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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Jun 29. 2019

(통사로 읽는) 일본 맥주의 역사

대기업 맥주부터 크래프트 맥주까지




일본말로 '토리아에즈 비루 구다사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일단 맥주 주세요'가 된다. 어느 맥주 회사의 맥주 광고에서 유행한 말이지만, 일본인들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기 전 '토리아에즈 비루 구다사이'를 외치고 천천히 메뉴를 살펴보곤 한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고는 할 순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맥주보다 하이볼이나 홋피를 더 마실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일본의 맥주 문화를 생각하면 왠지 떠오르는 말이 이것이다. 일본의 맥주는 홋카이도에 지금의 삿포로맥주가 설립된 1877년 이후 거의 150년이나 되었다. 일본과 맥주의 만남은 맥주회사의 설립이 아닌 일본인들이 맥주를 받아들인 역사를 따져 보면 더욱 오래되었다. 처음으로 외국 선박이 입항한 1613년 배에 실은 물건 중에 맥주가 있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삿포로 맥주가 설립된 이후 짧은 기간에 우후죽순으로 맥주 회사들이 생겨났다. 지금의 아사히맥주, 기린맥주, 산토리, 오리온맥주가 차례대로 생겨나 현재 일본에는 5개의 대기업 맥주가 있다. 지금이라고 단서를 붙인 이유는 그때의 이름이 지금과 달랐기 때문이다.


지난번 글에서 에비스 맥주를 포함해 여섯 개 일본 맥주의 역사를 쓰고 나니, 이를 하나로 묶어 '일본 멕주 통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일본 맥주의 150년 역사에는 대단히 많은 일이 있었다. 외국인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된 일본 맥주는 일본 개방의 시기에 새로운 문화를 주도하기도 했으며, 전쟁 기간에는 맥주의 배급제와 맥주 원료 부족으로 혼란스럽기도 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맥주 회사 간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겐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일본 맥주를 제대로 배우고 나서야 한국 맥주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 맥주의 통사를 써야만 이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글이 좀 길어질 것이다. 글을 읽는 데 대단한 인내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읽기 전에

* 맥주회사와 맥주 이름의 표기법

맥주회사와 맥주를 구분하기 위해 맥주회사명은 모두 붙여쓰기를, 맥주명은 띄어쓰기를 사용하였다. 가령, '삿포로맥주'는 회사의 이름이고, '삿포로 맥주'는 맥주의 이름을 의미한다.





일본 맥주의 시작


1870년 설립 당시의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

일본 최초의 맥주 양조장은 1869년 독일 출신의 양조자 비간트(Wiegand)가 세운 '재팬 요코하마 브루어리'이다. 1년 후인 1870년에는 노르웨이 출신의 미국인 윌리엄 코플랜드(William Copeland)가 요코하마의 외국인 거류지에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를 개설한다. 이 두 양조장은 같은 도시에서 발생하는 판매 경쟁을 피하기 위해 서로 합병하여 '코플랜드 앤 비간토 상회'를 만들지만, 공동 경영의 문제가 불거져 결국에는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로 남게 된다. 이 양조장이 바로 기린맥주의 전신이다. 일본 최초의 양조장이긴 하지만 일본인이 세운 최초의 양조장은 아니었다. 기린맥주가 설립된 것은 1907년의 일이다.


1877년 발매 당시의 삿포로 맥주 레이블

1876년에는 홋카이도에 삿포로맥주의 전신인 '개척사맥주양주소'가 설립된다. 이것이 바로 일본인이 최초로 세운 양조장이다. 당시의 홋카이도는 개발이 되지 않은 황무지였다. 1869년 메이지 신정부는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홋카이도에 '홋카이도 개척사'를 설치하고,  일본인을 강제로 혹은 자발적으로 이주시키고 아이누 민족들이 살던 땅을 '홋카이도'라 부르며 그들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곳에 신사업 육성을 위해 30종 이상의 관영 공장을 설치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맥주 양조장이었다. 홋카이도는 맥아 보리를 자생적으로 재배할 수 있어 원료를 자급자족할 수 있었고, 맥주를 저온에서 발효시키기 위해 필요한 얼음이 있었으며, 전체적인 기후와 풍토가 유럽의 맥주 벨트(아일랜드, 영국, 독일, 벨기에 등 유럽의 맥주 생산 국가가 위치한 지역을 일컫는 말)와 비슷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877년 홋카이도의 북진 깃발에 있는 붉은 별을 레이블에 넣은 독일식 맥주를 생산했는데. 이것이 바로 일본인이 최초로 만든 맥주인 '삿포로 라거'이다. 사람들은 이 맥주를 '아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대기업 맥주회사의 설립


