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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Nov 29. 2018

미츠비시의 우산 아래, 기린 맥주의 역사

일본 맥주의 역사 (4) - 기린 맥주






일본에서 최초의 맥주 회사가 삿포로 맥주라면, 일본에서 최초의 맥주는 사실상 기린 맥주일 것이다. 기린 맥주는 일본에서 전후 가장 잘 팔리는 맥주였다. 아사히 맥주의 아사히 슈퍼 드라이가 인기를 끌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사히 맥주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관서 지방의 맥주라면, 기린 맥주는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관동 지방 맥주였다. 기린 맥주의 성공의 요인은 요코하마와 도쿄를 기반으로 히여 전국구 맥주로 빨리 발돋움할 수 있었다는것과 전범 기업인 미츠비시의 자본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기린 맥주의 역사


1870년, 노르웨이 계 미국인 윌리엄 코플랜드가 요코하마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판매할 목적인 맥주 회사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코플랜드 맥주)'을 설립한다. 이 회사는 일본 맥주 사업의 선구자적인 기업이지만 외국인이 세운 회사여서 일본 최초라는 칭호는 받지 못한다.


1885년, 미츠비시의 2대 총수인 이와사키와 외국 자본이 참여하여 '재팬 브루어리'를 설립한다. 재팬 브루어리는 스프링밸리 브루어리의 직원 대부분을 인수하는 한편 기존의 양조 설비는 매각한 후 독일의 최신 설비를 도입한다.


1888년, 재팬 브루어리는 메이지 상점과 총판 계약을 맺고 '기린 맥주'를 개당 18전에 발매한다. 메이지 상점은 현재도 출자하고 있는 기업이다.


1907년, 미츠비시 재벌과 메이지 상점의 출자로 완전한 일본 국적의 새로운 회사 '기린맥주 주식회사'를 설립한다. 기린맥주는 재팬 브루어리에서 조직과 사업을 그대로 인수한다.


1933년, 한국에 OB맥주의 전신인 '쇼와기린맥주(소화기린맥주)'를 설립한다.


1943년, 2차 세계 대전 중인 일본은 맥주 원료의 수입이 어려워지자 맥주 배급제로 운영된다. 모든 맥주 회사의 상표가 폐지되고 모든 라벨이 '맥주'로 통일된다.


1949년, 기린 맥주라는 상표로 다시 판매한다. 이 해 맥주 배급 제도가 폐지되고 직접 판매가 부활한다. 출하 제한도 해제되어 본격적인 자유 판매가 재개되었다.


1954년, 2차 세계대전 이후 점차 생산량을 늘려 이 해에는 연간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일본 내의 맥주 사업의 지위를 확고히 한다. 아사히 맥주에서 아사히 슈퍼 드라이가 나오면서 1위 자리를 내주고 만다.


1966년, 일본의 맥주 생산량의 50%를 돌파한다.


1990년, '기린 이치방 시보리'를 발매한다. 아사히에 아사히 슈퍼 드라이가 있다면, 기린에는 이치방 시보리가 있다. 이치방 시보리란 맥조 제조 중에 가장 먼저 짜낸 맥즙을 말한다. 이 맥즙을 사용하면 쓴맛이 적고 맛이 깔끔하다고 한다. 하지만 두 번째 맥즙을 사용한다고 해서 맛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첫 번째 맥즙과는 다른 맥아의 풍미와 맛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상 모든 맥주가 첫 번째 짜낸 맥즙을 사용한다고 하니 이치방 시보리란 결국 마케팅 용어일 뿐이다. 이후 기린 이치방 시보리의 맛은 여러 번 바뀌었다.

기린 맥주 - 아사히 맥주 연도별 시장점유율


1993년, 앤하이저-부시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 일본 내에서 버드와이저를 생산 및 판매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북미에서는 역방향 라이선스로 앤하이저-부시가 기린 맥주를 생산 및 판매하고 있다.


2007년, 창업 100주년을 맞아,  순수 지주회사제로 변경하고, 기린맥주 주식회사는 '기린홀딩스 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9년 신제품을 대거 투입하고, '기린 이치방 시보리 생맥주'는 맥아 100%를 사용하는 올 몰트 생맥주로 리뉴얼한다. 아사히 맥주와 치열한 접전을 벌인 한 해이다. 기린은 순수 맥주 이외에도 발포주와 제3의 맥주 시장에서는 강세였다. 이 해 맥주류 전체 출하량에서 아사히 맥주에 빼앗겼던 1위 자리를 21세기 이후 처음으로 탈환한다. 기린 맥주가 37.7%, 아사히 맥주가 37.5%였다. 그러나 판매량은 아시히 맥주가 1위였다고 한다. 출하량과 판매량의 순위가 다른 기현상이었다.


