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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Nov 26. 2018

홋카이도 개척의 역사, 삿포로 맥주의 역사

일본 맥주의 역사 (1) - 삿포로 맥주





삿포로 맥주의 시작은 홋카이도 개척의 역사와 같다. 1869년 메이지 신정부는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개척사'를 설치한다. 메이지 정부는 이곳에 일본인을 강제 혹은 자발적으로 이주시키고 아이누 민족들이 살던 땅을 '홋카이도'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홋카이도 개발위원회가 설립한 일본 최초의 맥주 회사가 바로 삿포로 맥주이다. 삿포로 맥주는 일본 최초의 생산 맥주인 삿포로 라거를 출시한다. 일본에서는 곧이어 에비스 맥주, 아사히 맥주, 기린 맥주, 맥주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며 맥주 시장이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삿포로 맥주, 에비스 맥주, 아사히 맥주는 ‘대일본맥주’라는 하나의 회사로 합쳐지면서 기린맥주와 함께 양강 체계를 형성한다. 2차 세계대전의 여파는 맥주 시장도 얼어 붙게했다. 전쟁 중에는 맥주의 생산이 금지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대일본맥주는 삿포로 맥주와 아사히 맥주로 분할된다. 삿포로 맥주는 에비스 맥주와 함께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삿포로 맥주는 예전의 명성만은 못한 것 같다. 마이니치 신문 2017년 1월 16일 기사를 보면, 삿포로 맥주는 점유율 12%로 아사히 맥주(39%), 기린 맥주(32.4%), 산토리(15.7%)에 이어 일본 내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오리온 맥주(0.9%)가 오키나와의 지역 맥주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꼴지인 셈이다. 이 글은 삿포로 맥주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보기 위해 연대기로 작성한 글이다.  


1876년, 홋카이도 개발 위원회는 일본 최초의 맥주 회사인 '삿포로 맥주(Sapporo Breweries Ltd)'를 설립한다. 당시의 이름은 '홋카이도 개척사 맥주 양주소'였다. 이 회사는 스스로 보리 및 홉 품종 개량을 실시하여 맥주에 적합한 품종을 개발하였고, 세계 각지에서 맥주 효모를 수집하기도 하였다. 또한 17세의 나이에 일본을 떠나 독일의 맥주 양조법을 몰래 배워 온 '나카가와 세이베'를 일본 최초의 맥주 양조 기사로 발탁한다.


1877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인 삿포로 라거를 출시한다. 맥주 라벨에 그려진 붉은 별은 삿포로 맥주의 뿌리이기도 한 홋카이도 개척사의 깃발인 북진 깃발의 '북극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애칭으로 '아카'라고 불렸다.

1878년 삿포로 라벨


1886년, 민영화가 된다.


1887년, 도쿄 긴자에 '일본 맥주 양조 회사(Japan Beer Brewery Company)'가 설립된다.


1890년, 에비스 맥주를 생산한다. 에비스 맥주는 일본에서 만들어지긴 했지만 원료도 시설도 기술자도 본고장 독일에서 그대로 이전시켜 만든 정통 독일식 맥주였다. 1894년에 청일 전쟁이 발발한 계기로 맥주의 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에비스 맥주의 인기도 올라갔다. 당시 에비스 맥주는 가짜 맥주가 나돌 정도였다. 에비스 맥주의 인기와 함께 '일본 맥주'는 일본에서 제일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맥주 회사로 성장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삿포로 맥주와 일본 맥주는 경쟁관계였다.

발매 당시의 에비스 라벨


1899년, 일본 최초의 맥주 바인 '에비스 맥주 비어 홀'이 개업한다. 이 맥주 바는 공장 직송의 생맥주를 맛보고 에비스 맥주를 선전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는데, 도쿄 사람들에게 새로운 호기심을 자극하여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옛날 일본 긴자 거리, 오른쪽 건물이 에비스 맥주 비어


1900년, 에비스 맥주는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4년 후에는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다.

