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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Nov 23. 2019

열 두 개의 트라피스트 에일이 남아 있습니다.

수도원 맥주와 트라피스트 에일




트라피스트 에일을 말하기 전에 한 가지 알아 둬야 할 것이 있다. 모든 수도원 맥주가 트라피스트 에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외로 이 점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미리 밝혀 두고 시작한다. 가령 트라피스트 회 수도원은 벨기에와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에 집중되어 있지만 독일에도 수도원은 있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맥주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안덱스 수도원 맥주와 벨텐부르크(Weltenburg) 수도원 맥주이다. 이 수도원은 베네덱트 회 수도원이지만 트라피스트 회 수도원은 아니기 때문에 수도원 맥주라고는 불려도 트라피스트 맥주라고는 하지 않는다. 참고로 독일에서 생산되는 트라피스트 맥주는 현재까진 없다.


그 밖의 우리말로 수도원 맥주라고 번역되는 맥주가 있다. 한국에서도 꽤나 인기가 있는 벨기에 맥주 레페는 수도원에서 시작하였지만 레시피를 그대로 전수받아 민간 기업에서 생산되고 있다. 지금은 세계 최대의 맥주 기업인 AB 인베브(AB InBev가 소유하고 있어 전 세계에 가장 흔한 수도원 맥주가 되었다. 이처럼 그 기원은 수도원이지만 민간 기업에 양조 권한을 넘겨 생산되는 맥주를 수도원 맥주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대신 이를 애비 에일이라 하는데. 애비(Abbey)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수도원'이니 이것 또한 직역하면 수도원 맥주로 인식될 수 있다. 수도원 맥주가 아닌 수도원에 뿌리를 둔 맥주, 수도원 출신 맥주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수도원에서 출발하여 민간 기업에 전수된 맥주로 파울라너나 바이헨슈테파너, 세인트 버나두스 등이 유명하다. 그런데 애비 에일이라고 트라피스트 에일에 비해 맛이나 품질이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개인적으로 트라피스트 쿼드루펠인 시메 블루와 그와 비슷한 애비 에일 세인트 버나두스 압트를 마셔봤을 때 세인트 버나두스 압트가 더 나았다.


또 이런 맥주도 트라피스트 맥주라고 하지 않는다. 고양이와 전혀 상관없는 수도원인 프랑스의 몽 데 카(Mont Des Cats) 수도원은 트라피스트 수도원이지만 그들이 만든 맥주를 트라피스트 맥주라고 하지 않는다. 몽 데 카는 지나친 상업화로 트라피스트 맥주의 조건을 따르지 않는다 하여 국제 트라피스트 협회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있다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트라피스트 맥주는 국제 트라피스트 협회의 엄격한 조건을 만족해야만 트라피스트 맥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트라피스트 회는 무엇이길래 맥주에 이렇게 소속감을 강조하는 것일까?


트라피스트 회는 공식적으로는 OCSO(Order of Cistercians of the Strict Observance)라고 하며, 한국에서는 엄률시토회라고 말한다. 이를 번역하자면 '수도원의 규칙을 엄격하게 준수하라는 시토의 명령'으로 해석될 수 있다. 1098년에 설립된 시토회 수도원은 성 베네딕의 정신을 철저히 지키자는 수도원 개혁 운동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런 시토회마저도 베네딕트의 장신은 사라졌고 1664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라 트라프(La Trappe) 대수도원은 또다시 초기의 베네딕트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개혁 운동을 펼쳤다. 개혁 운동을 따르는 수도원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지금과 같이 되었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수도원과 수녀원을 포함하여 전 세계 162개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이 있으며, 한국에도 창원 마산에 단 하나의 수도원이 있다. 그럼 베네딕트의 규칙이 무엇이길래 서유럽 가톨릭은 자꾸만 베네딕토의 초기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개혁 운동을 하는 것일까? 성 베네딕트가 만든 73개 장의 수도원 규칙을 모두 읽어 보면서 살펴보고 싶지만 양이 많으니 그중에서 맥주와 노동과 관련된 몇 가지만 발췌해 본다.


5장, 상급 수도사에 대해 절대적인 순종을 할 것.

33장, 개인 소유를 금지하고 수도원에 필요한 물품을 직접 공급할 것.

48, 수도사의 능력에 맞는 적합한 일을 할 것.


기본적으로 베네딕트의 규칙은 기도와 명상뿐만 아니라 수도원 공동체에서 공동생활에 필요한 규칙을 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육체노동을 통한 자급자족을 부여하고 있다. 중세 수도원이 타락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수도원을 따르는 사람들의 기부금이 쌓이게 되면서 욕심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원 개혁은 외부의 자본을 완전히 차단하고 자급자족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주 중요한 항목이 되었다.