1890년 에비스 맥주 양조장의 모습

1885년부터 1889년 사이의 시기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대기업 맥주회사들이 설립되었다. 1885년에는 미츠비시 기업의 2대 총수인 이와사키가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를 인수하여 기린맥주의 전신인 '재팬브루어리'를 설립하였다. 1887년에는 홋카이도의 개척사맥주양조장이 민영화되어 삿포로맥주의 전신인 '삿포로맥주주식회사'가 설립되었고, 같은 해 도쿄에서는 에비스맥주의 전신인 '일본맥주양조회사'가 설립되었다. 1889년에는 서일본의 맥주 수요에 따라 아사히맥주의 전신인 '오사카맥주회사'가 설립되었다. 모두 풍부한 자금력을 가진 대기업 맥주 회사였다. 1888년부터 1892년 사이에는 각 회사의 대표 맥주가 발매되었다. 재팬브루어리는 1888년에 '기린 맥주'를 발매하였다. 일본맥주양조회사는 1890년에 '에비스 맥주'를 발매하였다. 오사카맥주회사는 1892년에  '아사히 맥주'를 발매하였다. 모두 독일식 맥주였다. 독일식 맥주는 라거 계열의 맥주로 냉동기가 필요했으므로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 맥주회사들이 만들 수 있었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양조장에서는 주로 영국식 맥주를 만들었다. 당시의 일본인들은 쓴맛이 강한 영국식 맥주보다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독일식 맥주를 선호했다고 한다. 그래서 품질 좋은 독일식 맥주를 만든 대기업 맥주회사들은 점점 성장해 갔고, 중소 규모의 맥주회사들은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1901년부터는 맥주에 세금을 부과했다. 여러모로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 양조장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맥주 산업의 발달


180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한 대기업 맥주회사들은 전쟁으로 인해 맥주가 통제되기 시작한 1939년까지 최대 호황을 맞았다. 맥주세 도입으로 카운트 펀치를 맞은 중소 양조장들이 잇달아 폐업하면서 대기업 맥주회사들의 독주 체제가 되었다. 또한 이 시기 일본의 근대화와 도시화가 발흥되면서 맥주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일본의 전국에 철도망이 깔리면서 지방까지 맥주가 안정적으로 보급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시로의 대규모 인구 유입으로 인해 도시 문화가 발달하였고, 도시인들은 라이프 스타일로 맥주를 즐기기 시작하였다. 특히 도시에서는 비어홀이 탄생하여 퇴근 후 맥주를 마시는 직장인들이 늘어났다. 신문과 포스터에서는 매일 같이 다양한 맥주 광고가 게재되었다.

1913년 사쿠라 맥주 포스터와 1926년 기린 맥주 포스터


대기업 맥주의 시대를 굳건히 한건 아무래도 세 개의 맥주회사가 합병한 사건이었다. 1906년 오사카맥주회사와 일본맥주양조회사, 그리고 삿포로맥주회사가 합병하여 '대일본맥주주식회사'가 세워졌다. 이 합병을 주도한 인물은 일본 맥주의 왕이라고 불렸던 '마코시 쿄헤이'이다. 쿄헤이는 이벤트와 광고, 프로모션 등 판매 전략의 귀재라 불렸다. 쿄헤이는 일본 내각에 '국내의 과다 경쟁을 배제하고, 수출을 촉진하며, 자본의 집중을 도모하기 위해 합병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해 이 합병을 이끌어 냈다. 이 세 개의 회사를 합치면 점유율이 70% 정도가 되었다. 나머지는 기린 맥주가 힘겹게 대항하고 있었다. 대일본맥주주식회사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통제된 맥주 정책이 풀린 1949년까지 독과점 형태를 이어갔다.



