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크래프트 브루워리의 역사
일본 4대 양조장을 아사히, 기린, 산토리, 삿포로로 생각하고 이 글을 읽으려고 했다면 다소 실망할지 모르겠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마이크로 브루워리, 즉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의 4대 양조장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일단 그전에 일본의 크래프트 맥주에 대해 잠깐 짚고 가자.
일본에서 지비루(地ビール)라 부르는 크래프트 맥주의 시작은 1994년으로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해 일본 주세법이 개정되어 크래프트 맥주의 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맥주 양조장을 만들려면 한 해 최소 2,000 킬로리터 이상 생산해야 했으나 1994년에 긴급 경제 정책으로 개정된 주세법의 의해 그 수치가 60 킬로리터로 줄어들었다. 2,000 킬로리터 이상 맥주를 제조하는 것은 사실상 대기업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세법 개정 이후 소규모 양조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한 때 300개가 넘었으나 저렴한 발포주가 등장하면서 비교적 값이 있는 크래프트 맥주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제는 크래프트 브루워리의 수가 예전보다 줄어들어 2018년도 기준으로 약 150~160 여개의 브루워리가 유지되고 있다.
크래프트 맥주의 성지 미국에서는 크래프트 브루워리를 소규모이고 독립적이고 전통에 따라(small, independent and traditional) 만들어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연간 생산량이 600만 배럴(약 70만 킬로리터) 이하이고, 외부 자본이 25% 이상 참여할 수 없으며, 전통적인 맥주 제조 방식에 혁신을 담아야 크래프트 맥주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럼 일본에서는 크래프트 브루워리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 까? 일본 브루워리 협회(JBA)의 크래프트 맥주의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94년 이전부터 있었던 대자본의 대량 생산 맥주와는 무관하게 양조할 것.
1회 양조의 양이 20킬로리터 이하의 소규모로 양조할 것.
전통적인 양조법과 지역의 특산물을 재료로 하여 개성 넘치는 맥주를 양조할 것.
1994년 이전부터 있었던 대자본은 아마 아사히, 기린, 산토리, 삿포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자본이 참여할 수 없고 전통을 중시하되 혁신을 담아야 한다는 점은 미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한 철학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최근 기린이 만든 스프링 밸리 브루워리나 산토리의 크래프트 맥주는 과연 크래프트 브루워리로 봐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본에서 매년 4월 23일은 '크래프트 맥주의 날'이다. 1994년 개정된 주세법 이후 크래프트 맥주의 보급과 육성을 위해 생겨난 일본 지역 맥주 협회(JCBA, Japan Craft Beer Association)가 1999년에 제정하였다. 원래 이 날짜는 바이에른 공화국의 빌헤름 4세가 '맥주를 제조할 때에는 물, 홉, 보리, 효모 이외에는 어떤 재료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맥주순수령을 반포한 1516년의 4월 23일과 같은 날이다. 일본 사단 법인 기념일 협회는 2013년부터 크래프트 맥주의 날을 공식으로 인정하였다.
'The Complete Beer Course(맥주의 모든 것)'을 쓴 저자 죠슈아 M 번스타인(Joshua M. Bernstein)는 자신의 책에서 꼭 알아둬야 할 일본 4대 양조장으로 (어떤 기준에 의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지자쿠라 하이츠 브루워리, 이세 카도야 마이크로브루워리, 키우치 브루어리, 요호 양조회사를 꼽고 있다. 개인적으로 COEDO가 빠진 것이 매우 안타까워 이세 카도야 마이크로브루워리를 빼고 COEDO를 넣은 일본 4대 양조장에 대해 역사와 대표 맥주를 위주로 알아 본다.
영문명 : Hujizakura Height Brewery
설립년도 : 1997년
위치 : 야마나시 현
대표 맥주 : 저먼 필스너, 바이젠, 라우흐비어, 둔켈
과거 유럽에서는 오염된 물을 직접 마실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맥주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오염된 물속에 있는 나쁜 미생물을 끓여서 없애 버리고 좋은 향(홉)을 넣어 마시기 편하게 한 다음 좋은 미생물이 연금술을 부려 만든(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탄생) 발효 음료가 맥주인 것이다. 그런데 맥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이 원래부터 아주 깨끗한 물이었다면 그 맛을 어떨까?