수도원 생활에 필요한 물품에는 빵과 치즈 등 상당히 다양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을 대신할 맥주였다. 맥주를 직접 양조해 마시는 것이 수도원 생활의 덕목이자 수도원 삶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수도원 양조장은 중세 시대부터 있었다. 특히 트라피스트의 문을 연 라 트라프 수도원이 자체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맥주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생산했으니, 유럽 곳곳에 전파된 트라피스트 수도원도 이를 따라 수도원 내에 양조장을 세우는 게 전통이 되었다. 수도원 맥주가 대중의 막대한 인기를 끈 것은 세계 대전 이후부터이다. 수도원 맥주는 프랑스혁명과 세계 대전 중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프랑스 혁명 기간 분노한 대중들의 첫 번째 공격 대상은 성직자였다. 수도원의 재산을 대중에 몰수하고 수도원의 시설을 파괴했다. 세계 대전 중에는 양조장 시설을 뜯어 전쟁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전쟁 중에 살아남은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겨우 열 몇 곳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양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도원 맥주가 뜻밖의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사람들은 수도원 맥주에 매료되기 시작하였다. 영리한 수도사들이 엄격하게 관리하는 맥주의 품질과 수도원에 전해 내려오는 스토리텔링, 그리고 몇 안 되는 수도원 맥주의 희소성, 이런 것들이 수도원 맥주를 더욱 고급지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많은 양조장들이 트라피스트 수도원 맥주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정말로 수도원 맥주의 레시피를 이어받아 양조한 곳도 있었지만, 전혀 수도원과 관련이 없어도 트라피스트 맥주로 둔갑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가짜 트라피스트 맥주가 활개를 치자 8개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이 모여 국제 트라피스트 협회를 만들었다. 진짜가 나타난 것이다. 국제 트라피스트 협회는 ITA(International Trappist Association)라고 하는데, ITA의 목적은 트라피스트의 이름을 오용, 남용, 도용하는 것을 막고,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신뢰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ITA가 인증한 제품에는 정품 로고가 붙는데, 이런 제품을 ATP(Authentic Trappist Product)라 한다. 여기서 제품이라고 한 것은 수도원에서 만든 것이 맥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트라피스트 협회가 인증하는 제품을 모두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맥주, 빵, 맥주 효모, 비누 등 스킨케어 제품, 치즈, 초콜릿, 청소 제품, 쿠키 및 비스킷, 벌꿀, 잼, 리큐어, 버섯, 올리브 오일, 캔들 제품, 와인 등


그런데 ITA의 회원 수도원이 만든 제품이라고 모두 ATP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2019년 11월 현재 ITA의 회원은 전 세계 21개의 수도원이며, 이 중 맥주를 판매하는 수도원은 14개, 맥주를 판매하는 수도원 중 ATP 로고를 붙일 수 있는 곳은 12개이다. 14개의 수도원 중 두 곳은 ITA이면서도 ATP를 쓸 수 없다. 이처럼 수도원 맥주에 대한 자격은 엄격하다. ATP 라벨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반드시 만족해야 한다.


모든 제품은 수도원 내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제품은 수도사들이나 수녀들의 감독 하에 만들어져야 한다.

이익은 수도사들의 생활비나 수도원의 유비 보수 비용에만 사용하고, 그 외의 수익은 자선을 위해 기부해야 한다.

ATP 로고


트라피스트 수도원 양조장은 현재 벨기에가 6개, 네덜란드가 2개로 두 나라를 합치면 절반이 넘고, 그 밖의 유럽에서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에 각각 1개씩 있다. 유럽 외에서는 미국에 1개가 있다. 트라피스트 양조장 중 가장 오래된 곳은 벨기에의 베스트말레(Westmalle)로 1836년이며, 가장 최근에 ATP 인증을 받은 곳은 영국의 마운트 성 버나드(Mount St Bernard)로 2018년이다. ATP 인증을 받지 못한 2곳은 프랑스의 몽 데 카(Mont des Cats)와 스페인의 세르베사 카르데냐(Cerveza Cardeña Trappist)이다. 시토회를 시작한 프랑스 수도원이 ATP 인증을 받지 못했다니 다소 의아하면서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트라피스트 맥주의 조건은 엄격한 것이다.


이제 전 세계 트라피스트 양조장을 탐방할 차례이다. 그전에 잠시 트라피스트 에일의 종류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트라피스트 에일은 여러 수도원에서 각각의 스타일로 양조되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의 스타일로 묶는 것은 어렵다. 트라피스트 에일은 맥주 스타일이 아닌 최대한 비슷한 개념끼리 묶어서 만든 엥켈, 두밸, 트리펠, 쿼드루펠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그러므로 같은 카테고리에 있는 에일이라고 같은 스타일이라고 볼 수 없고 더더욱 같은 맛을 낸다고 할 수도 없다. 수도원의 맥주는 인간계의 맥주와 다르니, 인간계의 스타일과 다른 신계의 카테고리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두벨 Dubbel

두벨은 더블(Double)과 같은 라틴어에서 나온 말이다. 전통적으로 수도원 맥주는 수도원에서 소비하기 위해 저도수의 라이트한 맥주였다. 1856년 벨기에 베스트말레의 수도사들이 기존의 수도원 맥주를 탈피해 진득한 브라운 에일을 만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부터 외부에 팔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가 1921년 몇몇 지역의 업체에 이 맥주를 팔기 시작했는데, 맥주가 인기를 끌자 알코올 도수를 높이고 조금 더 강화해서 만든 것이 지금의 두벨이다. 두벨은 알코올 도수가 6~8%에 이른다. 바디감이 묵직하고 검붉은 과일의 진득한 맛이 난다. 대표적인 트라피스트 두벨은 베스트말레 두벨, 시메 레드, 라 트라프 두벨, 아헬 8 브륀, 로슈포르 6 등이 있다.  


