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스쿨 디플로머시

레스 푸블리카 [26]

by 이그나티우스

선데이 스쿨 디플로머시. 한국어로 번역하면 주일학교 외교 정도가 될까?


이것은 내가 만든 조어이다. 서구 국가들의 외교정책이 성서(Holy Bible)에 나오는 지역에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외교정책의 우선순위가 객관적 중요성보다는 국민들과 정책 결정자들의 주관적인 인식에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일단 선데이 스쿨, 주일학교가 무엇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천주교나 개신교 등 기독교 계통의 종교는 일요일에 종교행사를 열고, 끝난 뒤에는 아이들을 위해 교리를 가르치는 무료 학교를 운영한다. 선데이 스쿨, 즉 주일학교란 바로 이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기독교 종교단체의 일요일 교리학교를 의미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영향력이 급속히 감퇴되는 와중에도 여전히 서구인의 대부분은 교회의 영향력 아래 살아간다. 이러한 그들에게 학교의 세계사 수업보다 훨씬 먼저 배우는 것이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는 성서의 이야기들이다. 즉,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많은 서구의 엘리트들에게는 성장기에 가장 먼저 접하는 “국제정치”란 바로 성서에 나오는 고대 중동 정치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나 스스로도 주일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주일학교에서 성서와 천주교 교리를 공부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교회에 발걸음을 옮기는 빈도가 줄어들게 되면서 창세기나 4복음서 정도를 제외하면 내용이 뚜렷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돔과 고모라, 니네베, 나자렛, 베들레헴, 예루살렘, 안티오크, 코린토스와 같은 성서에 나오는 지명들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이것을 이해하기 힘들다면 한국 버전으로 바꿔서 생각해보자. 어릴 적 삼국지를 열심히 읽은 사람들은 현재 중국의 지명은 잘 몰라도 삼국지에 나오는 낙양, 장안, 허창, 업, 하비, 건업, 강릉, 양양, 장사, 성도, 한중과 같은 지명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수들은 백지에다가 대고 삼국지에 나오는 주와 도시의 위치를 비교적 정확하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국지에 비중있게 등장하지 않거나 후대에 생긴 중국의 대도시인 톈진, 은촨, 샤먼, 선전, 랴오양, 하얼빈, 치치하얼과 같은 지역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리송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즉, 어린 시절에 재미있게 들었던 이야기는 나이가 들어서 억지로 주입식으로 배운 지식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고 사고의 틀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북미와 EU 국가들의 외교정책은 그 우선순위에 있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 이들 서구 국가들은 동아시아의 중요성은 과소평가하고 중동의 중요성은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중동 정세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중동은 여전히 석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며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다. 또 서구 국가들이 아시아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세계 최대의 미군 기지는 한국 평택에 위치(캠프 험프리스)해 있으며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끊임없이 아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단순히 중요성에 따른다고 판단하기에는 서구 국가들의 중동에 대한 관심도와 동아시아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영자신문을 몇 달만 구독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영미권 언론의 “국제면”에 등장하는 서구 이외 지역의 소식은 대부분 중동 뉴스이다. 중동에서는 비교적 소규모의 테러사건도 대서특필되어 보도되지만,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대규모 교전상황에 대한 보도는 그만한 비중으로 보도되지 않는다. 그나마 동아시아는 양반이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단편적으로만 다뤄지거나 보도 자체도 제대로 안 되는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다.


