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라, 숀 베이커

강간범이 아닌 이의 눈빛을 처음 마주친 유능한 신데렐라의 곡지통

by 뉘뉘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귀여운 여인을 보고 줄리아 로버츠가 리차드 기어한테 맞고 살까 봐 걱정한 사람은 나밖에 없나? 그들이 실제 인물이라면, 이란 쓸데없는 가정으로 이후 삶을 상상하고 나는 조금 근심했다. 신경을 마비시키는 짜릿한 이벤트가 지나가면 세세한 권태들이 일상을 채울 텐데, 남자는 여자가 쩝쩝대며 먹는 모양이 거슬리고, 지나가는 남성에게 건네는 상투적인 미소에 “빡”이 돌고, 동료들이 병신이라고 수군대는 소리를 들어 폭발할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 큰 입을 활짝 벌리고 웃는 여자의 청량한 미소로 박제되어 끝나지만(진짜 마지막 장면이 이렇다는 건 아니고), 인생은 사진이 아니니까 죽기 전까지는 연속적인 영상이 끝나지 않으니까.

아노라는 줄리아 로버츠를 구름 위에서 멱살 잡고 끌고 와 땅 위에 붙여 놓고 리차드 기어를 발로 차 흰 말에서 떨어뜨려 버린다. 매춘부와 억만장자의 사랑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면 딱 이런 모습일 거라고 나는 충분히 상상했다. 이 사랑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형태를 제거하고 순수한 정수가 있을 것 같이 포장하는 것이 오히려 사랑에 대한 모욕이니까. 우리 시대의 슈퍼 히어로, 찰스 다윈께서도 증명해 주신 당위 아닌가. 어차피 인간사 모든 노력, 다 섹시하자고 하는 짓이다.


아노라가 애니라는 이름의 성 노동자로 일하는 첫 장면은 섹시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너무 경쾌해 청명하기까지 하다. 이를 비롯한 여러 야한 씬들이 꼭 필요했는지, 관객의 쾌락을 위해 착취적으로 쓰인 것은 아닌지 논쟁이 있다는데, 나는 아노라의 유능함을 보여주기 위해, 또 엔딩 장면과의 대비를 위해 필수적이었다는 미천한 의견을 보탠다. 게다가 아노라의 섹슈얼한 노동 행위를 보는 이는 관객만이 아니다. 아노라 자신도 선명한 시선으로 이를 응시한다. 그녀는 무턱대고 육감적이지 않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실험을 설계하는 학자처럼, 잘 벼린 칼로 뼈에서 살을 분리하는 초밥 장인처럼, 끝까지 꼼꼼하게 볼트를 조이는 기술자처럼 그녀는 정확한 계산 하에서 사랑스럽고 수줍고 감질나고 과감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전략이 연기가 아닌 진실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녀는 친절하게 설명하고 위로하는 간호사처럼 기능한다. 그녀는 착취당하는 가련하고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을 어쩔 수 없이 권태롭게 하는 수동적인 존재도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명확히 아는 전문가다.

“전형적”이지 않게 나비 문양을 붙인 손톱을 하고 후드티를 뒤집어쓴 채 퇴근하여 근처 지하철(지상철이라고 해야 하나..)이 다니는 소음에도 밤잠 같은 낮잠으로 밤새 깨어있던 뇌를 진정하다가, 쇼타임이 되면 그녀는 지독히도 프로페셔널하게 남자들의 무릎 위로 입수한다.


아노라는 이러다가는 정말 한강 물도 마를 것처럼 돈을 써대는 억만장자(정확히 말하면, 의 아들)인 이반을 손님으로 만난다. 그는 해맑(정말 텅텅 소리가 나도록)다.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걸리적대는 일은 아무것도 처리할 필요가 없는(청소라던가, 정리라던가, 비행기 표 예약이라던가) 그는 ‘난 언제나 행복한데’라고 말할 수 있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말을 진심으로 믿게 만드는 세상 몇 안 되는 ‘행운아’다. 무턱대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돈과 시간이 있는데 ‘고민’이란 게 무슨 필요가 있는가. 일반적으로 이런 캐릭터가 가지는, 고독에서 비롯되는 피폐함이나 분노도 전혀 없이 그는 순수하게 즐거워 보인다. 다들 금수저 타령을 할 때 크게 동요하지 않던 내가 처음으로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기껏 백 년도 안 되는 인생 저렇게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심하지만 귀여운 철부지 총각을 보는 동네 아줌마의 미소를 짓는다.

돈을 써도 써도 계속 쌓이는 행복한 백치 청년은 아노라에게 랩댄스를 받고 그녀를 집으로 초대한 후 만 달러를 대가로 일주일 동안 자기와 놀아줄 것을 제안한다. 아노라는 노련하게 만오천 달러로 합의를 본 후 꿈같은 일주일을 보낸다. 라스베이거스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 전용기를 불러 날아간, 돈을 잃으면 종이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일 뿐이라 돈을 잃으면 인생을 잃는다는 공포가 없는 젊은이들은 주어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즐긴다. 나는? 나도. 덕분에 팔자에 없는 쾌락에 한 발 담그고 덩달아 신이 나, 근심 없는 인생이란 혹시 가능한 게 아닐까, 돈과 섹스와 센스만 있으면, 하고 자문한다.