트리펠 Tripel

트리펠 역시 트리플(Tripple)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나온 말이다. 두벨 스타일로 재미(?) 좀 본 베스트말레 수도원 양조장에서 1934년, 이번에는 맥아를 세 배쯤 넣어 황금색의 고도수 에일을 만들었다. 이후 1956년에 레시피를 한 차례 수정하고 홉을 추가하여 알코올 도수 9.4%의 스트롱 에일을 만들었는데 이름을 '베스트말레 트리펠'이라고 하였다. 트리펠은 알코올 도수가 8~10%에 달한다. 두벨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아 맥주의 색상이 더 어두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트리펠은 블론드나 짙은 황금색이다. 수도원 맥주는 외관상으로는 엥켈과 트리펠이 비슷하고, 두벨과 쿼드루펠이 비슷한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트라피스트 트리펠은 베스트말레 트리펠, 아헬 8 블론드, 라 트라프 트리펠, 시메 화이트 등이 있다.


쿼드루펠 Quadrupel

매우 호기심이 강한 수도사 양조가 한 명이 있다. '당신, 수도원 맥주로 어디까지 만들 수 있어?'라고 물었을 때, '나 여기까지 만들 수 있어'라고 작정하고 만든 것이 쿼드루펠이다. 그러니까 쿼드루펠 이상은 없다. 그 이상은 모두 쿼드루펠인 것이다. 쿼드루펠은 네덜란드의 라 트라프 수도원 양조장이 추운 겨울철에 마실만 한 맥주를 만들었다가 1년 내내 양조하면서 생겨났다. 쿼드루펠의 색상은 두벨보다 어둡고, 알코올 도수는 트리펠보다 높다. 두 배, 세 배라는 라임을 지키기 위해 네 배라는 이름을 지었지만 색상과 알코올 도수 면에서 두벨과 트리펠의 바로 상위 개념인 맥주이다. 쿼드루펠은 줄여서 쿼드 라고도 하고, 압트(Abt)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압트는 대수도원장이라는 뜻이다. 쿼드루펠은 수도원 맥주의 수도원장, 그 이상은 신뿐이다. 대표적인 트라피스트 쿼드루펠은 라 트라프 쿼드루펠, 로슈포르 10, 베스트블레테렌 12, 시메이 블루 등이 있다.


엥켈 Enkel

엥켈은 싱글(Single)이라는 뜻이다. 이 맥주를 가장 마지막에 소개하는 것은 수도원 내에서는 가장 일반적이지만 시중에서는 가장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엥켈은 수도원 내에서 수도사들이 마시고, 수도원 방문객들에게 대접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양조하는 가장 일상적인 맥주였다. 수도사들이 맥주를 물처럼 마시면 문제가 없었을까? 술에 취해 기도 중에 잠이 드는 수도사는 없었을까? 수도원 맥주는 이런 의문을 계속해서 품게 한다. 그런데 진짜 그런 적이 적지 않게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수도원 내에서 술에 취한 수도사들에게 내리는 형벌이 기록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성가를 부를 때 혀가 풀린 자는 12일, 구토를 할 만큼 술을 많이 마신 자는 30일간 속죄해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속죄 기간에는 맥주도 마실 수 없었으니 물을 물처럼 마시는 게 더 곤욕이었을 것이다. 엥켈은 3~4%의 저도수 맥주이다. 한국에서 줄곧 라거만 마셨을 세대들에겐 이마저도 낮은 도수는 아니지만. 엥켈은 일반인에게 판매하기 위해 점점 도수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아헬 5는 2017년부터 아헬 7이 되었다. 엥켈 맥주의 별명은 파테르비어(Patersbeer)이다. 신부님을 파파라고 부르지 않는가? 바로 '신부님 맥주'라는 의미이다. 대표적인 트라피스트 엥켈은 아헬 7, 시메 골드, 베스트블레테렌 블론드 등이 있다.