전쟁 중에 통제되었던 맥주 산업


1937년에 일본의 대륙 침략으로 발발한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맥주 산업이 통제되었다. 맥주 생산량은 1939년에 최고를 찍었지만 이후 점점 감소하였다. 전시 체제 하에서 물자가 부족해 지자 일본 정부는 모든 물건을 배급하였다. 맥주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물건의 가격이 통제되어 맥주의 가격도 동결되었다. 1940년에는 맥주를 배급하기 시작하였다. 맥주는 업무용, 가정용, 특수용으로 구분되어 각 용도별로 배급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었다. 1943년에는 맥주의 회사의 상표를 없앴다. 즉, 맥주의 라벨에는 삿포로 맥주, 에비스 맥주처럼 브랜드명을 쓸 수 없었고, 그냥 '맥주'라고만 쓰고 맥주의 용도와 맥주 회사 이름만 쓸 수 있었다. 이러한 맥주의 통제는 전쟁이 끝나고 연합군이 주둔하고 있을 때에도 계속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맥주는 다시 생산되었지만 생산량이 회복되지는 않고, 그마저 일본에 주둔한 연합군에 공급되었다. 1949년이 되어서야 맥주의 자유 판매가 재개될 수 있었다.

1943년 브랜드명이 없고 용도별로 있는 맥주 레이블
1936년 대일본맥주주식회사의 맥주 레이블


일본 맥주의 부활


1949년 맥주의 자유 판매가 재개된 이후 가장 먼저 발생한 이슈는 대일본맥주주식회사가 '일본맥주주식회사'와 '아시히맥주주식회사'로 분할된 일이다. 일본맥주주식회사는 삿포로 맥주와 에비스 맥주의 브랜드를 이어받고 도쿄를 중심으로 홋카이도부터 나고야까지의 동일본을 영업 지점으로 삼았다. 아사히맥주주식회사는 오사카맥주회사를 이어받아 오사카를 중심으로 서일본을 영업 지점으로 삼았다. 분할된 시점의 시장점유율은 일본맥주주식회사(이하 삿포로맥주)가 38.7%, 아사히맥주주식회사(이하 아사히맥주)가 36.1%, 기린맥주주식회사(이하 기린맥주)가 25.3%였다.


일본 맥주는 한동안 3강 체제를 유지하였다. 이 세 개의 맥주회사는 공교롭게도 1953년에 거의 동일한 점유율 33%를 차지하였다. 같은 조건에서 시작한 이때부터가 진정한 경쟁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결과적으로 기린맥주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까지 60% 이상의 고공 행진을 이어가다가 아사히맥주가 '아사히 슈퍼 드라이'를 발매한 이후 2000년대 애는 줄곧 1위 자리를 아사히 맥주에 내어 주었다. 아사히 맥주는 한 때 삿포로 맥주에 추월당하고 맥주 신생기업인 산토리에게도 뒤쳐질 위기에 쳐했으나 1987년에 발매한 아사히 슈퍼 드라이의 히트로 현재 근소하게 기린맥주를 앞서고 있다. 삿포로맥주는 서서히 점유율이 감소하다가 이제는 산토리에게도 따라 잡힌 형국이 되었다.


일본 시장 맥주회사 점유율 추이 1953 년 ~ 2018 년


맥주 신생기업의 합류


1959년 발매 당시의 오리온 맥주

1957년에는 오키나와에서 '오키나와맥주회사'가 설립되었다. 줄곧 일본 본토의 맥주와 미국 본토의 맥주를 마시던 오키나와에서 오키나와 재건의 하나로 맥주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그리고 2년 후인 1959년 '오리온 맥주'를 발매하였고 맥주회사 이름도 '오리온맥주주식회사'로 변경하였다. 오리온 맥주는 한 때 오키나와 섬에서만 95%의 점유율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일본 전체를 보면 점유율이 1%도 되지 않지만 오키나와 섬에서는 지금도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1963년 준공 당시의 산토리 맥주 공장