후지자쿠라고우겐(이하 후지자쿠라)은 우리말로 풀어쓰면 '후지 벚꽃 고원'이다(일본 크래프트 브루워리 중에는 고원이 들어간 이름이 꽤 있다). 양조장이 후지산의 북쪽 기슭 해발 1,000m 정도에 위치해 있다. 후지산의 벚꽃이 만발한 고원 지역의 양조장이라니 꽤나 운치가 있어 보인다. 후지자쿠라는 1997년에 후지산이 있는 야마나시현에 설립되었다. 독일에서 직접 양조 기술을 배워 온 브루마스터들이 맥주를 만드는데 후지산의 좋은 연수를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이 브루워리의 대표 맥주는 필스너, 바이젠, 라우흐, 슈바르츠비어 등 모두 독일의 전통 방식에 따라 양조한 맥주들이다. 특히 후지자쿠라의 라우흐비어는 독일에서 라우흐비어로 유명한 반베르크의 스타일이다. 너도밤 나무로 훈제 맛을 내었는데 2012년 일본의 월드 비어 컵과 월드 비어 어워드를 두 번이나 수상한 명작이다. 참고로, 도쿄에서 후지자쿠라의 맥주를 맛보려면 롯폰기로 가면 된다. 롯폰기에는 'Beer Bar Fujizakura Roppongi'라는 직영점이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도 가능하다.
도쿄에서 후지자쿠라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
Beer Bar Fujizakura Roppongi
일본 〒106-0032 Tōkyō-to, Minato-ku, Roppongi, 4 Chome487 嶋田ビル 地下1階
+81 3-5411-3333
https://goo.gl/maps/8Gjiapq3vA22
후지자쿠라 펍 예약 https://www.beerbar-fujizakura.jp
영문명 : YOHO Brewery
설립년도 : 1996년
위치 : 나가노 현
대표 맥주 : 페일 에일, IPA, 위트비어, 포터
일본의 크래프트 맥주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맥주를 꼽으라면 아마 요나 요나 에일이 아닐까 싶다. 요나 요나 에일은 일본의 마트나 돈키호테 등에서 캔맥주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요나 요나 에일은 일본에서 가장 먼저 캔으로 출시한 크래프트 맥주로도 유명하다. 요나 요나 에일을 만든 얏호브루잉은 1996년에 나가노 현에 설립된 역사와 명망을 모두 갖춘 브루워리이다. 얏호브루잉의 맥주는 재미있는 레이블과 뛰어난 맥주 맛으로 유명한데, '매일 밤'이라는 뜻을 가진 페일 에일 요나 요나 에일, '온몸이 파란 도깨비'라는 뜻을 가진 IPA 아오오니(青鬼), '수요일의 고양이'라는 뜻을 가진 밀맥주 쓰이요비노네코, 그리고 포터 맥주인 도쿄 블랙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의 대표 크래프트의 명성만큼이나 도쿄에서 얏호브루잉의 맥주를 마실 곳도 많다. 특히 요나 요나 비어 웍스라는 얏호브루잉 맥주 직영점이 도쿄에만 여덟 곳이 있다. 모두 모던한 분위기와 좋은 음식이 있어 인기가 좋다. 아니면 주변 마트나 돈키호테에서 캔맥주를 즐겨도 좋을 듯하다.