벨기에 트라피스트 수도원 양조장


베스트말레 Westmalle, 벨기에

설립년도 : 1836년

 

벨기에 북부 플랑드르 지방의 안트베르프(Antwerp)에 있는 베스트말레 수도원에 있는 양조장이다. 1836년 수도원 내에 양조장이 설립되어 수도사가 마실 맥주를 생산하다가 1856년에 알코올 도수 7%의 두벨(Dubbel)을 처음으로 만들어 지역에서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1934년에 알코올 도수 9.5%의 스트롱 페일 에일을 만들어 트리펠(tripel)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여러 수도원이 따라 하면서 트리펠의 원조가 되었다. 트리펠은 1956년에 레시피가 한 차례 바뀌었고 그 이후로는 바뀌지 않았다. 그 밖의 수도사들이 수도원 내에서 마시는 알코올 도수 5%의 베스트 말레 엑스트라(Extra)가 있다.

source : https://www.trappist.be/en/products/beers/westmalle/


베스트블레테렌 Westvleteren, 벨기에

설립년도 : 1838년


오랫동안 베스트블레테렌이라고 알고 있었던 이 단어의 발음을 듣고 놀라웠다. ‘v’가 ‘ㅂ’이 아니라 ‘ㅍ’으로 발음하는 나라가 있다는 게 문득 생각났다. Westvleteren, 이 발음은 베스트플레이터런에 가깝다. 하지만 많은 책들이 베스트블레테렌이라고 번역하고 있어 혼돈을 줄이고 위해 이 책에서도 베스트블레테렌이라고 썼다. 맥주 애호가 사이에서 트라피스트 에일이 맥주의 끝판왕이라면, 트라피스트 에일 중에서는 베스트블레테렌이 끝판왕이라고 한다. 맥주 평가 사이트인 레이트비어(ratebeer.com)에서 보기 드문 4점 대 중반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맥주가 베스트블레테렌 12이다. 베스트블레테렌 양조장은 프랑스와 아주 가까운 벨기에 서부 지역의 성 식스투스 수도원(St Sixtus Abbey)에 있다. 성 식스투스 수도원은 1831년 프랑스혁명과 온갖 박해를 피해 이주한 몽 데 카 Mont des Cats)의 일부 수도사들이 설립하였다. 이 중 일부는 다시 스코몽 수도원(Scourmont Abbey)을 세우고 시메를 양조했으니 수도원과 양조장의 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셈이다. 베스트블레테렌 에일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맥주의 맛과 품질일 수도 있지만 희소성에도 있다. 이 맥주는 상업적으로 구매할 수는 없고 사전 주문자에 한해 수도원 내에서만 살 수 있다. 매우 소량만 생산하기 때문에 방문한 개인 당 24병의 맥주 1 상자 이상 살 수 없다. 또한 한번 구매하면 60일 이내에 다시 살 수 없다. 맥주병은 라벨도 없고 트라피스트 로고도 붙이지 않는다. 참기름 병을 떠올리면 비슷하다. 베스트블레테렌은 3가지 맥주를 양조한다. 녹색 뚜껑의 베스트블레테렌 블론드(5.8%), 파란색 뚜껑의 베스트블레테렌 8(8%), 노란색 뚜껑의 베스트블레테렌 12(10.2%)이다. 이 중 베스트블레테렌 12는 베스트블레테렌 압트(Abt)라고도 하는데 세계 최고의 맥주로 죽기 전에 꼭 한번 마셔봐야 할 맥주로 꼽힌다. 이 맥주는 한 번에 한 병 밖에 살 수 없다. 베스트블레테렌 양조장은 철학이 있는데 수도원 양조장의 철학을 대변하는 것 같은 멋진 문장이라 원문 그대로 옮겨 본다.

우리는 살기 위해 양조합니다. 양조하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Wij brouwen om te leven. Wij leven niet om te brouwen.
source : https://www.trappist.be/en/products/beers/westvleteren/


시메 Chimay, 벨기에

설립년도 : 1862년


나의 경험 상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베트남 등을 여행할 때 비유럽 지역에서 가장 흔하게 만나는 트라피스트 맥주가 시메이다.그만큼 시메는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트라피스트 맥주가 아닐까 한다. 시메 양조장은 벨기에 서쪽 프랑스와의 국경 지역에 있는 스코몽 대수도원(Scourmont Abbey)에서 자급자족 양조장으로 설립되었다. 시메 맥주는 레이블의 색깔로 구분할 수 있다. 시메 루즈(Rouge)라고 하는 빨간색 레이블의 두벨(7%), 1966년부터 생산된 흰색 레이블의 트리펠(8%), 1956년 크리스마스 에일로 개발되어 그랑데 리저브(Grande Reserve)라고도 하는 파란색 레이블의 쿼드루펠(9%)이 있다. 2013년부터는 엥켈인 시메이 골드(4.8%)를 판매하고 있다. 엥캘은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마시기 위해 저도수로 개발된 음용성이 좋은 맥주인데 일반적으로 잘 판매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시메가 어느 정도로 상업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source : https://www.trappist.be/en/products/beers/chimay/