이 일주일이 너무 완벽했기에 그들은 순간을 영원으로 붙잡고자 한다. 커다란 다이아 반지를 당장 구입하고 작은 교회당으로 달려가 혼인 서약을 한다. 꿈꾸는 것이 이루어지는 여기는 라스베이거스가 아닌가.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앙숙이던 동료가 악담을 퍼부을 때 일말의 동요도 않고 “질투는 병이야!” 하며 경쾌하게 걸어 나가는 아노라는 가뿐하게 질주하는 잘 빠진 고급 차를 연상케 한다. 나 같은 자본주의의 마지막 패배자마저도 침을 흘릴 자태다. 그녀에게 반하지 않을 강심장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할까!


이제 귀여운 여인은 보여주지 않는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한 후의 이야기가 시작될 차례다. 줄리아 로버츠의 앞날과는 달리 아노라의 미래는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우리의 아노라는 전문가니까. 저 허술하고 해맑기만 한 부자 청년을 잘 구워삶고 조정하면 그녀는 전설에만 존재한다는 ‘해피리 에버 애프터’란 과제를 달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기대와 달리 당당하던 아노라의 태도는 결혼 후 미세하게 바뀐다. 비디오 게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조이스틱을 움직이는 이반의 팔 아래 안긴 아노라의 눈빛은 분명 초조한 이의 그것이었다. 며칠 전 데칼코마니같이 같은 상황에서는 그녀는 여유롭기만(눈빛의 질감만 달리 해내는 미키 매디슨의 연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했다. 아노라는 가족들에게 자신을 소개해야 하지 않냐고 물으며 이반의 게임을 방해한다. ‘영화’ 같던 순간들은 곧 사라지겠구나. 아노라가 이반의 게임을 방해하는 일은 반복될 테고, 그때마다 잔소리와 귀찮음의 강도는 세질 테고, 이반은 결코 그것을 인내하지 않을 테니까.


이반의 뒤를 봐주는 ‘해결사’들이 결혼 소식을 들은 부모님이 분노하여 날아오는 중이라는 소식이 전하면서 영화는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간다. 이반은 간신히 바지만 챙겨 입고 줄행랑을 치고, 해결사 셋과 남겨진 아노라는 사태를 파악하지 못해 악을 쓰고, 그녀의 기세에 눌린 해결사들은 그녀를 진정시키려 고군분투한다. 그 자체로 잘 완성된 부조리극으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는다는 몸싸움 장면은 아노라가 얼마나 강하고 당당한 사람인지 가늠케 해준다. 해결사들은 이반의 부모가 러시아와 미국을 잇는 태평양 상공에 있는 동안 결혼을 무효화해야 하고, 아노라는 사태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가 되더라도 우선 이반에게 직접 들을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공동의 목적, ‘속히 이반을 찾아라!’를 지니고 해결사들과 아노라는 동분서주한다.

더 이상 이반의 종적을 추적할 방도가 없어 포기할 때쯤 그가 아노라의 옛 일터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모두 우당탕 몰려가 찾은 이반은 인간이라기보다 감자 포대라고 부르는 게 나을 만큼 약에 절어 있다. 아노라의 몰락에 고양돼 이반의 무릎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앙숙에게 아노라는 내연녀의 머리채를 잡는 조강지처같이 악을 쓴다. 질투는 병이야,를 외치던, 유명 스포츠카처럼 세련된 태도는 어디로 사라진 거지? 나는 혼란했다.

아노라가 이반에게 직접 듣고자 한 것은 결혼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말이었다. 나는 더 혼란했다. 이반이 이번 생에 착수한 가장 진지한 고민이란 신생아 때 대체 젖을 어떻게 빨라는 걸까, 하고 숙고하던 정도가 전부임이 자명하지 않은가. 그 똘똘하고 여유롭던 아노라가 왜 이렇게 명명백백한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매달리는가. 나는 차라리 그녀가 평생 다시는 일터로 돌아갈 일 없게 한몫 잡을 거액을 협상하길 바랐다.

이반은 찾았지만 혼인을 무효화하려는 해결사들의 목적도, 이반의 ‘진실한 사랑’을 확인하려는 아노라의 목적도 달성되지 못한 채 모두 부모를 맞이한다. 나는 세계에서 돈 많기로, 따라서 권력도 세기로 100등 안에 들 것 같은 이들 앞에서도 기세를 꺾지 않는 아노라의 아슬아슬한 태도에 그나마 조금은 위안받지만, 이혼 절차를 밟으러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이반의 진심을 확인하려는 아노라의 의지에 여전히 당황하는 중이다.


