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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Nov 28. 2018

회사를 살린 맥주 하나, 아사히 맥주의 역사

일본 맥주의 역사 (3) - 아사히 맥주



아사히 맥주는 2018년 시장 조사에서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 맥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한때 아시히 맥주는 일본에서 점유율 10%도 안되어 산토리에 매각당하게 될 위기에도 처한 적이 있는 맥주였다. 아시히 맥주처럼 인생 역전, 아니 맥생 역전을 이루어 낸 맥주회사가 또 있을까? 아사히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모든 맥주 맛)을 버리고 오로지 고객의 목소리만 들어보기로 했다. 도쿄와 오사카에서 2차례의 미각 선호도 조사를 해보니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일본의 대다수 맥주 애호가들이 풍미가 강하고 쌉쌀한 맛의 맥주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음식에도 잘 어울릴 수 있는 '가라구찌(からくち, 辛口)'가 있는 맛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가라구찌란 원래 음식에서 매운맛을 뜻하는 단어이나, 술에서는 드라이하고 단맛이 적은 맛을 말한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맥주가 밍밍하기 짝이 없는 '아사히 슈퍼 드라이'였다. 이 맥주의 인기는 한때 매각 위기까지 갔던 회사를 살리고, 지금까지 일본 맥주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게 하고 있다. 다른 맥주 회사들이 발포주를 생산하여 맥주로는 부족한 매출을 충당하고 있을 때에도, 아사히 맥주는 '아사히는 드라이 한 개, 맥주만으로 승부합니다. 발포주는 발매하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하기도 하였다(지금은 발포주를 만들고 있다). 2016년 일본 시장 조사에서 아사히 맥주는 기린 맥주를 근소하게 제치고 7년 연속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아시히 맥주가 39.0%, 기린 맥주가 32.4%. 산토리는 15.7%, 삿포로 맥주는 12.0%, 마지막으로 오리온 맥주는 0.9%를 차지하였다). 아시히 맥주의 역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연대기 순으로 아사히 맥주의 역사를 따라가 본다.
아사히 맥주의 역사


1889년, 오사카시에서 '오사카 맥주 회사'를 설립한다.


1892년, 오사카 맥주 회사에서 '아사히 맥주'를 발매한다.  


1906년 9월, 오사카 맥주, 에비스 맥주, 삿포로 맥주가 합병해 대일본맥주를 설립한다. 이 합병을 주도한 인물은 '일본 맥주의 왕'이라 불리는 '마코시 쿄헤이'였다. 쿄헤이는 이벤트와 광고, 입소문에 의한 홍보 등 프로모션을 포함한 판매 전략의 귀재라 불렸다. 쿄헤이는 내각에 '국내의 과다 경쟁을 배제하고, 수출을 촉진하며, 자본의 집중을 도모하기 위해 합병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해 이를 이끌어 냈다. 쿄헤이는 세 개의 회사를 합쳐 점유율 70% 정도로 만들고, 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독과점 형태를 이어갔다.

1937년, 아사히 맥주 광고


1943년, 2차 세계 대전 중인 일본은 전쟁 물자와 식량 확보에 어려움을 격고 맥주 원료의 수입이 힘들어 진다. 이때부터 맥주 브랜드의 사용을 폐지하고 '맥주'라는 하나의 브랜드만을 사용한다. 아사히 맥주 브랜드도 이때 중단된다.


1949년 9월, 독과점 방지법에 의해 대일본맥주는 해체되어 '일본 맥주(현 삿포로 홀딩스)'와 '아사히 맥주(현 아사히 그룹 홀딩스)' 두 개의 회사로 분할된다. 각각 동일본맥주와 서일본맥주라고 한다. 이 분할을 추진한 대일본맥주의 야마모토 전무가 아사히 맥주의 초대 사장으로 취임됐기 때문에 다양한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분할된 시점의 맥주 시장 점유율은 일본 맥주(삿포로 맥주)가 38.7%, 아사히 맥주가 36.1%, 기린 맥주가 25.3%로 였다. 1954년에는 1위가 기린 맥주, 2위가 아사히 맥주, 3위가 일본 맥주가 되었다. 아사히 맥주는 1960년까지 줄곧 2위를 유지했다.


1958년, 일본 최초로 캔 맥주(아사히 골드)를 발매한다.