1899년 '신지로 토리이'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위스키 생산 업체 '산토리'는 1963년에 맥주 산업에 진출하여 '산토리 맥주'를 발매하였다. 사실 산토리가 맥주 산업에 진출한 건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1928년에 가나가와현에 있는 '캐스케이드 맥주'를 인수해 맥주를 생산하고 저가 경쟁을 펼쳤지만, 기존 대기업의 압박과 견제로 맥주 사업에서 철수한 적이 있었다. 이때가 1934년이다. 산토리는 1967년에 열처리를 하지 않고 효모를 제거한 생맥주를 발매하였는데, 이것이 아사히의 열처리를 하지 않고 효모가 살아 있는 맥주와 생맥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산토리는 드라이 맥주 전쟁이 한창일 때 맥아 100%의 맥주를 주력으로 삼았다. 2003년에 발매한 '더 프리미엄 몰츠'는 1980년에 발매한 '몰츠'를 업그레이드한 맥주였는데 이것이 크게 히트했고 현재 산토리의 시그니쳐 맥주가 되었다. 산토리는 1994년에 ‘HOP’S 生'이라는 발포주를 만들어, 일본 내에서 발포주 시장을 재점화시키기도 하였다. 산토리는 아무래도 맥주 후발 기업이다 보니 혁신적인 제품과 다른 맥주와의 차별화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산토리는 1990년대 중반부터 점유율이 꾸준히 올라 2000년대 후반부터는 삿포로 맥주를 제치고 일본 내 맥주 점유율 3위에 오르게 되었다.



일본 대표 맥주의 발매 시기


그럼 일본을 대표하는 맥주는 언제쯤 발매된 것일까? 중간중간 언급했지만 조금 더 알아보기 쉽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현재 일본 내 점유율 1위인 아사히 맥주는 1987년에 일본 최초로 드라이 맥주로 발매되었다. 1990년에는 기린맥주에서 '기린 이치방 시보리'를 발매하였다. 산토리는 1989년에 한정품으로 만든 '몰츠 슈퍼 프리미엄'을 리뉴얼하여 2003년에 '더 프리미엄 몰츠'를 발매하였다. 삿포로 맥주의 대표 맥주인 에비스 맥주는 1943년에 생산이 중단된 이후 28년 만인 1971년에 부활하였고, '삿포로 블랙 레이블'은 1977년에 발매되었다.



생맥주 전쟁


일본에서는 열처리를 하지 않은 맥주를 생맥주라고 정의하고 있다. 맥주에 열처리를 하는 이유는 발효 후 남아 있는 효모를 제거하여, 병입 후 효모가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열처리는 100도 이하의 온도로 살짝 가열하여 효모를 완전히 죽이기보단 해가 없을 정도까지만 감소시키는 저온살균법을 사용한다. 저온살균법은 영어로 'pasteurization'이라고 하는데 파스퇴르가 발명한 방법이다. 열처리를 하지 않아 효모가 살아 있는 맥주이기 때문에 생맥주는 냉장고에 보관해도 유통기간이 짧고 양조장 근처에서나 마실 수 있는 맥주였다. 하지만 1967년 산토리 맥주가 열처리를 하는 대신 마이크로 필터로 효모를 제거한 '純生'을 발매하고 이를 생맥주라 지칭하면서 생맥주 논쟁이 발생하였다. 1968년 아사히맥주는 열처리를 하지 않고 효모가 살아 있는 생맥주인 '本生'을 발매하여 공장 근처에서만 판매하였다. 둘 다 열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효모의 존재 유무에서 차이가 있다. 생맥주 논쟁이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열처리를 하지 않으면 생맥주이다'라는 산토리맥주의 주장과 '효모를 제거한 맥주는 생맥주가 아니다'라는 아사히맥주의 주장이 대립한 것이 생맥주 논쟁이다. 결국 이 논쟁은 197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산토리맥주의 손을 들어주면서 끝났다. 즉 열처리를 하지 않는 맥주는 모두 생맥주라는 것이다. 요즘에 우리가 마시는 대부분의 생맥주는 효모가 살아 있지 않다.



