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대로 설계하는 건축가

by 이고아

며칠 전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갔다가 한 미용사분이 10살 남짓한 아이에게 한 컷 자를 때마다 괜찮은지 아이의 의견을 물으면서 머리를 정리해주시는 걸 보았다. 참 세심한 분이시구나 생각하는 동시에 과거 내가 미용실에 갔을 때 윗머리는 어떻게 해주시구요, 구렛나루는 어느 정도, 뒷머리는 어느정도 세밀하게 요청했던 적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집에 돌아와서는 만족하지 못해서 그 미용실은 안가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여러번이다.


그러다가 지금은 몇년째 같은 원장님에게 요청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요청하는 세밀한 사항을 요청하고 맞추어서 잘라주시는게 아니라 내가 느끼는 단점이나 상황들을 설명하고 그 설명을 원장님의 경험에 맞추어 나를 위해 맞춤으로 잘라주시기 때문이다.'


"저는 뒷통수가 납작해서 머리가 자꾸 눌리구요, 어렸을 때 스포츠로 머리를 잘랐던 기억이 좋지 않게 남아서인지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보다는 지금 기장이 좋지만 너저분한 모습을 정리하는 정도였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서 원장님이 설명해주시길 뒷머리는 층을 내주어서 머리가 눌리는 걸 최대한 방지해주시고, 기장은 정리하면서 평소 스타일 내는 방식에 적합하게 잘라주셔서 매번 나가는 길에 만족스러운 미소와 인사를 나누는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때로는 세세한 요청보다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게 좋다라는 걸 몸소 느낀 것이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사들마다 배워놓은 경험들이 다 제각각이고 각자 설계하는 방식이 조금씩은 다르다. 건축계획론이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에 그것을 기초로 한 개개인의 설계안들이 다양하게 나온다. 내가 무언가 성격이 강한 건물을 설계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가끔 상담을 하러 오시는 분들 중에 내부 치수부터 마감 형태 등 모든 것을 다 정해놓고 설계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땐 내가 설계를 한다는 생각보단 도면을 그리지 못하니 내가 대신 도면을 그려주는 도구처럼 느낄때도 있다. 극단적인 표현일수도 있지만 미용실에서 내가 느꼈던 것처럼 세세한 요청을 한다고 해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내게 적합한 건물을 짓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원하는 세밀한 요청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불편하거나 개선할 사항들이 있는지 고민할 시간과 해석할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정답이 정해진 것 같은 요청이 아닌 건축가가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요청이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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