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러 가지 않은 이유

매장에 불이 날 뻔했던 오후, 그리고 직감

by 고닉


1/28 있었던 일.


점심시간이 슬슬 마무리되어갈 무렵, 엄마의 지인분이 매장을 찾아오셨다.

나 포함 셋이서 함께 식사를 했고, 두 분이서 업무차 이야기를 나누다가 브레이크 타임 때 나에게도 같이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제안해 주셨다. 평소의 나는 늘 밖에 나가고 싶어 안달인데, 왠지 오늘은 나가기 싫었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게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두 분은 외출을 했고, 나는 주방에서 설거지를 했다. 전날 강정을 만들고 포장하느라 팔꿈치에서 욱신거리는 신호가 느껴졌고, 몸과 정신 모두 피곤의 정점에서 설거지를 거의 다 할 무렵, 어디선가 탄내가 나기 시작했다.


졸음도 피로도 달아나는, 생존을 위협하는 냄새였다.


처음에는 가스가 새는 건가 싶어서 확인했으나 가스밸브는 모두 잠겨있었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냄새인 건가 싶어 바깥을 확인해 보아도 화재현장은 보이지 않았다. 점점 내 후각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평소에 팬이 요란하게 돌아가는 냉장고가 있어서 그곳에서 문제가 일어난 건가 싶어 냉장고 전원을 내려도 탄내는 계속 났다. 무심결에 옆을 돌아봤을 때 지독한 냄새의 근원지를 찾았다. 창가 옆에 꽂혀있는 콘센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던 것이다.


그 광경을 목격한 순간 내 머릿속에선 이미 매장이 폭발하고 있었다.


연기 나는 콘센트를 맨손으로 잡으려 했고, 밖에 나갔다가 소화기를 들었다가, 주방에 두고 온 휴대폰을 다시 가지러 가는 등 허둥거리며 판단력이 흐려졌다. 정신을 붙잡고 소방서에 전화해 나의 위치와 현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목소리는 차분하게 나왔지만, 휴대폰을 쥔 손이 너무 떨려서 다른 한 손으로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도 진정되지 않았다. 소방서에서 우선 차단기를 내릴 수 있으면 내리라고 했다. 전원을 내리는 단 1~2초 남짓한 시간 속에서도 ‘죽음’은 다양한 장면으로 나를 엄습했다. 전원을 차단해서 자동문이 열리지 않는 게 당연했지만 순간적으로 폐쇄된 엘리베이터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밖으로 나와서 찬 바람을 맞으니 다시 침착해졌고 그제야 손을 떨지 않고 엄마에게 전화를 할 수 있었다.


소방차가 먼저 왔고 뒤이어 엄마가 도착했다. 원인은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사용하던 오래된 콘센트의 과열이었다. 내전반을 확인했고, 필요한 조치를 설명해 주고 화재현장이 아님을 확인한 소방관들은 다시 돌아갔다. 이후 경찰과 한전도 출동하여 현장을 보고 돌아갔다. 불이 꺼진 매장에서 소방관과 경찰관이 드나드는 와중에 어떤 남자가 매장에 들어와 식사 가능하냐고 물어봤다. (인생이란…)


다행히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 가게에도 큰 피해는 없었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알고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마음속에 살아있는 불씨를 완전히 꺼버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일 내가 직감을 무시하고 다 같이 외출을 했더라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 아찔하다. 어쩌면 그날의 선택은 우연이 아니라, 나를 오래 불러오던 신호에 대한 응답이었을지도 모른다.


과열로 녹아내린 콘센트. 불이 나기 직전이었다.


정말 천운이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고, 마음의 소리를 잘 들은 덕분에 우리 가게는 물론 건물과 주변 상권까지 지킬 수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죽기 직전에 가장 소중한 것들이 떠오른다고.


죽음이 엄습하는 두려움 속에서 내가 느낀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 앞에서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일이 바빠서, 보여줄 만한 문장이 아니라고 느껴서, 아직 그만한 경험과 관록을 갖추지 않은 것 같아서...

글을 쓰고 싶었지만 쓰지 않은 시간들.


살이 많이 쪄서, 몸이 굳어서, 댄서들만큼 잘 추고 싶지만 그만큼 연습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춤을 추고 싶었지만 추지 않은 시간들.


이중구속 상태에서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왜 억누르기만 했을까.


직감이 자꾸만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한 번 사는 인생, 좀 더 과감하고 솔직해지라고.


이번 일이 내게 아주 큰 메시지를 던졌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고.


이 물음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져 나만의 대답을 찾고 싶다.

그렇게 조금씩, 내가 바라는 삶에 가까워질 것 같다.


그러기 위해 계속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는 기록을 남겨보자고 다짐한 어느 새벽.

작가의 이전글자기 회복을 위한 알아차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