드라이 전쟁


1987년에 발매되어 드라이 전쟁을 일으킨 아사히 슈퍼 드라이

우선 알아두어야 할 것은 '드라이'라는 단어의 실체이다. 드라이는 맥주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맥주 공법도 아니다. 정확한 실체가 없는 것이 드라이이고 하나의 유행일 뿐이었다. 1987년에 발매한 아사히 슈퍼 드라이가 공존의 히트를 치면서 드라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신조어가 되었고 유행이 되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드라이 맥주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대체 드라이 맥주는 무엇일까? 아사히 슈퍼 드라이는 맥아 비율을 낮추고 옥수수와 같은 부가물의 비중을 높인 맥주다. 맥아의 풍미와 진한 맛은 없으나 대신 목 넘김이 좋고 감칠맛이 난다. 한마디로 밍밍하고 싱거운 맥주이다. 음식과 함께 먹을 때에는 부담스러운 풍미보다 드라이한 맛이 나을 수 있다. 아무튼 아사히맥주의 드라이 맥주는 다른 맥주 업체에서도 드라이 맥주 열풍에 뛰어들게 했다. 기린맥주는 '기란 드라이'를, 삿포로맥주는 '삿포로 드라이'를, 산토리는 '산토리 드라이'를 발매했다. 이 모든 것이 1988년 한 해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사히 슈퍼 드라이의 인기를 따라갈 순 없었다. 아사히는 한때 뒤쳐져 있던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회복하여, 2000년 이후에는 기린을 제치고 일본 내 점유율 1위가 되었다. 하지만 드라이 맥주는 카니발리즘 같은 것이었다. 전체 시장의 파이는 커지지 않으면서, 다른 맥주의 수요는 점차 감소하게 되었다. 한편 아사히맥주가 드라이 맥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위기감을 느낀 다른 맥주 업체는 발포주나 제3의 맥주에 눈을 돌렸다.



발포주와 제3의 맥주 전쟁


1994년 산토리가 발매한 발포주 HOP'S 生

1989년 일본은 대형 할인점에서 맥주를 사고팔 수 있게 허용하였다. 소비자는 대형 매장 간의 저가 경쟁으로 일반 소매가격보다 저렴하게 맥주를 구입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일반 소매가격보다는 싸졌지만 맥주의 가격은 더 이상 내리지는 않았다. 맥주의 가격 중 세금이 약 46%을 차지하고 있어 더 이상의 가격 인하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입 맥주가 싼 가격에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대기업 맥주 회사들의 위기감은 점점 고조되었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맥주 시장에 가장 늦게 뛰어든 산토리가 가장 먼저 발포주를 재점화하였다.


당시의 주세법에 의하면 맥이 비율이 66.6% 미만이면 발포주로 분류되고 낮은 세율이 적용되었다. 1994년 이러한 점을 주목한 산토리는 맥아 비율을 65%로 낮추고 부족한 원료를 쌀, 옥수수, 전분 등으로 대체한 발포주인 ‘HOP’S 生’을 발매하였다. 기존의 맥주가 350ml 캔 하나에 대략 220엔 전후의 가격이었는데 HOP’S는 180엔 정도로 판매하였다. HOP’S는 기존의 맥주보다 풍미는 떨어지지만 마시기 쉽고 청량감이 있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산토리의 성공을 목격한 다른 맥주 회사들도 연이어 발포주 시장에 띄어 들기 시작하였다. 1995년에는 삿포로 맥주가 맥아 비율이 25% 미만인 ‘Drafty 生’을 출시하였다. 1998년에는 기린 맥주가 ‘기린담려 麒麟淡麗 〈生〉’을 출시해 발포주 시장의 50%를 넘을 정도로 히트시켰다. 발포주 시장에 뛰어들지 않겠다던 아사히는 2001년에 가장 늦게 발포주 ‘본생(本生)’을 내놓았다.