도쿄에서 요나 요나 에일을 마실 수 있는 펍
요나요나 비어웍스 신토나도리점
일본 〒105-0004 Tōkyō-to, Minato-ku, Shinbashi, 4 Chome11 新虎通りCORE 2階
+81 3-6402-4711
https://goo.gl/maps/Jz8vQNr9EAk
요나 요나 비어 웍스 신토라도리점 예약 http://yonayonabeerworks.com/shintora/
영문명 : Kiuchi Brewery
설립년도 : 1823년 (1996년)
위치 : 이바라키 현
대표 맥주 : 앰버 에일, 바이젠, 페일 에일, 위트비어, 라거 , 래드 라이스 에일
엄밀히 따지자면 히타치노 네스트 맥주는 맥주 이름이고, 이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 이름이 키우치 브루워리이다. 네스트라는 의미는 맥주가 태어난 마을의 이름에 巣(새집 소)가 들어가는데 'NEST'라는 영어로 브랜드명을 지은 것이다. 키우치 브루워리는 원래 1823년부터 사케를 만든 유서 깊은 양조장이었는데 1994년부터 맥주 양조를 연구하기 시작하여 1996년도에 처음으로 맥주를 양조하기 시작하였다. 수세기 동안 사케를 만들어 왔지만 맥주 양조 기술은 부족하여 초기에는 매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캐나다에서 맥주 양조 시설을 제조하여 판매하는 솔루션을 들여와 일본에서 매뉴얼대로 조립하고 수년간 맥주 양조를 연구하여 지금과 같은 좋으 맥주를 만들게 되었다. 히타치노 네스트 맥주는 일명 부엉이 맥주로 유명한데 부엉이 심벌은 2008년도부터 적용되었다. 히타치노 네스트 맥주는 앰버 에일, 페일 에일, 위트 비어 등 크래프트 맥주 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맥주를 만드는데, 특이할 만한 맥주는 고대로부터 내려로는 홍미(紅米)를 사용한 라이스 레드 에일이다. 프루티한 향과 아로마를 가진 핑크색 라거이다.
도쿄에는 히타치노 네스트 맥주 전문점이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도쿄역 동쪽 출구 2층에 있고 하나는 이키하바라 역 근처에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키하바라 역 근처에 있는 펍을 추천한다. 도쿄역의 펍은 사람도 많을 뿐더러 매장이 복도처럼 좁고 가늘어서 매우 붐빈다. 아키하바라에서 쇼핑을 한다면 힘든 하루를 좋은 맥주와 함께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도쿄에서 히타치노 네스트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
Hitachino Brewing Lab
マーチエキュート神田万世橋 1f, 1 Chome-254 Kanda Sudachō, Chiyoda-ku, Tōkyō-to 101-0041 일본
+81 3-3254-3434
https://goo.gl/maps/5Z7JjdNgnF72
영문명 : COEDO Brewery
설립년도 : 1997년
위치 : 사이타마 현
대표 맥주 : IPA, 필스너, 헤페바이젠, 고구마 앰버 에일
코에도는 1997년에 사이타마 현에서 시작된 크래프트 브루워리이다. 코에도를 만든 가문은 1970년대부터 이 지역에 유기농 농장을 가지고 녹색 거름으로 만든 건강한 보리를 재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 보리를 이용해서 맥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맥주 양조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생산된 보리만으로는 원하는 맥아를 얻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현지에서 가장 인기 있고 잘 알려진 농산물를 활용하여 맥주를 양조할 수 없을까 생각하였는데, 그 농산물이 바로 붉은색 고구마였다. 코에도는 세계 최초로 고구마를 이용한 맥주 양조법을 개발하였고, 그 맥주는 'COEDO 베니아카(Beniaka)'라는 이름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코에도의 병맥주는 형형색색의 레이블을 가지고 있는데, 파란색의 필스너, 흰색의 헤페바이젠(밀맥주), 검은색의 블랙 라거, 녹색의 페일 에일 등 총 6종이 있다. 베니아카는 붉은색 레이블이다.
코에도의 맥주는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형 마트나 세계맥주 할인점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도쿄에서 코에도 직영점은 보지 못했지만 크래프트 전문 펍이나 일본의 마트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을 여행한다면 한번 쯤은 편의점 맥주보다는 크래프트 맥주를 드셔 보라고 권장한다. 일본의 편의점은 크래프트 맥주를 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