로슈포르 Rochefort, 벨기에

설립년도 : 1899년


로슈포르 양조장은 벨기에 왈롱 지방의 로슈포르에 위치한 동명의 수도원 혹은 노트르담 드 생 레미 수도원(Notre-Dame de Saint-Rémy)이라 불리는 수도원에 있는 양조장이다. 양조장은 1899년에 생겼지만 수도원의 역사로 치자면 만만치 않은 곳이다. 수도원은 1230년에 로슈포르 백작이 설립한 수녀원으로 시작하여 수도원으로 바뀌었다. 1595년에 첫 양조를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역사와 전통이 있었지만 프랑스혁명으로 1797년에 수도원과 양조장이 대부분 사라졌다. 문을 닫고 개인에게 팔렸지만 수도원을 대부분 철거하여 농장으로 만들었다. 수도원이 복원된 것은 아헬(Achel) 수도원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 1887년의 일이며 1889년부터 양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로슈포르는 병뚜껑의 색깔로 구분할 수 있다. 빨간색은 로슈포르 6(7.5%)로 두벨, 초록색은 로슈포르 8(9.2%)로 트리펠, 파란색은 로슈포르 10(11.3%)으로 쿼드루펠이다. 6,8,10이 맥주의 알코올 농도가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source : https://www.trappist.be/en/products/beers/rochefort/


오르발 Orval, 벨기에

설립년도 : 1931년


벨기에의 남부 지방을 왈롱이라 하는데, 이 곳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벨기에의 남쪽, 프랑스와 국경을 지척에 두고 있는 곳에 오르발 수도원이 있다. 오르발 양조장의 역사는 채 백 년도 되지 않지만, 수도원의 역사는 장대하다. 오르발 수도원은 1132년에 프랑스에서 건너온 7명의 수도사들이 세웠다. 오르발 수도원의 역사는 참으로 순탄하지 못했다. 1252년에는 대화재로 파괴되어 완전히 재건하는데 백 년의 시간이 넘게 걸렸다. 17세기에는 유럽의 30년 전쟁으로 인해 주요 시설들이 약탈당했다. 프랑스혁명 동안에는 프랑스 군대에 의해 수도원이 완전히 불타버렸다. 폐허가 된 수도원과 수도원 땅은 개인에게 팔려 수도원의 자취는 완전히 사라지는 듯했다. 1926년 옛 수도원 땅을 소유하고 있던 하렌느(Harenne) 가족은 땅을 시토 수도회에 기증하고 새로운 수도원을 짓기를 희망하였다. 이에 라 트라프의 수도사를 초청하여 새롭게 지은 것이 지금의 오르발 수도원이다. 특이한 것은 보통 수도원이 세워지고 동시에 양조장이 세워지거나, 수도원이 세워진 후에 필요에 의해 양조장이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오르발은 수도원보다 양조장이 먼저 생겼다. 1931년 오르발 양조장을 세워 그 판매 수익으로 수도원을 짓는 데 사용했다. 수도원이 완성된 것은 1935년이다.


오르발의 맥주는 다른 수도원 맥주에 비해 아주 독특하다. 일단,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것은  종류밖에 없는데 맛이 매우 독특하다. 양조한 시기와 보관한 기간에 따라 다른 맛이 난다고 하는데,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오래된 가죽 허리띠 같은 냄새가 났고, 어릴  시골 외양간에서 소가 먹던 삶은 지푸라기 맛을 상상했다. 오르발의 라벨에는 반지를 물고 있는 송어  마리가 그려져 있다.  전설이 재미있는데 사연은 이렇다.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었던 마틸다는 실수로 결혼반지를 연못에 빠뜨렸다. 사색이  그녀는  자리에서 반지을 찾아 달라고 주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그때 송어가 반지를 물고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반지를 다시 찾은 마틸다는 너무 기쁜 나머지 '진정 이곳이 황금의 계곡(Val d'Or)이다'라고 외쳤다. 마틸다는 감사의 의미로 이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Val d'Or의 이름을 따 수도원의 이름을 오르발이라고 하였다.


source : https://www.trappist.be/en/products/beers/orval/


아헬 Achel, 벨기에

설립년도 : 1998년


2000년 대 들어 ATP 로고를 붙일 수 있는 양조장이 다섯 개나 더 늘어났지만, 1990년대까지 ATP 인증을 받은 양조장 중 가장 막내였고 생산량도 가장 작은 양조장이었다. 아헬 양조장은 벨기에와 네덜란드 국경 사이에 있는 하몬트 아헬(harmont-achel) 지역의 성 베네딕트 수도원(Saint Benedictus Abbey)에 위치해 있다. 아헬 양조장이 이렇게 국경 지대에 위치해 있는 이유는 16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교도가 강했던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80년 동안 전쟁을 치러 완전한 독립을 이루는데, 이때 구교도 가톨릭 신자들이 네덜란드의 국경을 넘어 수도원을 세운 것이 지금의 성 베네딕트 수도원이다. 하지만 양조장은 프랑스혁명 기간 동인 철저하게 파괴되었다가 1844년에 베스트말레 수도사들이 재건하였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독일인들이 700kg의 구리 발효조를 뜯어 다시 한번 폐하가 되었다. 오랫동안 잊혀 갔던 양조장을 되살린 건 이번에도 베스트말레의 수도사였다. 그리고 로슈포르의 수도사들의 도움이 있었다. 1998년에 양조장이 복원되었고, 2001년에 아헬 8 블론드를 첫 양조하였다. 아헬은 7%, 8%, 9%의 에일을 각각 블론드(blond)와 브륀(bruin, brown)으로 총 6가지 에일을 생산한다. 이 중 8%만 유통되고 나머지는 수도원에 가야만 마실 수 있다. 아헬 7%는 기존의 아헬 5%를 2017년에 리뉴얼한 것이다.