아노라의 급선회된 태도 외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또 하나 생긴다. 이반은 왜 부모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쳤는가. 신용 카드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탈출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그의 부모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이는(자녀일지라도) 죄책감 없이 귀를 자르는 냉혈한일 거로 생각했다. 막상 대면한 그들은 이성적인 편이었다. 아버지는 상황이 빚어낸 부조리의 농담에 탁, 하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고, 어머니는 아노라에게 ‘너 따위가 감히 귀한 우리 아들을,’과 같은 상투적인 대사를 하긴 하지만 역시 일반적인 부모의 반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상식적인 수준이었다.

이반이 대면하길 거부하고 도망친 것은 부모의 압박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이었나. 모든 것이 뜻대로 되는 인생의 거대한 그림자는 약으로 흐리게 하지 않으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허무함인가.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커질수록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도 커지는(나는 뜬금없이 마지막 황제, 푸이가 떠올랐다) 것인가. 그는 뭘 어떻게 하겠냐고, 이제는 끝이라고(아노라가 간절히 듣고 싶던 말과 반대로) 공표하고 선글라스를 쓴 채 아노라의 인생에서 퇴장한다.


해결사가 제시한 일주일 결혼생활의 대가, 겨우 만 달라는 이반이 그녀에게 윤락녀로서 제안한 일주일 치 임금과 정확히 일치한다. 아노라는 협상하지 않는다. 단지 결혼의 징표로 받아낸 다이아몬드 반지는 “자기 것”이므로 받아내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큐빅 반지라 하더라도 그녀는 그것을 가지려고 했을 거(아닐 수도 있지만)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마무리를 담당한 해결사 이고르와 이코노미석을 타고 이반의 집으로 돌아와 짐을 빼고 이 주일간 한여름 밤의 꿈 같던 이벤트를 정리한다. 이고르는 시종일관 친절한 태도를 보이지만, 아노라는 해도 해도 너무한 모욕으로 그에게 대응한다. 그녀의 육두문자가 화려해지고, 그녀가 그를 강간범 취급하며 도발의 수위를 올리고, 저러다 한 대 맞지, 싶어 나의 마음이 조마조마해질수록 오히려 아노라의 꺾이지 않는 위엄이 드러난다. 이런 걸 역설이라고 하나.

이반의 엄마에게 ‘너는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악담을 들은 그녀를 위로하려 이고르가 ‘그 가족이 되지 않은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말을 건네자 아노라는 격노한다. 나는 영화 중반부터 끌고 오던 의문의 조금 헐렁한 매듭을 발견한 듯했다. 그녀는 정말 가족을 가지길 원했던 게 아닐까? 신생아보다도 덜 진지한 남자와 함부로 꿈 꿀만큼 간절하게. 그것이 그녀가 그토록 이반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던 절망의 실체가 아닐까. 그녀의 전사(前史)를 우리는 모른다. 양부에게 추행당했는지, 모친에게 학대당했는지, 가족의 살해 장면을 목격했는지, 혹은 매우 평범해 보이지만 내적으로 결핍을 가진 환경에서 자랐는지, 오히려 결핍 없이 자라 가족이라는 노스텔지아를 가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자기 일에 있어 철저히 전문가인 그녀는 돈과 형식이 걷어진 실제 관계에서는 완전히 무능하다. 그녀는 꼬마 억만장자의 치기 어린 장난과 진지한 남성의 진심 어린 응원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고르는 처음으로 그녀를 애니가 아닌 진짜 이름 아노라로 불러준 사람, 영롱한 그녀의 빛을 알아봐 준 사람이 아닌가.


모든 일을 처리하고 헤어지는 순간, 이고르는 그녀에게 결혼반지를, 그녀가 얻어낸, 그녀가 빼앗긴, 그녀가 내 것이라고 악을 쓰고 지켜내려 했던 것을 건넨다. 아노라는 처음으로 그를 악다구니 없이 응시한다. 그녀는 생애 최초로 강간범이 아닌 이의 눈빛(이고르 역의 배우는 실제로 장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여리고 선한 눈빛을 지녔다)을 마주했는지 모른다. 이고르가 전하는 궁극적인 친절의 실제를 확인하고 당황하는 아노라, 그녀가 순간 대면한 낯선 감정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분노로만 대체되던 그 감정은 슬픔일까.

친절을 베푸는 이에게 “고맙다”라고 말하면 된다는 것을 아는 우리와 달리 무능한 아노라는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의 인력(引力)에 끌려 자신의 방식으로 그와 소통을 시도한다. 속옷을 내리고 그 위에 올라타는 것이다. 이는 영화 초반 경쾌하던 섹스들과 얼마나 다른가!

아노라는 갑자기 견딜 수 없는 감정에 말려 애꿎은 이고르를 때리고 비통한 곡지통을 터트린다. 그녀가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지 우리는 모른다. 이고르와 연애를 시작했을지, 제 버릇 개 못 주고 자극하다가 진짜 매 맞는 여자가 되었을지, 그리고 헤어지거나 헤어지지 못했을지. 그러나 적어도 그녀가 이고르 덕분에 닫혀있던 자신의 한 면을 열어본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그녀의 절절한 비애에도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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