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치 拔齒
김한빈
이를 뽑고 회전 교차로를 빙빙 도는 택시 안에서
마른 장작처럼 쓰러진 ‘송철호*’라는 불행한 사내가 있었다.
그의 죽음은 치아와 양심이
동아줄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를 뽑으면 양심도 뽑혀서 마개 뽑힌 듯 피가 솟는 것이다.
혈우병이 아니었다.
궁핍한 시절 탓도 아니다.
보리차를 마시며 빈속을 달랠 수 있었고
단지 돌멩이 같은 양심을 꽉 깨물어 이가 상했을 뿐이다.
결국 이를 뽑으면 바로 죽어버리는
불행한 시대를 산 불행한 사내가 있었던 셈이다.
나는 치과에서 이를 뽑고 지혈용 거즈를 지그시 깨문다.
행복한 시대를 사는 나는 죽지 않는다.
내가 살아있음은 그 사내와 달리
치아와 양심이 동아줄로 묶여있다는 사실을
끝내 증명하지 못한다.
* 이범선 소설 「오발탄」의 주인공 ‘송철호’
<오륙도문학 2021. 12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