에비스 맥주 달력 겸용 포스터


1906년, 일본 맥주 역사에서 대단한 변화가 일어난다. 바로 경쟁 관계였던 삿포로 맥주와 에비스 맥주, 그리고 오사카 맥주(현 아사히 맥주)를 더해 하나의 회사 '대일본맥주'를 설립한 것이다. 이 합병을 주도한 인물은 에비스 맥주 비어 홀 개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던 '마코시 쿄헤이'였다. '일본 맥주의 왕'이라 불리는 쿄헤이는 이벤트와 광고, 입소문에 의한 홍보 등 프로모션을 포함한 판매 전략의 귀재였다. 쿄헤이는 세 개의 회사를 합쳐 점유율 70% 정도로 만들고, 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독과점 형태를 이어갔다.


1943년, 2차 세계 대전 중인 일본은 모든 맥주의 생산을 폐지하기에 이른다. 삿포로 맥주라는 브랜드는 이때 잠시 소멸된다.


1949년 9월, 독과점 방지법에 의해 대일본맥주는 '일본 맥주'와 '아사히 맥주' 두 개의 회사로 분할된다. 일본 맥주는 삿포로와 에비스의 상표를 상속받게 되었지만 삿포로 맥주 브랜드를 사용하지는 못하고 닛폰 맥주라는 브랜드를 사용하였다.


1956년, 소비자의 요청에 의해 홋카이도에서 삿포로 맥주를 부활시킨다.


1964년, 1월에 회사 이름도 '삿포로 맥주 주식회사'로 변경한다.

1964 년, 삿포로 맥주 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


1971년 에비스 맥주가 부활하였다. 일본에서 모든 맥주 생산이 중단된 1943년 이후 28년 만의 일이었다.

1971년에 부활한 에비스 맥주


1977년, '삿포로 びん生(삿포로 빙나마)'가 발매된다. 이 맥주는 열처리를 하지 않고 생맥주를 병에 채워 넣는 기술로 개발된 병맥주였다. 이전까지는 열처리 맥주가 주역이었는데 일본 최초의 맥주 바에서 생맥주를 취급하던 기술을 병맥주로 만든 것이다. 이 병 맥주는 '블랙 라벨'이라는 애칭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1994년 9월, 본사를 긴자에서 에비스로 이전하고 그해 10월 에비스 공장 터에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를 오픈한다.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2003년, 삿포로 맥주를 바탕으로 지주회사인 삿포로 홀딩스를 설립하고, 삿포로 맥주와 삿포로 음료, 삿포로 라이온 등을 자회사로 둔다.


2006년, 일본 내 주류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자 캐나다의 '슬리만 사'를 인수하면서 북미 시장을 개척한다.


홋카이도. 이곳에는 대대로 수렵과 어업으로 살던 아이누족이 있었다. 그들은 일본인에게 농업 생활을 강요받았다. 농경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은 개간을 잘하지 못하였다. 개간을 해도 관리 능력이 없던 그들은 토지를 빼앗기고 터전을 잃었다. 아이누 족은 아이누어를 말하는 것도 안되고 귀걸이나 문신 등의 다양한 습관과 전통의식도 금지되었다. 아이누 족에 대한 가혹한 말살 정책이나 동화 정책으로 홋카이도는 점점 일본화되어 갔다. 삿포로 맥주는 홋카이도를 개발하고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개발 위원회에서 설립한 맥주 회사이다. 삿포로 연표를 뒤진다고 해서 아이누 족을 말살한 역사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지난 글에서 썼듯이 한국 최초의 수입 맥주는 삿포로였다. 한국도 홋카이도와 같은 식민의 역사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개의 식민의 역사 속에 삿포로 맥주가 있었다.



본문 사진 출처 : 삿포로 홈페이지, 에비스 홈페이지

제목 사진 출처 : http://www.willdrinkfortravel.com/posts/sapporo-japanese-b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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