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의 구스 아일랜드 vs 하이트진로의 발라스트 포인트
최근 이마트 맥주 코너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국내 수입 맥주 시장에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너무 조용해 아무도 눈치 못 챘겠지만 나의 레이더에 딱 걸리고 말았다. 이 전쟁을 미국 크래프트 맥주 수입 전쟁이라 부르겠다.
시작은 구스 아일랜드 맥주였다. 통상 캔맥주가 병맥주보다 저렴하긴 해도, 이 맥주를 4캔 만원에 판매할 줄은 몰랐다. 4캔 만원에는 국내 크래프트 맥주회사인 핸드앤몰트의 모카 스타우트와 아르헨티나 맥주인 파타고니아 바이쎄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 중 내가 주목하는 것은 구스 아일랜드이다. 미국 크래프트 맥주를 좋아했던 초기에 이 맥주의 명성을 듣고 한걸음에 마트에 달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 맥주 한 병이 6~7천 원에 달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이런 가격대가 가능한 이유는 아무래도 대기업이 수입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스 아일랜드 맥주는 오비맥주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오비맥주와 구스 아일랜드는 모두 AB InBev라는 세계 최대의 맥주 기업을 부모로 두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내의 핸드앤몰트도 AB InBev에 인수되었기 때문에 이 같은 구성이 가능해진 것이다.
두 번째는 발라스트 포인트 맥주이다. 발라스트 포인트는 국내에서 꽤 인기가 있는 미국 크래프트 맥주 중의 하나로 바틀샵에서는 흔하게 구할 수 있지만 집 앞 마트의 진열대에서 볼 줄은 몰랐다. 발라스트 포인트 맥주는 최근에 수입사가 하이트진로로 바뀌면서 일반 마트에서도 판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수입사가 대기업으로 바뀐 점 때문에 가격은 싸지고 구입은 쉬워졌지만, 대기업은 잘 나가는 몇 종만 집중하여 수입하기 때문에 바틀샵에서 봤던 다양성은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 대기업이 수입하면서 다른 곳에서의 수입은 어려워졌다는 소문이 있는데 확인해 볼 일이다.
미국의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지역구인 일리노이주의 시카고 시에는 1988년에 설립된 구스 아일랜드 비어 컴퍼니가 있다. 브루어리의 이름은 시카고에 있는 섬인 구스 아일랜드에서 따왔다. 구스 섬은 우리나라의 여의도처럼 시카고 강 사이에 퇴적층이 쌓여 만들어진 섬으로 예전에는 계절에 따라 새들이 가득했다. 브루어리 구스 아일랜드는 아버지 존 홀John Hall과 그의 아들Greg Hall이 공동으로 시작한 양조장이다. 아버지 존 홀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은퇴하여 퇴직금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아들 그렉 홀은 미국에서 양조를 가르치는 시벨 공대에서 양조를 배웠다. 아버지는 사업가로서 아들은 양조 책임자로서 함께 한 것이다.
구스 아일랜드는 미국 크래프트 맥주의 1988 세대 중 하나로 미국 크래프트 씬에서 영향력이 큰 회사다. 구스 아일랜드의 버번 카운티 스타우트는 처음으로 배럴에 숙성시킨 맥주로 크래프트 맥주의 가치를 높였다. 그런데 이런 구스 아일랜드를 미국 브루어리 협회의 멤버 디렉터리에서 찾아보면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아니라 대기업 브루어리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코멘트에는 '앤하이저-부쉬 InBev가 25%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라고 나온다. 미국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정의 '1년에 600만 배럴 이하로 생산해야 하고, 대기업 자본이 25% 이상 소유할 수 없다'는 조건에 의해 이제는 크래프트 브루어리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구스 아일랜드는 2011년 AB InBev에 매각됐다. 매각 금액은 약 3,800만 달러(약 440억)였다. 설립자인 그렉 홀은 20년간 재직했던 양조사를 사임하고 2개월 간 영국과 프랑스의 최고 사이더 제작자들을 만나 크래프트 사이더를 연구했다. 그리고 그만의 혁신적인 정신을 담아 미시간주 펜빌에 버튜 사이더Virtue Cidar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 그런데 이 회사 또한 AB InBev 소유이다.
