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김한빈
그날은 온다
한달 뒤, 몇 년 뒤 일이건 그날은 온다
까마득한 그날도 약속한 듯 어느덧 코앞에 다가오고
온몸을 투명한 천으로 감싸듯, 온몸에 공기로 물을 끼얹듯 그날은 온다
상상해 봐
그날은 바람처럼 내 귀를 스쳐 지나가거나
차를 몰아 달릴 때 눈앞의 전경들이 나에게 달려들어
그 풍경이 안고 있는 의미를 하나하나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내 몸을 스쳐 지나가듯
마침내 시간이라는 문제를 안고 그날은 온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두 손 들고 온몸으로 막을 수도 없다
은행에서 보낸 납입 안내처럼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 각본대로
누군가 입력한 프로그램대로
그날은 온다
《문장21》 2024년 봄여름 합본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