source : https://www.trappist.be/en/products/beers/achel/


네덜란드 트라피스트 수도원 양조장


라 트라프 La Trappe, 네덜란드

설립년도 : 1884년


네덜란드 남부의 도시 틸부르크(Tilburg)에 있는 코닝스후펜 수도원(Koningshoeven Abbey)에 설립된 수도원 양조장이다. 수도원 양조장 중에서는 가장 많은 9종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라 트라프는 너무 상업적으로 변질되어 한때 ATP 로고를 박탈당한 적이 있다. 1969년 수도원 양조장은 벨기에의 아루뚜아 양조장과 계약을 맺고 한 10년쯤 공동으로 생산하다가, 1980년부터 1999년까지는 대부분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단독으로 생산하였다. 하지만 수도사들이 나이를 먹고 양조장을 관리하는데 어려움을 겪자 바바리아 양조장의 자회사가 되어 건물과 장비를 임대하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이는 매우 특이한 운영 방식이었다. 양조장은 수도원 내에 있지만 상업적인 회사가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ITA는 라 트라프 양조장이 수도원 내에 있긴 하지만 너무 상업적이라고 판단하고 ATP 로고를 박탈하였다. 라 트라프가 ATP를 다시 찾은 것은 2005년이다. 라 트라프는 양조장을 상업적으로 운영하지 않겠다, 수도사들이 양조에 더욱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ATP 로고를 되찾았다. 그래도 충분히 상업적인 냄새가 난다. 블론드(6.5%), 두벨(7%), 트리펠(8%), 쿼드루펠(10%) 뿐만 아니라 트라피스트 맥주 중에선 유일하게 위트 비어와 보크 비어도 생산하고 있으니 말이다.


source : https://www.trappist.be/en/products/beers/la-trappe/



준데르트 Zundert, 네덜란드

설립년도 : 2013년


시토회는 원래 프랑스 디종(Dijon)의 작은 마을 시토에서 시작한 가톨릭이었다. 프랑스에 여러 개의 수도원이 있었지만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그들을 더 이상 프랑스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들은 박해와 약탈을 피해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  유럽 전역으로 뿔뿔이 흝어졌다. 벨기에 서쪽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 북부의 수도원인 몽 데 꺄(Monts Des Cats)도 마찬가지였다. 몽 데 꺄는 프랑스혁명을 피해 도피할 피난처를 찾기 위해 수도사 한 명을 동쪽으로 파견했고, 1881년 네덜란드의 틸부르크에 코닝스후벤이라는 수도원을 세워 피신했다. 이 곳은 라 트라프 수도원 양조장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네덜란드에서도 추방 위기에 처하자 일부의 수도사들이 새로운 피난처로 삼은 곳이 마리아 트불르흐트 수도원(Abdij Maria Toevlucht)이다. 수도원은 자급자족과 육체노동이라는 베네딕트의 정신을 충분히 수행했던 것 같다. 수도원 근처에 작은 농장을 비교적 최근까지 운영했으니 말이다. 2013년, 농장의 쓸모가 없어 지자 돌연 농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양조장을 지었다. 원래 농장에는 바람의 방향을 표시하는 댕기물떼새(Lapwing) 모양의 풍향계가 있었는데, 양조장을 새로 지어도 이 풍향계는 상징처럼 그대로 사용하였다. 양조장의 이름도 네덜란드어로 댕기물떼새를 의미하는 키비트 양조장(Brouwerij De Kievit)이다. 양조장을 지었지만 이번에는 맥주 개발이 문제였다. 고문서에 기록된 맥주 레시피는 있었지만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고 실험을 거듭한 끝에 오직 한 종의 맥주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트라피스트 맥주에 '준데르트'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맥주의 이름에 수도원 이름도 아니고 양조장 이름도 붙이지 않은 것은 바로 준데르트라는 도시에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준데르트는 바로 빈센트 반 고흐가 태어난 도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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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트라피스트 수도원 양조장


