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7일
같은 대학에 입학한 지 벌써 36년이 흘렀다.
환경 관련 전공으로 함께 공부했던 우리는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모두 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누구는 공무원이 되었고, 누구는 건설회사에 다니며 현장을 누빈다. 또 다른 이는 프로그래머 인력회사를 운영하고, 어떤 친구는 학습지 교사로 아이들과 매일 씨름한다. 건강식품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는 친구도 있다.
삶의 무게와 방향은 제각각이지만, 우리가 공유하는 한 가지는 있다. 바로 세월의 흔적이 얼굴과 몸짓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늙어가는 모습'이다. 우리는 3개월에 한 번씩 꾸준히 만난다. 그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소소한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지난 토요일 저녁, 우리는 서울 충무로에서 모였다. 충무로역은 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이 겹치는 환승역이라 늘 사람들로 붐비지만, 지상으로 올라오니 생각보다 한산했다. 직장인들이 주말이면 집으로 향하는 탓에 예전처럼 북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외국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채우며 낯선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적당한 고요와 이국적인 활기가 공존하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오랜만의 재회를 맞이했다.
칼국수와 보쌈을 파는 정겨운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자연스레 추억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대학 시절 밤을 새우며 리포트를 쓴다고 친구 자취방에서 과제를 하던 기억, 여름방학 때 떠났던 지리산 노고단 등반, 경기도 현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미래를 이야기하던 젊은 날의 모습들.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여전히 풋풋한 대학생으로 돌아간 듯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36년이나 지났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 시절을 붙잡고 있구나. 어쩌면 그게 우리를 이어주는 힘일지도 몰라." 대화는 나이 들어가는 현실로도 자연스레 이어졌다. 새치가 아닌 진짜 흰머리, 혈압약·고지혈증약·당뇨약으로 관리해야 하는 성인 3대 질환, 예전 같지 않은 체력 등의 이야기들이 가볍게 오르내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농담 섞인 웃음으로 흘려보냈다.
50대 중반을 넘어선 우리에게 늙어간다는 것은 이미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었고, 함께 늙어간다는 사실에서 오히려 위안을 찾고 있었다. 결국 인생의 무게를 견디게 하는 것은 이런 단단한 인연이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충무로의 불빛이 차창에 흔들렸다. 나는 다음 만남을 벌써 기대하고 있었다. 다른 삶을 살지만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이들과의 약속이 있다는 사실이, 세월의 속도를 조금은 느리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지금 손가락 끝이 차갑다. 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