2003년 삿포로 맥주는 발포주보다 맥아의 함량을 더욱 낮춘 새로운 장르의 맥주 '드래프트 원'을 발매했다. 이 맥주를 '제3의 맥주'라고 하는데, 맥아 함량이 25% 미만으로 세금이 맥주와 발포주보다 저렴하다. 제3의 맥주는 저렴한 가격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2018년의 시장 조사에 의하면, 맥주류에서 맥주가 49%, 제3의 맥주가 38%, 발포주가 13%를 차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본의 편의점에 가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다양한 맥주가 있는데  이는 사실 맥주가 아닌 대부분 발포주와 제3의 맥주라고 할 수 있다.



크래프트 맥주 전쟁


일본에서 지비루(地ビール)라 부르는 크래프트 맥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1994년이다. 이 해 일본 주세법이 개정되어 크래프트 맥주의 시장이 열렸다. 이전에는 맥주 양조장을 개설하려면 한 해 최소 2,000 킬로리터 이상 맥주를 생산할 수 있어야 했으나 1994년에 긴급 경제 정책으로 개정된 주세법의 의해 그 수치가 60 킬로리터로 줄었다. 2,000 킬로리터 이상 맥주를 제조하는 것은 사실상 대기업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에서는 크래프트 맥주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1994년 이전부터 있었던 대자본의 대량 생산 맥주와는 무관하게 양조할 것.

1회 양조의 양이 20킬로리터 이하의 소규모로 양조할 것.

전통적인 양조법과 지역의 특산물을 재료로 하여 개성 넘치는 맥주를 양조할 것.

주세법 개정 이후 소규모 양조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그 수가 한 때 300개도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렴한 발포주가 등장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약해져 이제는 그 수가 줄어 2018년도 기준으로 약 141개의 브루어리가 남아 있다. 일본에서 크래프트 맥주로 유명한 양조장들로는 일본 전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요나 요나 에일'을 판매하는 '얏호 브루잉',  부엉이 레이블로 유명한 '히타치노 네스트 맥주', 세계 최초로 고구마 맥주를 개발한 '코에도 맥주' 등이 있다.





일본에는 다양한 맥주가 존재한다. 우선 대기업 맥주가 주도하는 페일 라거가 있고, 에비스와 더 프리미엄 몰츠로 대표되는 프리미엄 라거가 있다. 최근에는 발포주와 신쟝르라 하는 제3의 맥주가 선전 중이다. 지비루라 부르는 일본의 크래프트 양조장은 2018년 기준 141개에 달한다. 여기에 대기업들도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일본의 맥주, 역사와 문화를 품고 마시면 그 맛이 더 감미롭지 않을까 싶다.




참고자료


일본 맥주회사 홈페이지

아사히 맥주

기린 맥주 

삿포로 맥주 

산토리 맥주

오리온 맥주

얏호브루잉

히타치노 네스트 맥주

코에도 맥주


일본 맥주 칼럼

바다를 건너온 맥주

요코하마에 일본 최초의 맥주 양조장인 재팬 요코하마 브루어리 개설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의 개설