스티프트 엥겔스첼 Stift Engelszell, 오스트리아

설립년도 : 2012년


독일 남부지방에서 발원하여 오스트리아 북부를 가로질러 흐르다가 흑해에 합류하는 길이 2,860km의 긴 강의 이름은 도나우강이다. 영어로는 다뉴브강이라고 한다.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 북부의 접경 지대, 도나우강이 흐르는 이 곳에 오스트리아에서 유일한 트라피스트 양조장 엥겔스첼 수도원이 있다. 수도원이 처음 생겨난 건 1293년이지만 1786년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요셉 2세(Joseph II)에 의해 폐쇄되어 한동안 공장과 일반 거주지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이 이 수도원의 페이즈(Phase) 1에 해당한다. 페이즈 2는 1925년에 시작되었다. 독일에서 추방된 수도사들이 이곳에 모여 수도원을 재건하여 트라피스트 수도원으로 등록하였다. 하지만 독일의 비밀경찰 게슈타포는 수도원을 압수하고 수도사들을 강제수용소 보내거나 처형하였는데 남은 수도사들이 뿔뿔이 흝어지면서 수도원은 1939년에 문을 닫았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보스니아 등에 흩어져 있던 23명의 수도사들이 돌아와 수도원을 재건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9명의 수도사들만 남아 있다고 한다. 이것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페이즈 3이다. 수도원에 양조장이 설립된 건 비교적 최근인 2012년이다. 트라피스트 양조장으로는 8번째로 합류한 것이다. 맥주는 엥겔스첼의 역대 수도사의 이름을 딴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0.5%), 베노(Benno, 6.9%), 니바드(Nivard, 5.5%) 3종만 판매하다가, 2019년부터 4.9%의 가벼운 밀맥주인 바이스를 판매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마셔본 적은 없지만, 수도원 맥주에 대한 글을 정리하면서 가장 호기심이 발동한 맥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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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 폰타네, Tre Fontane, 이탈리아

설립년도 : 2015년


로마에 위치한 이탈리아 유일의 트라피스트 양조장 트레 폰타네. 이 이름은 ‘세 개의 분수’라는 뜻의 ‘Three Fountains’에서 나왔다. 수도원은 서기 1세기에 활동한 성 바울로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성 바울로는 개신교에서는 사도 바울이라고 하고 가톨릭에서는 바오로라고 하는 성자로서, 유대교였던 그는 기독교도를 박해하러 가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종교를 바꿔 일평생 기독교의 전도에 힘써 왔던 인물이다. 성 바울로는 AD 67년 로마에서 순교하였는데, 그가 순교한 자리에 트레 폰타네 수도원이 세워졌다. 성 바울로가 참수되면서 분수와 같은 피가 세 방향으로 튀었는데, 이 곳에 각각 교회를 지어 세 개의 분수라는 이름이 된 것이다. 수도원 양조장이 설립된 건 1873년이다. 수도원은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 주변에 유칼립투스 나무들을 심었다. 실제 말라리아 모기를 쫓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칼립투스는 치유의 성분이 있고 항 알레르기로도 쓰이니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유칼립투스에서 또 다른 쓰임새를 발견하였는데 그 추출물로 오일이나 맥주를 만든 것이다. 이 숨겨졌던 맥주 레시피가 2000년대 초반 발견되면서 현대의 레시피를 더 해 유칼립투스를 함유한 독특한 트라피스트 맥주를 만들었다. 트레 폰타네의 맥주는 2015년에 ATP 인증을 받았다.

source : https://www.trappist.be/en/products/beers/tre-fontane/rㅣ독


마운트 세인트 버나드, Mount St. Bernard, 영국

설립년도 : 2018년


트라피스트 맥주라고 하면 중세부터 내려져 오는 수도원 맥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역사는 기껏해야 200년도 되지 않는다. 이 중의 절반은 최근 20년도 안 되는 시기에 새로 생겼다. 이쯤 되면 수도원 맥주에 뒤통수라도 맞은 느낌이 들것이다. 수도원 맥주를 생산한 지 이제 1년 남짓된 막내 중의 막내 트라피스트 수도원 양조장이 영국 콜빌(Coalville)에 있다. 이름하여 마운트 세인트 버나드 수도원, 영국에서 유일한 트라피스트 양조장이다. 세인트 버나드 수도원은 1835년에 설립되어 다른 수도원과 마찬가지로 맥주 양조가 수행의 하나였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양조 전통과 맥주 레시피는 사라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맥주 양조 대신 낙농업으로 수도사의 삶을 유지하고 수도원을 보수하며 베네딕토의 자급자족 실천하며 그럭저럭 살아갈만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우유값은 폭낙했고 낙농업으로는 더 이상 경제적으로 버티기 힘들게 되자, 농장을 폐쇄하고 양과 소들을 팔 수밖에 없었다. 소들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동트기 전 트럭이 도착했을 때가 가장 슬픈 날이었다고 한다. 수도원은 다른 자급자족의 길을 모색해야 했다. 이때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 수도원 맥주였다. 하지만 맥주 레시피는 사라진 오래였고 맥주 양조 시설은 더더욱 없었다. 맥주 양조장에 있는 굴뚝을 청소했다는 기록도 있고 굴뚝 청소 후 맥주도 마셨다는 데 맥주 레시피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수도사 몇 명으로 구성된 태스크 포스를 조직하고 이들을 선배 트라피스트 양조장에 보내 양조 경험을 쌓게 했다. 베스트블레테렌, 아헬, 베스트말레, 준데르트 등의 트라피스트 수도원 양조장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양조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서 세탁소나 식당, 주방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여 2018년 알코올 도수 7.4%의 '틴트 메도우(Tynt Meadow)'라는 잉글리시 트라피스트 에일이 만들어졌다. 수도원에서 25Km 정도 떨어져 있는 버튼-온-트렌트 지역은 영국의 페일 에일이 탄생한 곳이다. 틴트 메도우는 트라피스트 에일 스타일에서 나왔지만 잉글리시 에일의 양조 전통이 더해져 그들만의 스타일로 창조된 것이다. 흔히 수도원 맥주는 수도원의 이름을 따라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미 애비 에일로 유명한 세인트 버나두스 양조장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수도원 근처에서 양과 소들을 방목해서 키우던 목초지의 이름 틴트 메도우가 맥주의 이름이 되었다. 틴트 메도우는 수도사들이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 생산하고 1년에 2,000hL 밖에 생산되지 않는다. 트라피스트 양조장 중에서는 가장 낮은 생산량이다. 한국에서도 일부 바틀샵에서 수입하고 있다.