한국에 수입되고 있는 구스 아일랜드의 대표 맥주는 IPA와 312 어반 위트Urban Wheat이다. 시카고가 지역구였던 미국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이 밀맥주를 즐겨 마신 걸로 유명하다. 특히 지난 2010년 토론토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영국의 데이비드 카메론 총리와 각자의 고향에서 생산되는 맥주를 교환한 적이 있다. 카메론은 자신의 선거구였던 영국 휘트니 시에서 생산되는 홉고블린 맥주 12병을 선물하였고 오바마는 구스 아일랜드 맥주 24병을 선물하였는데, 이때의 맥주가 바로 312 어반 위트였다.
맥주를 너무나도 좋아해 취미 삼아 맥주 양조를 시작했다가 브루어리를 차린 예는 미국의 크래프트 씬에서는 수도 없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로 최초로 성공한 시에라 네바다 브루잉 컴퍼니의 켄 그로스먼일 것이다. 2017년 포브스 지에 의하면 그의 자산은 조가 넘는다고 한다. 젊은 시절 켄 그로스먼은 남캘리포니아에서 자전거 수리와 맥주 양조를 취미 삼아 생활하면서, 종종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자전거로 하이킹하곤 했다. 이곳이 마음에 들었던 그는 아예 캘리포니아 치코로 이사와 아예 정착해 버렸다. 치코에 와서는 자전거 포를 열고 자전거를 수리하는 일을 하다가 홈브루잉 장비를 판매하는 일을 잠깐 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의 취미를 살려 양조장을 설립했는데, 이것이 미국 크래프트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시에라 네바다 브루잉이다. 또 한 명의 성공한 덕후는 미국 동부에 있다.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스티브 힌디이다. 그는 AP통신의 중동 특파원으로 사우디 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 근무하면서 (술에 관한 한 엄혹한 지역에서도) 취미로 자가 양조법을 배웠고,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브루클린 브루어리를 설립했다. 이외에도 맥주로 성공한 스토리는 미국 크래프트에서는 차고 넘친다.
여기 성덕(성공한 덕후) 한 명을 또 한 번 소개해야겠다. 그는 바로 1996년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발라스트 포인트 브루잉 컴퍼니를 세운 잭 화이트 Jack White이다. 젊은 시절 잭 화이트는 그의 룸메이트인 피터 어헌과 그의 아파트에서 취미 삼아 맥주 양조를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양조 장비와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맥주 양조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는 이러한 어려움을 양조 장비와 재료를 직접 파는 걸로 해결하고자 1992년에 샌디에이고에 홈 브루 마트를 오픈하였다. 이 홈 브루 마트는 주변의 브루어리들이 찾아와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한마디로 샌디에이고의 브루어리들이 즐겨 찾는 크래프트 맥주의 메카가 된 것이다. 마트를 운영하는 동안 잭 화이트는 항상 자신의 양조장을 꿈꿨고, 피터 어헌은 UC 데이비스에 가서 맥주 양조를 배우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마트의 뒷마당에 양조장을 개발하였고, 요세프 처니 Yuseff Cherne라는 양조사를 추가로 영입하여 발라스트 포인트를 탄생시켰다. 발라스트 포인트라는 이름은 샌디에이고 항구 근처에 있는 낚시 명소에서 따왔다. 발라스트 포인트는 과거 미 서부에서 미 동부와 유럽으로 출항하는 배들의 균형을 잡아주는 돌인 발라스트를 채취하던 곳이었다.