일본 맥주의 증대와 자본화

맥주에 맥주세가 부과

맥주의 배급과 맥주 생산량의 감소

전시 통제가 맥주를 보급한 일면

일본의 생맥주에 대한 정의

일본 생맥주에 관한 논쟁

드라이 맥주의 붐

드라이 맥주에 관하여

맥주 산업의 국내 시장 점유율과 현황, 향후의 동향

일본 맥주의 역사

일본 발포주의 역사

스프링밸리브루어리의 역사

제3의 맥주의 역사

맥주류 출하량 추이


작가의 이전 글

홋카이도 개척의 역사, 삿포로 맥주의 역사

에비스 신, 에비스 역, 그리고 에비스 맥주

회사를 살린 맥주 하나, 아사히 맥주의 역사

미츠비시의 우산 아래, 기린 맥주의 역사

빨간 구슬의 포트 와인으로 시작한 산토리 맥주의 역사

오키나와 재건의 희망, 오리온 맥주의 역사

아시아의 스타일을 만들어 낸 일본의 페일 라거

핫포슈라 부르는 일본 발포주의 역사

꼭 알아 둬야 할 일본의 4대 크래프트 브루어리

일본 맥주의 원류를 찾는 여행, 에비스 맥주 기념관

일본 맥주의 원류를 찾는 여행,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



사진출처


본문 사진

1870년 설립 당시의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

1877년 발매 당시의 삿포로 맥주 레이블

1890년 에비스 맥주 양조장의 모습

1913년 사쿠라 맥주 포스터와 1926년 기린 맥주 포스터

1943년 브랜드 명이 없는 맥주 레이블

1936년 대일본맥주주식회사의 맥주 레이블

국내 시장 점유율 추이 1953 년 ~ 2018 년

1959년 발매 당시의 오리온 맥주

1963년 준공 당시의 산토리 맥주 공장

1987년에 발매되어 드라이 전쟁을 일으킨 아사히 슈퍼 드라이

1994년 산토리가 발매한 발포주 HOP'S 生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크래프트 맥주, 요나 요나 에일


제목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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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맥주 역사 연표


1869년 ~ 1884년

1869년 독일 출신의 양조자 비간트가 일본 최초의 맥주 양조장 '재팬요코하마브루어리' 설립

1870년 윌리엄 코플랜드가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 설립

1872년 일본인 최초의 중소 양조장 설립, 오사카의 '시부야맥주'

1876년 홋카이도에 일본인 최초의 맥주회사 '개척사맥주양주소' 설립 -

1877년 개척사맥주양주소에서 '삿포로맥주' 발매

1885년 ~ 1839년

1885년 미츠비시의 2대 총수인 이와사키가 스프링밸리 브루어리를 인수하여 '재팬브루어리' 설립(기린 맥주의 전신)

1887년 개척사맥주양주소가 민영화되어 '삿포로맥주회사' 설립(삿포로 맥주의 전신)

1887년 도쿄에 '일본맥주양조회사' 설립(에비스 맥주의 전신)

1888년 재팬 브루어리에서 '기린맥주' 빌매

1889년 '오사카맥주회사' 설립(아사히 맥주의 전신)

1890년 '에비스맥주' 발매

1892년 '아사히맥주' 발매

1906년 일본맥주양조회사, 삿포로맥주회사, 오사카맥주회사가 합병하여 '대일본맥주주식회사' 설립

1907년 미츠비시 재벌과 메이지 상점이 출자하여 재팬 브루어리를 인수한 '기린맥주주식회사' 설립

1939년 ~ 1948년

1939년 일본의 맥주 생산량이 최고치에 달함. 맥주의 가격은 동결

1940년 맥주 배급제 실시

1943년 맥주 브랜드가 없어지고 모든 회사의 맥주에 '맥주'라는 통일된 레이블만 사용됨

1945년 종전을 맞지만 연합군의 통제 속에 맥주의 자유 판매는 1949년까지 이뤄짐

1949년 ~ 현재   

1949년 대일본맥주주식회사가 '일본맥주주식회사'와 '아시히맥주주식회사'로 분할

1957년 기린 맥주가 홋카이도에 진출. 위기감을 느낀 일본맥주주식회사는 일본 맥주의 원래 맥주의 이름이었던 삿포로맥주를 부활

1957년 오키나와 맥주 설립(현, 오리온 맥주)

1958년 일본 최초의 캔 맥주(아사히 골드) 발매

1959년 오리온 맥주 발매

1963년 산토리주식회사가 맥주 사업에 진출하여 ‘산토리맥주’ 발매

1964년 삿포로맥주의 호조세에 힘입어 일본맥주주식회사는 이름을 '삿포로비루주식회사(サッポロビール주식회사)'로 변경

1971년 28년 만에 에비스 맥주 부활

1971년, 아사히에서 일본 최초의 올 알루미늄 캔 맥주 발매

1977년 ‘삿포로 블랙 레이블’ 발매

1987년 일본 최초로 드라이 공법을 사용한  '아사히 슈퍼 드라이' 발매

1990년 기린맥주 ‘기린 이치방 시보리’ 발매

1994년 주세법 개정으로 크래프트 맥주 활성화

2003년 산토리주식회사에서 ‘더 프리미엄 몰츠’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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