source : https://www.trappist.be/en/products/beers/mount-st-bernard/


유럽 밖의 트라피스트 수도원 양조장


스펜서 Spencer Trappist, 미국

설립년도 : 2013년


'수도원 양조장이 생긴 지 1년밖에 안되었다고?' 영국의 세인트 버나드 양조장이 트라피스트 맥주의 전통을 믿는 맥주 팬들의 뒤통수를 쳤다면, 이 양조장은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유럽에만 있는 것 아냐?'라는 맥주 팬들의 뒤통수를 또 한 번 칠 것 같다. 비유럽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존재하는 미국의 트라피스트 수도원 양조장 스펜서이다. 스펜서는 1950년 미국 매사추세츠의 스펜서라는 작은 마을에 설립된 성 요셉 수도원(St. Joseph's Abbey)에서 운영하는 양조장 이름이며 동명의 맥주 이름이다. 원래 이 수도원은 맥주가 아닌 잼과 젤리를 만들어 팔았다. 1954년 이 수도원에 새로 부임한 수도사들이 젤리를 만들어 봤는데, 이 젤리는 수도사들이 먹을 수는 없었지만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거나 자선 단체게 기부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수도원은 곧 수도원에서 생산한 제품에 '트라피스트 프리저브스(Trappist Preserves)'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팔았는데 이것이 대히트를 쳤다. 시간이 흘러 일부의 수도사들이 다른 트라피스트 제품에도 관심을 보였는데 바로 맥주였다.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맥주 레시피는 없었기 때문에 수도사들은 벨기에의 트라피스트 양조장을 방문하여 선진 트라피스트 양조 기술을 배웠다. 이때 많은 도움을 준 양조장이 베스트말레와 베스트블레테렌이다. 그들은 숙련된 양조가를 고용하고 최신 시설의 양조장을 지어 5년간 한 종류의 맥주만 만들어 보라고 권고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맥주가 알코올 도수 6.5%의 트라피스트 에일이다. 수도사들이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마시기 위해 만들어진 트라피스트 엥켈이지만 싱글 스타일 치고는 알코올 도수가 너무 높다. 술에 약한 수도사들은 자칫 밥을 먹다가 잠이 들 수도 있겠다. 스펜서의 맥주 목록은 매우 화려하다. 현대 크래프트 맥주의 힙한 성지 미국답다. 트라피스트 맥주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갖추고 있지만 다소 세속적(?)인 스타일도 포함되어 있다. 맥주 평가 사이트인 레이트비어에 등록된 맥주만 18개인데, 그 가운데에는 인디아 페일 에일, 임페리얼 스타우트, 세종, 필스너, 비엔나 라거 등 수도원 양조장에서는 잘 만들지는 않지만 크래프트 맥주 씬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 포함되어 있다. 신에게 받치는 맥주와 인간이 마시는 맥주를 모두 만드는 스펜서 양조장이다.



source : https://www.trappist.be/en/products/beers/spencer-trappist/


참고


https://www.ocso.org/

https://www.trappist.be

http://www.achelsekluis.org/pageNL/home.html

https://www.latrappetrappist.com/nl/

https://chimay.com/

http://www.abbaye-rochefort.be/

https://www.trappistwestmalle.be/nl/home

https://sintsixtus.be/trial/

https://www.abdijmariatoevlucht.nl/portfolio/brouwerij/

https://www.stift-engelszell.at/

https://spencerbrewery.com/

http://www.birratrefontane.it/

http://www.mountsaintbernard.org/

http://www.orval.be/


맥주의 모든 것 맥주의 탄생부터 크래프트 맥주의 세계까지, 조슈아 M. 번스타인 저/정지호 역 | 푸른숲 | 2015년 08월 21일 | 원서 : The Complete Beer Course: Boot Camp for Beer Geeks: From Novice to Expert in Twelve Tasting Classes


맥주 스타일 사전 2nd Edition, 김만제 저 | 영진닷컴 | 2019년 10월 15일


맥주, 문화를 품다, 무라카미 미쓰루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26일


수도원 맥주 유럽 역사를 빚다, 고상균 저 | 꿈꾼문고 | 2019년 0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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