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산, 나의 시간

by 달빛라디오

2025년 10월 6일 월요일,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돌아왔다.

우리나라에는 참 고운 풍습이 있다. 매년 음력 1월 1일 설날과 8월 15일 추석에는 직장인들에게 꿀같은 휴가가 주어지고,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오랜만에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조상께 예를 올리는 시간이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는 해외여행 대신 부모님, 동생네 가족과 함께하기로 했다. 특히 아버지께서 몇 달 전부터 “올해는 꼭 임실 조부모 산소에 다녀오자” 하셨다. 서울에서 먼 길이라 망설였지만, 아버지의 단호한 목소리에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았다. 추석 당일이라 도로가 막히리라 예상했는데, 역시나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게다가 비까지 내렸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운전하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빗속을 달리며 문득 생각했다. 아버지가 왜 이번에 그토록 산소에 가고 싶어 하셨을까. 아버지 세대는 조상을 향한 마음이 깊고, 자식 세대에게 그 전통을 남겨주려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서울에서 임실까지의 거리는 그 마음을 이어가기엔 쉽지 않은 길이다. 아버지도 이번에야 실감하신 듯했다. “조부모 산소가 너무 멀어서 너희 세대나 손주들이 오기 힘들겠구나.”


아버지는 조부모 산소 자리 아래에 자신의 묘를 쓰려 하셨다. 그러나 작은아버지들과 논의 끝에 “조부모의 산소는 그대로 두되, 각자의 집안에서 알아서 하자”는 결론이 났다. 그 말을 전하시던 아버지의 표정에는 어딘가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며 전통은 조금씩 모양을 바꾸고, 조상의 자리는 세대의 거리만큼 멀어져 간다. 아버지는 이제 수도권 인근에 가족묘를 만들어야겠다는 뜻을 보이셨다. 예전 같으면 조금 다투더라도 고집하셨을텐데 이제는 내려놓고 가족들이 가까운 곳에 스스로 준비하고 싶으신 모양이다.


나는 그 마음이 아렸다. 아버지의 걸음이 예전보다 느려지고, 손등의 핏줄이 더욱 선명해졌다. 한 세대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언젠가 나도 이 길을 걷겠지. 그때 내 자식들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바라볼까. 생각이 깊어질수록 차창 너머로 비에 젖은 산들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돌아오는 길, 나는 조용히 먼 산을 바라보았다. 빗속에서도 묵묵히 서 있는 산은 마치 아버지의 뒷모습 같았다. 큰 소리로 위로하지 않아도,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존재. 그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지금 내 손끝에는 여전히 운전대의 진동이 남아 있다. 그리고 마음속엔 아버지의 산이 깊게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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