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 2 -- 자벌레
김한빈
길 없는 허공에 한 발 내딛고
비로소 길이 열린다
백척간두 진일보
너는 무엇을 찾으러 나무 꼭대기에 올랐느냐
문득 길 끊어지고
무!
그곳엔 아무것도 없구나
빈 바람소리뿐
저 아래
비 맞고 먼지 덮어쓴
풀과 돌맹이를 보라
네가 찾던 세상이 거기 있지 않는가
구름이 땅의 물로 돌아가듯
높은 곳에 오르면
그만큼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법
그대, 서쪽에서 온 조사(祖師)*여!
물이 웅덩이를 메우며 낮은 데로 흘러
바다로 가 본래 하나가 되는구나
길 없는 허공에 한 발 내딛고
비로소 길 열린다
백척간두 진일보
*조사(祖師):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선종을 창시한 달마 대사
<문장 21> 시부문 신인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