발라스트 포인트는 미국 크래프트 세대 중에서 2세대에 해당한다. 1980년대 갑자가 증가한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은 그들이 서로 협력하고 교류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곳이 브루어리 협회 Brewers Association이다. 산발적으로 양조하고 독자적으로 판매하던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이 BA를 통해서 서로 협력하고 판로를 뚫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발라스트 포인트는 태어난 것이다. 발라스트 포인트는 2004년 이후 맥주뿐만 아니라 증류주 사업에도 뛰어들어 증류주 브루어리로 탈바꿈했다. 발라스트 포인트는 미국의 금지법 시대 이후 샌디에이고에 최초로 설립된 마이크로 브루어리였으나, 2015년 12월 컨스틸레이션 브랜드 Constellation Brands 사에 10억 달러에 매각됐다. 컨스틸레이션 브랜드는 미국에서 와인 생산과 코로나 등의 맥주를 수입하는 회사로 포춘 지 선정 500대 기업에도 포함되어 있는 큰 회사다.
한국에 수입되고 있는 발라스트 포인트의 맥주는 스컬핀 IPA, 빅 아이 IPA, 패덤 IPA가 대표적인 3종이다. 3종 모두 IPA로 비슷하지만 약간씩 차이가 있다. 쓴맛과 살구, 복숭아, 망고 등의 과일에서는 나오는 플레이버를 느끼려면 균형감 있는 스컬핀 IPA를 추천한다. 이 보다 플레이버를 조금 낮추고 쓴맛을 더하고 싶으면 빅 아이 IPA다. 패덤 IPA는 쓴맛은 덜 하면서 음용성이 좋다. 발라스트 포인트 맥주는 눈으로도 즐겨야 하는 맥주이다. 모든 맥주의 레이블에는 폴 엘더Paul Elder가 그린 샌디에이고의 물고기나 항해, 바다를 주제로 한 그림이 있다. 이것은 바다와 낚시를 사랑한 직원들의 감성으로 발라스트 포인트 맥주의 독창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여담이지만, 미국 크래프트 맥주의 레이블은 대체로 화려한다. 예를 들어 시에라 네바다 브루잉의 맥주는 시네라 네바다의 아름다운 산맥이 그려져 있고, 하와이 지역의 코나 브루잉 맥주는 원주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발라스트 포인트는 물고기와 바다를 주제로 한 화려한 색채감이 압권이다. 그에 반해 일본 크래프트 맥주를 접하면 대체로 단순한 느낌이다. 대표적인 것인 코에도이다. 레이블에 영어로 COEDO라고 큼직하게 써져 있는 것이 전부이다.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는 어떤지 앞으로 주의 깊게 봐야겠다.
구스 아일랜드와 발라스트 포인트 모두 한때는 미국 크래프트 브루어리를 대표하였으나 지금은 대기업 자본이 소유하여 크래프트 브루어리로 보기는 어렵다. 미국 브루어리 협회의 멤버 디렉터리에서도 마이크로 브루어리나 지역 브루어리가 아닌 대형 브루어리로 분류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대기업이 기존 크래프트 문화를 이해해 주고 원래의 방식대로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대기업에 의해 소유권이 인수되었고, 한국에서는 국내 대기업이 수입하고 있다. 대기업과 대기업의 연.결고.리.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1933년 같은 해에 설립되어, 이후 거의 80년 이상 우리나라 맥주 시장을 양분해 왔다 - 간혹 맥주 삼국시대가 있었고, 현재도 클라우드 맥주가 있긴 하지만. 최근에는 오비맥주가 산토리 맥주를, 하이트진로가 기린 맥주를 수입하는 등 일본 맥주도 나란히 수입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미국 크래프트 맥주의 수입으로 경쟁하고 있다. 크래프트 정신에 따르면, 크래프트 맥주의 생산과 유통 모두 대기업에 의존하는 것은 맞지가 않다. 국내에 수입되고 있는 많은 크래프트 맥주가 있지만, 유독 이 두 맥주만은 대기업이 수입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기업의 크래프트 맥주 수입은 소비자에게 접근성과 가격에서 이점을 줄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선택과 집중의 전략은 선택의 다양성을 뺏아아 갈지 모르겠다.
글 | 날마다 좋은 ㅎㅏ루
크래프트 비어 북 : 미국 크래프트 맥주의 역사부터 문화까지 크래프트 맥주에 관한 모든 것, 김선운 저, 숨
'작고 독립적이고 전통 있는' 미국의 크래프트 브루어리
본문 및 제목 사진 출처 : 구스 아일랜드, 발라스트 포인트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