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하고 개척하라

Rainbow Six가 25년 동안 한계를 부숴온 과정

by Gil


1998년, 톰 클랜시의 소설을 원작으로 세상에 첫선을 보인 <레인보우식스>는 원샷 원킬의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하며 FPS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25년이 흐른 지금은 밀리터리 비디오 게임을 넘어 전 세계 수천만 명의 플레이어가 열광하는 거대한 라이브 서비스 플랫폼이자 글로벌 e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했다. 게임의 시스템과 스케일이 진화하는 동안, 유저들에게 게임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Visual Identity 역시 뼈를 깎는 변태 과정을 거쳐왔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1. 로고 변천사

초창기의 리얼리즘 하드코어 밀리터리 감성에서 출발해, 현재의 세련된 브랜드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


Rainbow 6의 태동

초기 로고들의 특징은 좌측에 붉은색 피를 연상시키는 불규칙한 선으로 그려진 십자선 마크이다. 이 시기의 <레인보우식스>는 택티컬 리얼리즘을 지향했기에, 플레이어가 대테러 부대의 대원이 된 듯한 긴장감과 살상성을 표현했다. 후속작 <락다운>, <크리티컬 아워>부터는 사격 자세의 군인 실루엣이 텍스트 옆에 슬쩍 등장하는데, 게임의 포커스가 '사격'에서 '오퍼레이터(대원)'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로고에서부터 알 수 있다.



내러티브와 대중성의 확장

<베가스> 시리즈를 기점으로 10년 가까이 쓰이던 붉은색 십자선 마크가 완전히 사라진다. 대신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 실루엣이 브랜드의 공식 심볼로 확고히 자리 잡기 시작한다. 3인칭 시점 도입 등 대중적인 액션 장르로 노선을 변경함과 동시에, 무거운 밀리터리 시뮬레이터의 느낌을 덜어내고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네거티브 스페이스와 시각적 긴장감

<시즈>의 알파벳 SIX를 검은색 배경에 하얀색 공간으로 파내듯 표현했다. 또한 별도로 쓰이는 엠블럼 숫자 6 안에 권총의 실루엣이나 총알의 형태가 음각으로 숨겨져 있다. ‘Siege’는 ‘포위망’이라는 뜻으로, 네거티브 스페이스 디자인을 통해 벽 너머에 숨어있는 적, 매복, 예측할 수 없는 공격이라는 핵심 플레이 경험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로고 리뉴얼

<시즈>는 2021년에 한 번의 리뉴얼 과정을 거친다. 수직선을 없애고 폰트를 납작하게 눌렀으며, SIEGE를 이탤릭체와 날카로운 절개선을 넣어 e스포츠 로고로서의 스포티함과 경쟁을 강조한다.



장르 변주

<익스트랙션>은 스핀오프 시리즈로, 공포 스릴러 분위기를 위해 노란색 경고 테이프로 부제를 구성했다. <시즈>의 리뉴얼 버전 로고가 아닌, 이전 버전 로고가 적용된 배경을 찾아보니, 원래 <익스트랙션>은 2019년 <레인보우 식스 쿼런틴(Quarantine)>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표된 프로젝트라고 한다. 하지만 당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급하게 타이틀을 변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즈> 10주년 대규모 리브랜딩

<시즈 X>로 2025년 또 한 번 개편되는데, 미래지향적 기하학 폰트를 사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전술 환경으로의 진입을 선언하는 듯하다. 글자의 두께가 극단적으로 두꺼워졌고, 모서리를 절단한 형태는 산업/군사적인 디자인 언어로 변화했다. 텍스트 가운데에는 전술용 파괴 해머(Breaching Hammer)를 배치해 <레인보우식스>의 정체성인 파괴와 돌파를 담아내었다. 또 <레인보우식스>의 약칭은 R6, R6S로 불리는데 이를 공식 로고로 제공했다.



플랫폼 확장

모바일 버전은 묵직한 흑백 대비에서 벗어나 밝고 산뜻한 Cyan 컬러를 적용했다. 하드코어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캐주얼 게이머에게 접근성을 높이려는 타겟팅 전략이자, 기존 시리즈와의 차별화를 둔 것 같다.

<레인보우식스 모바일>은 시즈의 핵심 전술 경험을 모바일로 그대로 가져온다는 모토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015년의 <시즈> 로고 (유저들이 처음으로 파괴, 매복, 비대칭 전술을 알게 된)로 근본적인 경험을 이식했다는 의지를 보여주고자 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권총에서 총알로

숫자 6 안에 있던 권총 실루엣이 뭉툭한 총알 형태로 교체됐다. 글로벌 e스포츠 플랫폼으로 거듭나기 위한 변화로, 스케일 축소 시에도 가독성이 높은 형태를 지향한 것이라는 의도이다. 또 콜라보레이션 과정에서 노골적인 총기 이미지가 줄 수 있는 거부감을 없애 진정한 스포츠 엠블럼으로 다듬어내었다. (팬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강하게 갈린다)





2. 비주얼 아트워크

패키지 아트에서 시각적 서사로



타이틀 패키지

초창기엔 어두운 배경에서 총을 겨누는 전형적인 밀리터리 장르의 클리셰로 표현된다. 우측 이미지의 좌상단 <시즈>가 시즌제 라이브 서비스로 전환하면서 표현력의 한계가 해방되는데, 점차 인물 중심에서 색감과 상징적 오브제만으로 시즌 별 분위기를 전달하는 Rainbow Six만의 세련된 문법을 찾아간다.




