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크래프트 맥주가 뭐야?'라고 하시는 분들께...
20년 지기 친구의 가족들과 캠핑을 가서 대화를 하다가 친구의 아내가 ‘도대체 수제 맥주가 무엇이냐’고 물어왔다. 수제 맥주는 ‘작고 독립적이고 전통에 따라 만드는 맥주’라는 지나치게 원론적인 대답을 해 주었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맥주는 다 그게 그거'라며 저렴한 발포주만 마시던 후배 녀석이 카톡을 보내왔다. 마트에서 수제 맥주를 샀다며 사진 한 장을 보낸 것이다. 구스 아일랜드가 포함되어 있는 캔맥주 4개였는데 자세히 보니 모두 에이비인베브AB InVeb가 소유한 맥주였다. 에이비인베브는 버드와이저로 유명한 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 기업으로 호가든, 레페, 벡스, 스텔라 아루뚜아, 코로나, 뢰벤브로이 그리고 오비맥주 등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제품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대기업 자본이 소유한 구스 아일랜드를 이제 크래프트 브루어리로 볼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급하게 미국 양조장 협회의 멤버 디렉터리를 살펴보았다. 구스 아일랜드는 이제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아닌 대형 브루어리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크래프트 맥주란 무엇일까? 최근 가까운 지인을 통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자면, 대중들의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많아진 것을 느낀다. 크래프트 맥주의 정의, 그리고 크래프트 맥주의 역사, 이런 것들이 이번 글의 화두이다.
크래프트 맥주는 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생산한 맥주이다. 그럼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무엇일까? 오늘 다루고자 하는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미국의 브루어리에 대해서다. 일본과 한국에서 정의하는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전체적인 맥락은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요건이 약간씩 다르다. 미국은 브루어즈 협회(Brewers Association)에서 일본은 주세법에서, 한국은 수제맥주협회에서 크래프트 브루어리를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각국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부르는 말이 재미있다. 한국에서는 수제 맥주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지비루(地ビール)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크래프트 맥주를 가내수공업으로 만든다는 의미로 그렇게 부른 것 같은데, 초창기에는 가양주처럼 만든 맥주였을지는 몰라도 이제는 크래프트 맥주라고 가내수공업 정도로 만들지는 않는다. 일본에서 부르는 지비루는 한자로 '땅 지(地)'와 일본에서 맥주를 부르는 말인 '비루(ビール)'가 합쳐진 말이다. 지역에서 만들어진 맥주라는 의미이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미국의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마이크로 브루어리(Microbrewery)와 지역 브루어리(Regional Brewery)로 분류하는데, 이렇게 보면 한국의 수제 맥주는 마이크로 브루어리의 의미, 일본의 지비루는 지역 브루어리의 의미와 가깝다.
미국의 BA(Brewers Association)에서 정의하는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한마디로 '작고 독립적이고 몇 가지 콘셉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작고 독립적이라는 것은 기준이 명확하다. 몇 가지 콘셉트는 철학에 가까운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연간 생산량이 600만 배럴 이하이어야 한다
Annual production of a 6 million barrels of beer or less.
600만 배럴은 미국 연간 생산량의 약 3% 정도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배럴(barrel)이라는 단위가 생소할 수 있는데, 배럴은 미국에서 술을 담은 나무통에 세금을 매기면서 생겨난 단위이다. 특이하게도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부피가 다른데, 발효주의 경우 1배럴에 117.34리터이다. 알기 쉽게 추산해보면 1배럴이면 500ml 캔맥주가 235개 정도가 되는 셈이다. 600만 배럴은 약 70만 킬로리터이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이 양은 결코 작은 양이 아니다. 이렇게 기준 자체가 커진 이유는 보스턴 비어 컴퍼니의 덕분(?)이다.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대기업 자본이 25% 이상을 소유해서는 안된다.
Less than 25 percent of the craft brewery is owned or controlled (or equivalent economic interest) by a beverage alcohol industry member.
대기업이라고 쉽게 번역했지만, 미국의 음료 및 알코올 회사를 말한다. 이 조건은 기존의 외부 자본이 크래프트 브루어리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컨트롤하여 크래프트 정신이 훼손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렇게 때문에 구스 아일랜드는 이제 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대형 브루어리로 분류된 것이다.
그 밖의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가져야 할 몇 가지 콘셉트가 있다. 이 콘셉트들은 다소 철학적이며 절대 규정이라고는 할 수 없다.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역사적인 스타일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스타일을 개발해야 한다. 혁신적이어야 한다.
크래프트 맥주는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되 독창성을 위하여 비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할 수 있다.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지역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방법으로 고객과 만나야 한다.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비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관심을 받지 않아야 한다.
미국 양조장 협회의 기준에 의하면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연간 생산량에 따라 마이크로 브루어리(Microbrewery)와 지역 브루어리(Regional Brewery)로 나뉜다. 마이크로 양조장은 연간 생산량이 15,000 배럴보다 작고, 그 이상에서 600만 배럴까지는 지역 브루어리로 분류한다. 600만 배럴 이상을 생산하면 대형 브루어리이다.
그럼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시장은 어느 정도일까? 2018년 기준으로 미국의 맥주 판매량은 전년 대비 1% 줄었지만, 크래프트 맥주는 4% 증가하여, 크래프트 맥주가 전체 맥주의 13.2%를 차지하였다. 달러로 보면 미국 전체 맥주 시장이 1,142억 달러이고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276억 달러이다. 크래프트 맥주의 매출은 전체 맥주 시장의 24%를 차지한다. 미국의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수는 2018년 기준으로 4,752개에 달한다. 그중 마이크로 브루어리가 4,522개, 지역 브루어리가 230개이다. 반면 대형 브루어리나 비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개수는 104개이다.
양적으로 보나 질적으로 보나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시장은 대단한다. 전 세계가 미국 크래프트 시장을 주목하고 있고, 그들의 스타일을 따라 하고 있다. 맥주의 나라를 독일과 벨기에로 알고 있었다면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 크래프트 맥주의 성지는 미국. 이런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4개의 브루어리가 있다. 이 브루어리들은 크래프트 맥주의 개념을 정립시킨 브루어리도 있고, 최초의 크래프트 브루어리로 인정받기도 하였으며, 크래프트 브루어리로 먹고 살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다음 글에서는 이 네 개 브루어리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곧 돌아옵니다.
[1] 주요국의 주세율 과세제도 비교연구 - 맥주를 중심으로, 2018. 6,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세법연
[2] 크래프트 비어 북 : 미국 크래프트 맥주의 역사부터 문화까지 크래프트 맥주에 관한 모든 것, 김선운 저, 숨
[4] Craft Beer Industry Market Segments
[5] National Beer Sales & Production Data
[6] Brewers Association Releases 2018 Top 50 Brewing Companies By Sales Volume
[7] 경향비즈, 한국수제맥주협회, '수제맥주' 기준 내놔
[8] 이데일리, 수제맥주 ‘인증마크’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