1985년, 1961년 점유율이 3위로 밀린 이후 80년대 중반에는 점유율 10%, 1985년에는 점유율 9.6%까지 떨어져 4위 산토리의 9.2%에 겨우 앞선 정도였다. 결국 석양맥주(유우히비루, ゆうひビール, 夕日ビール)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이는 '뜨는 해'라는 뜻인 아사히를 조롱하는 표현이었다.


1987년, 1월 아사히 슈퍼 드라이(Asahi Super Dry) 맥주를 발매한다. 당시 새롭게 취임했던 사장은 아사히 주력 맥주의 맛을 변경하기로 결심하고 도쿄와 오사카에서 2회에 걸쳐 소비자의 미각 선호도를 조사한다. 놀랍게도 그 결과는 소비자는 쓴맛 뿐만 아니라 입에 포함되었을 때의 감칠맛(고쿠, コク)과 목 넘김이 편안한 맛(키레,キレ)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반적으로 생각되었던 좋은 맥주의 맛이 '쓴맛과 풍미가 강하고 무거운 맥주'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사히 슈퍼 드라이는 발매 당시 언론의 냉정한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출시 후 수도권 한정으로 발매하려던 계획을 빠르게 수정하여 전국 발매가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아사히 슈퍼 드라이는 그해 닛케이 신문에서 뽑은 히트 상품이 되었고, 이듬해인 1988년에는 삿포로 맥주를 제치고 점유율 2위를 차지하였으며, 1998년에는 결국 맥주 분야 점유율 1위를 차지하였다.  

아사히 슈퍼 드라이


1989년, 아사히 슈퍼 드라이의 인기에 힘입어 회사명을 '아사히 맥주 주식회사'로 변경하고 창업시부터 판매되었던 '아사히 맥주(원본)'를 판매 종료한다.


2011년, '아사히 그룹 홀딩스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고 주류 사업을 자회사인 '아사히 맥주 주식회사'에 승계해 지주 회사로 바꾼다.


2016년, 아사히 맥주는 7년 연속 점유율 1위를 차지한다. 아시히 맥주가 39.0%이고 2위는 기린 맥주는 32.4%. 3위인 산토리는 15.7%, 4위인 삿포로 맥주는 12.0%, 마지막으로 오리온은 0.9%를 차지하였다.


아사히 맥주는 50년대와 60년대의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 50년대까지만 해도 식당이나 레스토랑 등의 업소용 맥주가 주류였다. 하지만 60년대 가정용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맥주는 더 이상 업소에서 마시는 고급 음료가 아니라 집에서도 마실 수 있는 대중적인 음료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사히 맥주는 여전히 업소용 시장에서 선두 기업 기린과 경쟁하고 있었다. 아사히 맥주는 맥주 제조 기술에서 경쟁자를 앞섰다. 독일식 맥주 공법, 옥외 발효 저주 탱크, 알루미늄 캔, 미니 통 맥주 등은 모두 아사히 맥주에서 먼저 개발한 것이다. 그러나 아사히 맥주는 기술자 중심의 제조 부분을 중시한 반면 관리, 영업 조직을 소홀히 했다. 아사히 맥주는 점점 몰락의 페달을 밟아 가고 있었으며 사내에는 패배 주위와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다고 한다. 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은 외부 컨설팅과 자체 진단, 그리고 새로 취임한 사장의 리더십과 소비자 연구였다. 1986년에 아사히 슈퍼 드라이 이전에 발매된 ‘아사히 생맥주(통칭 코쿠기레(ゴクキレ)’는 변화의 시작이었다. 아사히 생맥주는 초중고생의 육류 섭취의 기호 변화를 읽어 담백하게 만든 맥주이다. 또한 기린이 장악하고 있는 도매상과 식당을 공략하지 않고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아사히 맥주의 기록을 담은 ‘사장님, 아무도 우리 제품을 받아주지 않습니다’라는 책에 보면, 하구치 사장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아사히 맥주의 성공은 선호도 조사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소비자의 욕구를 발견하고 그것을 맥주에 제대로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상단에 영어로 가라쿠찌라 쓰여 있다.
아사히 맥주, 해외 진출의 역사


자국에서의 맥주 수요가 점점 감소해지자 일본의 메이저 맥주 회사들은 해외로 눈을 돌린다. 아사히 맥주도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다. 아사히 맥주는 한때 칭다오의 2대 주주이기도 하였으며, 현재는 ‘필스너 우르켈’이나 '그롤쉬' 등 인기가 있는 유럽 맥주의 주인이기도 하다. 20세기 초반에는 한국과 중국의 맥주 회사를 지배하기도 하였다. 아사히 맥주의 해외 진출사도 흥미롭다. 이 역시 연대기순으로 따라가 보면,


1914년, 독일의 조계지인 칭다오 지역을 일본이 관리함에 따라 칭다오 맥주의 경영권을 취득하고 1945년까지 자사 공장으로 경영하였다.