2014년, 윌리엄 코플랜드의 업적과 이념을 계승해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인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를 설립한다.


2016년, 미국의 브루클린 브루어리와 자본 제휴를 맺고 지분의 24.5%를 소유한다.



동양의 상상 속의 동물, 기린


기린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동물원의 그 기린이 아니다. 한중일의 동양에서 상상 속의 동물이다. 용의 얼굴과 사슴의 뿔, 말의 몸을 가진 상상의 동물이다. 중국에서는 공자 어머니가 기린 꿈을 꾸셨다고도 하고, 한국에서는 주몽이 기린을 타고 승천했다고도 한다. 기린 맥주의 이름에 관한 유래는 여러 설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미츠비시 경영자의 제안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설이다. 에도 막부 후기에 일본에서 활약한 미츠비시의 고문 변호사인 토마스가 친구인 사카모토 료마(일본에서 매우 인기가 있는 인물로 메이시 유신을 이끈 사무라이이자 철학자)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료마는 우리말로 용마(龍馬)인데 용의 머리와 말의 몸을 가진 기린과 서로 통한다. 다른 설로는 창업자인 코플랜드의 친구의 이름 '카린'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동양의 상상의 동물, 기린


전범기업, 미츠비시


미츠비시는 전쟁 범죄에 적극 가담한 전범 기업 중 하나이다. 전범 기업이란 전쟁 당시 적극적으로 무기를 개발하고 식민지의 국민을 강제 징용하는 등의 행위로 막대한 부를 쌓은 기업을 말한다. 이 중 미츠비시는 리더급에 해당한다. 미츠비시는 전쟁 중 전투기나 배, 탱크 등 국가가 필요한 전쟁 물자를 만들면서 성장해 왔는데 지금도 자위대 용 무기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미츠비시가 강제 동원한 장소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군함도이다. 당시 행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오래되고 지리멸렬한 싸움은 얼마 전 한국 대법원이 '일제 시대 강제 징용에 관해 배상하라'는 판결로 막을 내린 듯하다. 하지만 이 싸움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것 같다. 일본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이고, 배상할 책임이 있는 미츠비시 그룹은 보상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기린 맥주를 마시더라도 알고는 마셔할 항목이다. 여담이지만, 송혜교는 중국에서 미츠비시 계열의 자동차 광고 모델 제안이 들어왔으나 이를 거절하여 개념 배우라는 칭송을 받았다.

출처 : 서경덕 교수 페이스북 캡쳐



브루클린 브루어리


브루클린 브루어리는 미국 동부 지역의 대표 마이크로 브루어리이다. 창립자 중 한 명인 '스티브 힌디(Steve Hindy')'는 AP통신 중동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자가 양조법을 배웠고,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브루클린 브루어리를 설립했다. 브루클린 브루어리는 1984년부터 크래프트 맥주 양조를 주도한 핵심 브루어리 중의 하나이다. 한국에서는 제주 맥주의 파트너로 참여했지만 직접 생산은 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주세법 때문에 한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 수입하는 것이 더 싸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세법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뀌면 직접 생산을 하겠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본 적이 있다.

2016년, 기린 맥주는 미국의 크래프트 양조장인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지분 24.5%를 사들였다. 2011년에 다국적 맥주 기업인 AB InBev가 시카고의 '구스 아일랜드'라는 마이크로 브루어리를 소유한 것처럼, 일본의 맥주 대기업이 마이크로 브루어리를 침공한 것이다. 이러한 추세(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소유하고, 대중적인 맥주를 생산하는 기업이 지역 기반의 마이크로 브루어리를 소유하는 추세)는 앞으로 점점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기린 맥주는 그동안 정통 맥주의 부진을 발포주와 제3의 맥주로 만회해 왔다. 전체 볼륨으로 아사히 맥주와 대등하게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정통 맥주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크래프트 맥주로 눈을 돌린 것은 당연해 보이는 순서가 아닐까.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크래프트 맥주


삿포로 맥주는 홋카이도 원주민을 몰아낸 자리에 맥주 공장을 설립했다(왠지 우리의 역사와 닮았다). 아사히 맥주는 일본의 극우기업으로 역사 교과서니, 신사참배니 툭하면 망언이다. 기린 맥주만큼 A++ 등급의 전범 기업도 없다. 그럼 오늘부터 일본 맥주는 마시지 말아야 할까? 일본의 모든 맥주를 불매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기린 맥주 한 캔을 딸 때마다 전범 기업의 이미지는 따라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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