단순히 관심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서구의 주요 국가들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을 선언적으로는 주장하지만, 항상 중동 지역의 소규모 지역분쟁에 발목이 잡혀 그곳에 에너지를 소모하고 반대로 아시아 지역의 북한 핵문제와 같은 훨씬 거대하고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는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동아시아에 대한 무관심은 동아시아가 가진 정치, 경제, 문화적 중요성을 생각해본다면 그러한 무관심은 단순한 편향의 문제가 아니다. 동아시아가 재채기를 하면 세계가 골병을 앓게 된다. 20세기 후반 이후 동아시아는 중국, 한국, 일본, 대만이라는 거대 경제대국이 위치한 세계경제의 등뼈와 같은 지역이다. 게다가 핵보유국인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강력한 육군을 가진 한국과 강력한 해군을 가진 일본이 대치하고 있는 국제정치의 가장 중요한 단층선 중 하나이다. 또 세계 반도체산업의 중심인 한국과 대만에 무슨 일이 발생할 경우 그 여파는 짐작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에 대해 단순히 동아시아가 ‘멀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리적인 거리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단순히 그래서 그렇다기엔 이상한 부분이 많은데 중동과 맞대고 있는 유럽 국가들이야 그렇다쳐도 대양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진 미국마저도 중동 문제에 골몰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거리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중동에서는 에너지가 생산된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동아시아에서는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를 비롯한 산업에 필수불가결한 각종 공업제품이 생산된다. 경제적 중요성으로만 따질 때 어느 쪽의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다. 심지어 인구나 경제력 면에서는 동아시아가 중동을 압도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에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세계 대공황이 올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중세와 근세 유럽의 군주들이 광대한 본국의 땅을 버려두고 좁아터진 이탈리아의 도시를 차지하기 위해 항쟁을 벌였던 것처럼, 서구 국가들도 동아시아의 발전되고 거대한 지역을 버려두고 그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중동문제에 골머리를 쏟는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피벗 투 아시아를 항상 외치지만 막상 임기가 시작되면 중동의 복잡한 국제정치로 말려들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패착을 항상 보인다. 이것은 단순히 지정학적 중요성으로만 설명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바로 중동지역은 성서에 나오는 장소이고, 동아시아는 그렇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라는 추측을 제기하고 싶다. 즉, 서구의 외교정책 결정자들은 머릿속으로는 동아시아나 다른 지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결국에는 잘 아는 곳이 중동이다보니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관심이 쏠린다는 것이다. 마치 삼국지 매니아들이 삼국지에 나온 장소를 더 익숙하게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느정도는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의 왜곡을 보여주는 것이 서구의 대중문화에서 다루는 “국제정치”이다. 소위 웰메이드 반열에 드는 것들로 한정할 때 영미권이나 유럽에서 만들어진 전쟁영화나 정치스릴러를 보면 대부분 무대가 중동이나 동유럽이다. (자기네 본국을 묘사하지 않는 다음에야.) 전쟁영화에 사막 위장복을 입고 험비를 탄 소규모 전투부대가 진흙벽 뒤에 숨은 게릴라와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2000년대 이후 전쟁영화의 가장 전형적인 장면이다.


그렇지 않고 아프리카나 아시아 지역이 나오는 경우에는 고증이나 완성도가 많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잘 생각해보면 소위 마스터피스라고 불리는 작품들 중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거대한 전쟁을 밀도있게 묘사한 전쟁영화나 첩보물은 드물다. 그나마 잘 만들어진 작품들은 자기연민과 자기혐오 사이를 어지러이 오가는 월남전에 관한 헐리웃 영화들이 전부이다. 이것도 사실 아시아 자체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6-70년대 미국의 자화상에 가까운 영화들이다. 6.25 전쟁을 다룬 웰메이드 전쟁영화는 사실상 찾기 어렵다.


물론 영화와 외교정책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영화에서 보여주는 시선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그 사회, 그 문화권이 갖고 있는 인식틀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 영화와 마찬가지로 서구의 이른바 ‘엘리트’들은 동아시아에 대해 가장 기초적인 사실조차 어두운 모습을 종종 보여주는데 이것은 영화가 보여주는 지리적 편향이 결코 미디어의 한계에 머물지 않음을 방증한다.


결국 서구의 엘리트들은 아무리 세계사를 배우고, 대학에 들어가 국제정치를 전공한다고 해도 결국에 어린 시절에 지겹도록 들은 성서에 나오는 지역 이외에는 관심도가 흥미가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에 사는 우리들은 서구 엘리트의 그런 지적 편향성을 이해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수, 일 연재
이전 25화2-30대 여성들의 남성혐오가 이해되지 않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