1933년, 한국에 '조선 맥주 주식회사(현재의 하이트진로)'를 설립한다.


2005년, 한국 롯데와 공동 투자하여 롯데아사히 주류를 설립한다.


2009년 8월, 칭다오 맥주의 2대 지주가 된다. 중국시장 공략을 위해 벨기에의 인베브(InBev)사로부터 칭다오 맥주 지분 19.99%를 약 6억 6650만 달러에 매입한다.


2016년, 사브(SAB) 밀러의 유럽 브랜드인 페로니(이탈리아)와 그롤쉬(네덜란드)를 4000억 엔(약 4조 970억 원)에 인수한다.


2016년, 앤하이저-부시 인베브(AB InBev)의 동유럽 사업부를 73억 유로(약 9조 원)에 인수한다. 이 인수의 결과로 체코의 필스너 우르켈, 폴란드의 티스키에와 레흐, 헝가리의 드레허 등의 주인이 되었다.



2017년, 2009년에 매입한 칭다오 맥주의 지분 약 19.99%를 홍콩의 푸싱그룹에 17.99%, 칭다오맥주그룹에 1.99%를 매각한다.


아사히 맥주와 관련된 에피소드


1. 아사히 맥주는 '차사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호가든을 OB맥주에서 생산하다 하여 '오가든'이라고 하는 것처럼 중국에서 생산되는 아사히 맥주를 '차사히'라고 부른다. 롯데아사히주류에서 수입하는 아사히 맥주는 병맥주는 중국산이고 캔맥주는 일본산이다. 병맥주는 일본산 제품이 가격이 비싸 중국산 제품을 수입한다고 한다.


2. 아사히 맥주는 '후쿠시마'산이다?

한국에서는 아사히 맥주가 후쿠시마에서 생산된다고 하여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사히 맥주는 일본에서 여러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그 중 한국에 수입되는 캔맥주는 하카타, 스이타, 나고야에서 생산된 것이며, 그 중에서도 95%가 하카타에서 생산된 것이다. 캔맥주의 바닥에는 생산지를 표시하는 알파벳이 있는 데, 이중 'H'라고 적혀 있으면 후쿠시마산이다. 현재 후쿠시마산 아사히 맥주는 거의 전량 후쿠시마 주변 현지에서만 소비된다고 한다. 참고로, 바닥에 적혀 있는 알파벳은 후쿠시마 H, 바라키 B, 카나가와 Y, 훗카이도 E, 스이타 U, 시코쿠 R, 나고야 S, 하카타 D를 의미힌다.


3. 아사히 맥주의 거품은 '엔젤링'이다?

한국에서 아사히 맥주 광고를 보면 엔젤링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엔젤링'이란 맥주잔에 남아 있는 거품의 모양이 천사의 머리 위에 있는 링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정식 명칭은 아니다. 엔젤링이 있다고 해서 좋은 맥주도 아니고, 잔에 거품이 많이 남아 있으려면 맥주보다는 잔이 청결해야 한다고 한다. 엔젤링은 성공적인 마케팅 수단일 뿐이다.



아사히 맥주는 맥주 애호가들이 보기에는 밍밍하기 짝이 없는 싱거운 맥주에 가깝다. 맥아의 비율도 낮아 나머지는 전분이나 옥수수로 채웠다. 맥주순수령으로 따지자면 영 엉망인 맥주이다. 중세 독일이라면 자신이 만든 맥주를 들고 산으로 들어가 스스로 모두 마셔야만 하는 형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드라이라는 용어도 단맛이 없고 싱겁다는 것을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엔젤링은 아예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소비자가 좋은 맥주를 찾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아사히의 마케팅은 대단히 적중했다. 아시히 맥주를 보면서 '잘 팔리는 맥주가 좋은  맥주는 아니다'라는 명제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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