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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요한 Aug 05. 2021

하마와 누치

하마와 누치          


 누치는 하마를 청소해주며 입, 몸에 있는 기생충과 잔여물을 먹으며 산다. 우리 또한 누군가의 몸을 닦아주거나, 집을 치워주며 사시는 분이 있다. 누치처럼 우리는 먹고살기 위한 생존을, 누군가는 절대적 직업 가치를 정해 비난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친구들과 만나 술자리를 가지려 노력하지만 다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쉽지는 않다. 


 1~2주 전에 약속을 잡고 술자리를 갖았다. 우리의 얘기를 하다 자연스레 주변 사람의 근황이 궁금했다. 이름만 아는 사람이 떠올라 친구에게 물었다.      


 “A형은 잘 지내?”     


 친구는 본인의 내적 갈등을 표정으로 표현한 체 답했다.     


 “장례식장에서 일해. 염(殮)”     


 친구의 머뭇거리는 태도가 이해는 되었기에 웃으며 답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인데다가, 장래가 밝은 직업이네. 우리 또래는 하지 않으니까 더 경쟁력 있겠다.”


 장례식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절대 천하지 않고, 무시 받을 직업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숭고한 직업으로 인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데 집중할 수 있다. 다만 친구가 말하기 꺼렸을 이유는 죽음을 마주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직업을 무시하는 풍토가 남아 있다. 고려 시대에는 신량역천이라 하여 어간(어업), 염간(염전), 목자간(목축), 철간(탄광), 봉화간(봉수군)을 차별했다. 도살업 종사자, 진척(뱃사공), 재인(광대)는 호적 등재도 안 시켜주고 가장 천시했다. 조선 시대라고 달랐을까. 신량역천의 종류만 달라졌을 뿐이다. 수군(水軍), 조례(관청 잡역 담당), 나장(형사 업무), 일수(지방 고을 잡역), 봉수군(봉수), 역졸(역에서 잡역), 조졸(조운 업무)을 차별했다. 노비와 백정, 무당, 광대, 창기는 천민 취급받았다. 신분제 폐지가 1차 갑오개혁에 폐지되었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신분제가 있는 듯하다. 


 우리의 잘못된 가정교육도 한몫했다. 인터넷에서 어떤 그림을 보았다. 아이와 어머니가 같이 있었다. 어머니는 청소부를 보고 ‘너는 공부 안 하면 커서 저렇게 되는 거야.’라 말했다. 그 옆에 있던 다른 아이와 어머니는 말했다. ‘너는 공부해서 저런 분들도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해’라 말했다.


 둘 다 잘못됐다. 취업만을 위한 공부가 세상에 다라고 생각하는 시험형 태도는 답이 아니다. 공부가 어떤 공부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청소부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는 태도를 배웠어야 한다. 


 블루칼라 직업, 현장 직업은 경시하고 열등하게 대하는 태도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사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데 말이다.


 헌법적으로 직업은 유해성을 고려하지 않고 직업을 폭넓게 인정한다. 어떤 돈벌이 수단이 직업일 수 있느냐와 그 직업을 금지·제한할 필요가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로 취급한다. 직업을 인정하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이다. 생활수단성, 계속성, 경제성이다. 즉,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계속할 의사를 가지고 진행하는 돈 버는 일이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기에 직업도 없어지고 생겨나고 끊임없이 반복한다. 예전에는 물을 파는 건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직업을 경시하고 자신만의 절대적 기준으로 가치 있는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을 나누는 행위는 감사함의 부재이다. 누군가는 청소하는 직업을 경시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집에서 일어난 살해현장을 치우기에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누구나 하기 싫어하지만 그들은 한다. 그들의 직업에 대해 존중하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 자신을 위해 일을 해줬음에 감사할 것이다. 물론, 돈을 줬기 때문에 서로가 움직인다는 시각도 동의한다. 하지만 철저하게 돈으로 모든 게 움직여지고 해결된다는 시각은, 본인도 무언가를 할 때 전혀 고마움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돈 준 만큼만 일한다는 기계임을 의미할 수 있다.


 나 또한 이 문제가 굉장히 난해하고 어려운 문제임을 안다. 일련의 기준을 정하는 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직업이 똑같이 평등하게 취급받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은 존재한다. 군인, 경찰, 소방관 등이 그렇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일을 하고 급부를 받는다. 다만 청소부라고 다르게 적용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한다.


 본인이 절대적 기준이라 생각해 상자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 상자 밖에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점은 감사함이 상자 이외에 많은 물건이 존재함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자 밖에 사람도 볼 수 있게끔 해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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