로고 커스터마이징

<시즈> 초기 아직 브랜드가 완벽히 자리 잡지 않아, 방패 모양의 6 로고를 도화지처럼 활용했다. 로고 안에 얼음 질감을 넣거나 페인트가 갈라지고, 흘러내리는 효과를 주며 장식적인 접근이 있었다.




서사와 환경으로 초점을 옮겨가다

배경/환경이 화면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로고는 텍스처를 뒤집어쓰는 대신 깔끔한 단색으로 작게 배치되어 정보 전달에만 충실한 기능적 요소로 쓰인다. 키 비주얼의 색상표와 톤앤매너만으로 시즌의 성격을 분리시킨다.




장르 변주와 과감한 시도

재난 스릴러 포스터 같은 <Chimera>, 비 내리는 바닥의 반사 연출의 <Grim Sky>, 강렬한 핫핑크 배경의 <Burnt Horizon> 등 아트 디렉션이 매우 과감해지며, 시각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추상과 은유, 로고의 완전한 독립

대테러 게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철학적 이미지로도 시도되었다. 특히 <Shadow Legacy>는 그림자와 3개의 초록색 빛만으로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알린다.




오퍼레이터의 스포트라이트

오퍼레이터(대원)들이 마치 영화 주인공처럼 연출된다. 밀리터리 특유의 칙칙함을 벗어던지고 캐릭터 비즈니스로 강렬한 브랜딩 전략을 보여주며, 팝아트적 접근과 특유의 패턴 스타일, 시점의 다양성을 선보인다.




서사의 정점, 다시 초심으로

<Deadly Omen>은 최초로 메인 빌런을 전면에 내세워 서사를 극대화한 후, 최근 시즌에 이르러서는 다시 흙먼지가 날리고 파편이 튀는 초창기의 거칠고 묵직한 하드코어 전술 비주얼로 회귀했다. 브랜드 사이클이 한 바퀴를 돌아 근본을 다시 다지고 있다.




시각적 분리

스핀오프 <익스트랙션>은 옐로우 배경과 대비되는 기괴한 외계 물질을 메인 아이덴티티로 삼았다. 작은 썸네일을 스쳐 지나가듯 보더라도도 <시즈>와 완벽하게 분리되어 인지되도록 의도한 듯하다.




시원시원하고, 유쾌한

패턴을 활용한 e스포츠 비주얼들은 시원한 구성으로 멋지게 표현되었다. 또 할로윈, 레트로 SF 등 기간 한정 이벤트 비주얼은 본 편의 무거운 톤앤매너를 벗어나 유쾌한 일탈로 풀어낸다.




브랜드의 영혼이 담긴 키아트

벽과 바닥을 관통하는 흑백(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는 "쏘는 것보다 뚫는 것이 중요하다"는 비대칭 전술을 완벽히 번역한 명작이다.




e스포츠 브랜딩

각국의 국기, 출전팀의 깃발들, 챔피언을 상징하는 월계수 등 고급스러운 명예의 전당처럼 연출한다. 대테러 작전이라는 게임의 본질보다는 명예와 스포츠맨십을 채워 넣어, 스포츠 엠블럼으로 승격시켰다.




패턴 그래픽

돋보이는 사선 패턴은 스타일리시할 뿐만 아니라, e스포츠라는 장르적 특성에 완벽히 부합하는 이유 있는 디자인이다. 역동적인 스포츠 그래픽의 표본과도 같으며, 컬러 밸런스 또한 매우 훌륭하게 잡혀 있다.




세계관 속으로 침투한 Diegetic 상징

작전복 패치, 총알구멍, 철조망, 표지판 등 게임 속 물리적인 사물과 상징들로 ‘유저의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매우 세련된 브랜딩 기법을 선보인다.






벽을 부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비디오 게임의 낡은 틀을 부수고 글로벌 e스포츠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열어젖힌 브랜드의 멈추지 않는 에너지가 해머 스윙에 오롯이 담겼다.


초창기 브랜드의 상징이던 '붉은 십자선'은 게임의 스케일이 커지며 과감히 버려졌다. 네모난 타이틀 패키지 커버의 한계는 라이브 서비스의 도입과 함께 무너졌으며, 로고 자체를 화려하게 꾸미던 1차원적 시도를 지나 이제는 순수한 아트 디렉션만으로 매 시즌 새로운 서사와 분위기를 창조해 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낡은 장르적 클리셰와 디자인의 한계를 부수며, 끊임없이 유저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온 <레인보우식스>의 파괴와 개척. 게임은 기술과 함께 시간이 지나면 낡아 보이지만, 끊임없이 진화하는 브랜드는 늙어 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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