 북한에서 태어나 간첩으로 교육받은 뒤 한국으로 남파되어 마치 남한에서 태어난 것처럼 출생지를 조작한 뒤 수십년간 간첩으로 암약하면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선거에서 당선된 뒤에는 정치인으로서의 지위를 활용하여 얻은 국가기밀을 남북회담을 틈타 북한에게 전달하고 있다.
7. 한국의 많은 판사들은 이른바 “공산당 장학생”에 선발되어 사법고시를 공부하던 당시 북한의 공작금을 받아 공부했으며, 이후 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좌익 법조인 단체를 결성하여 대한민국을 적화시키는데 전념하고 있다. 좌익세력과 노조에 유리한 판결이 나오는 데에는 이런 좌익 판사들의 뒷공작이 작용하고 있다.
8. 한국의 주요 언론사는 북한의 지령을 받는 용공 노조세력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며 이들은 자발적으로 우익에게 유리한 뉴스는 검열하여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서구의 “글로벌리스트” 좌익 언론들의 소식만 편파적으로 전달하여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양심적 보수세력의 각성”을 왜곡하여 보도하고 있다.
9. 학계와 교육계는 좌익 지식인들의 소굴으로 이들은 한반도의 정통성을 북한에 두고 남한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으로 저주하는 자학사관을 만들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있다.
10. 문화예술계는 운동권 출신의 좌익 예술가들에게 장악되어 이들은 국민들에게 좌익 프로파간다를 주입하는 세뇌 컨텐츠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11. 선거관리위원회는 좌익정당과 중국 공산당에 의해 이미 장악되어 있어서 이들은 선거결과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작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감시가 소홀한 부재자투표를 멋대로 개봉하여 자신들의 입맛대로 조작한다. 가끔씩 보수진영이 승리하는 선거는 공정해서가 아니라 “조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보수 표가 많이 나와서 승리한 것이다. 보수 후보가 0.2퍼센트 차이로 승리했다면 실제로는 20퍼센트 이상 차이가 난 것이다.
12. 경찰조직은 이미 중국 공산당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데, 조선족 경찰들이 대거 한국인으로 위장하여 경찰로 채용되어 치안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13. 한국에서 벌어지는 보수에 반대하는 시위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중국 유학생들이 동원되어 진행하는 관제 공산당 시위이다.
14.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몇몇 애국적인 공간”을 제외하면 조선족 댓글알바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어서 온라인 여론은 신뢰할 수 없다.
15. 한국의 여론조사 기관은 모두 진보정당에 의해 장악되어 무조건 진보진영에 유리한 결과로 조작하여 발표하고 있다.
16. 최근 무비자로 입국한 중국인들이 밴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야간에 젊은 한국인들을 납치하여 장기를 떼낸 후 그것을 중국으로 반출하여 중국 고위급 공산당원들의 생명연장 시술을 위해 이식수술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의 대부분은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허위정보나 가짜뉴스에 해당한다. 사실 건전한 상식인이라면 읽기만 해도 정신이 어질어질해지는 내용들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극우성향의 유권자들은 이러한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진실로 굳게 믿고 있으며 자신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진실을 알고 있는 선각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나는 위와 같은 극우세력의 음모론은 사실무근이라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음모론들은 대개 엄격하게 검증되지 않은 카더라 혹은 아니면 말고 식의 엉성한 주장들이고 구체적이고 부정하기 어려운 근거가 제시된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설령 저러한 음모론이 다 맞다고 칠 경우에 오히려 극우세력의 입장이 약화되는 결과를 역설적으로 초래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음모론 세트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미 대한민국은 공산세력에 의해 장악되었다.”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입법, 행정, 사법부의 모든 기관이 공산당 간첩들에 의해 장악되어 대한민국 사회는 그들에 의해 조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면 극우세력이 열중하는 “애국운동”은 의미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극우세력들의 묘사에 따르면 좌익 용공세력은 말 그대로 전지전능한 존재들이다. 이정도로 강력한 존재가 있다면 그들은 그들은 거의 신과 같은 존재라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런 자들을 상대로 투쟁하는 것은 도무지 승산이 없는 무의미한 희생일 것이다.
이런 웃기는 역설이 발생하는 이유는 극우세력의 게으른 논증 때문이다. 그들은 지난 수십년간 진보세력이나 온건보수세력에게 패배할 때마다 자기반성을 하기는커녕 모든 문제의 근원을 “막후에 암약하는 공산당 간첩”의 탓으로 돌려왔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세계관은 점점 팽창하여 조금이라도 극우세력의 마음에 안드는 결과가 나오면 그것들이 전부 간첩들의 조작 때문이라는 음모론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음모론 세계관은 너무나도 팽창한 나머지, 그 음모론들을 모두 하나로 합칠 경우 역설적으로 반대파를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수진영의 지적 게으름이 반대파를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웃을 일로 치부할 것은 아니다. 극우세력은 이러한 자신들의 음모론의 무게에 짓눌려 무력감을 느낀 끝에 문제를 해결하려면 극단적인 폭력을 동원해 반대파를 싹 쓸어버려야 한다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 즉, 과도한 음모론에 따른 정신적 무력감이 극단적 사고방식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과 인식의 해리현상은 현대 한국 극우세력의 정치적 인식을 설명하는 중요한 틀이고 동시에 위험한 정치적 행동주의의 정서적 근원이 되고 있다. 주의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