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처음으로 웨스트 코스트 IPA를 마셨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2010년대 초반이었을 겁니다. 샌프란시스코 유니온스퀘어 근처의 펍이었는데, 농구 시즌이었는지 펍에서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경기가 중계 중이었습니다. 당시 이 팀을 잘 몰랐는데 펍의 사람들이 어느 팀을 응원하나 봤더니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응원하는 겁니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연고팀이라 짐작하고 같이 응원해 주었습니다. 환호할 때 같이 환호하고, 탄식할 때 같이 탄식하고 났더니 마지막에는 정말 제 연고의 농구팀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 때 그 펍에서 많은 맥주를 마셨습니다. 다른 펍도 그런지 모르겠지만(매일밤 이 펍만 갔으니까요), 이 펍은 맥주 한잔을 시킬 때마다 1달러의 서빙 팁을 줘야합니다. 한 병을 시켜도 1달러, 열 병을 시켜도 1달러. 처음엔 제 속도대로 맥주를 마셨고 서빙팁도 그러려니 했지만 나중에는 서빙팁도 꽤 나가서, 다 마신 후에도 기다렸다가 선배가 주문하는 서빙 팁에 올라타곤 했습니다.
맨날 며칠을 한국에서 익숙했던 라거만 마셨습니다. 주로 버드와이저나 그 비슷한 맥주였었는데, 당시에는 맥주라곤 익숙한 맥주만 마시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맥주 외도를 한 것이 바로 샌프란시스코 지역 양조장의 IPA였습니다(브랜드 네임까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때 제가 IPA를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성지의 IPA를 마셨다면 감회가 남달랐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지금도 기회만 되면 미서부로 크래프트 맥주 성지 순례를 하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그 때의 인상이 강렬해서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는 걸 보면, 그건 의도치 않은 낯선 만남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맥주책 저자로 살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라구니타스 IPA를 마셨습니다. 내친 김에 웨스트 코스트 IPA에 대해 짧고 굵게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아니었지만 1965년에 프리츠 매이택이라는 인물이 지역의 브루어리를 인수해 앵커 브루잉을 설립합니다. 메이택은 아메리칸 홉을 사용하여 영국 페일 에일을 만들 생각을 했는데, 이때 영국식 홉 투척기법인 드라이 호핑을 도입해 캐스케이드 홉을 사용해 봅니다. 당시에는 미국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 영국식 맥주 공정에 미국의 재료를 사용한 것이겠죠. 이것이 IPA는 아니었지만 웨스트 코스트 IPA의 도화선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1975년에 생산된 리버티 에일입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습니다. 1979년에 설립된 시에라네바다 브루잉은 야키마 밸리에서 수확한 홉을 바로 사용해 페일 에일을 만듭니다(1980년). 미국식 페일 에일의 전설,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의 시작이죠. 이때 처음으로 대중들이 호피한 맥주를 받아 들이기 시작합니다. 아메리칸 홉을 사용해서 만든 맥주가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죠. .
1980년대에서 1988년은 미국 크래프트 맥주의 역사에서 특별한 해입니다. 1988년 56개의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대거 생겨나면서, ‘1988세대’라는 특별한 용어도 생겨납니다. 이때의 브루어리는 대기업 맥주에 저항하면서 양조가협회(BA)를 이끌어 내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대기업에 인수되었지만 구스 아일랜드가 대표적인 1988세대 크래프트 브루어리였습니다. 웨스트 코스트에서는 올드라스푸틴 임페리얼 스타우트로 유명한 노스 코스트, 와인앤모어에서 행사 자주 하는 데슈츠, 그리고 로그 에일 등이 생겨났습니다.
1990년대에는 제법 많은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생겨납니다(1994년에 537개의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는 완전히 자리 잡았고, 지역성을 띠며 이웃 브루어리와 교류를 하게 됩니다. 이 때 웨스트 코스트에는 인디카 IPA로 유명한 로스트 코스트(1990)와 더블 IPA로 유명한 러시안 리버(1997) 등이 생겨납니다. 샌디에이고는 특히 홉 레이싱이 심했습니다. 에일스미스(1995), 스톤(1996), 발라스트 포인트(1996) 등이 이때 생겨난 브루어리입니다. 이들은 쓴맛을 얼마나 더 낼 수 있는 지(7~80 IBU는 기본), 홉을 얼마나 더 넣을 수 있는 지(더블, 트리플 IPA까지 등장) 등을 가지고 홉 군비 경쟁을 했습니다. 한편 시에라 네바다 브루잉은 맥주에 홉을 효과적으로 입히기 위해 ‘톨피도’라는 드라이 호핑 장비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홉 군비 경쟁에 1994년에 생산된 블라인드 피그의 더블 IPA를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원래는 플라스틱 발효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쾌한 냄새를 줄이기 위해 홉을 대량으로 넣어 120 IBU의 에일을 만든 것인데, 이것이 훗날 러시안리버의 '플리니 디 영거'의 모태가 됩니다.
그럼 라구니타스는 웨스트 코스트 IPA의 역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까요? 라구니타스는 1993년에 설립되었습니다. 라구니타스의 설립자 토니 매기는 1992년 겨울 크리스마스에 홈브루잉 키트를 선물받아 처음으로 양조를 해봤다고 합니다. 1년 만에 브루어리 설립까지 대단합니다. 홈브루잉을 하시는 분들에게 희망을 주는 인물이네요. 라구니타스 IPA 는 1995년에 처음으로 생산되었는데, 홉 경쟁이 한창 치열했던 시기입니다. 참고로 토니 매기는 메이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라구니타스는 미서부 지역 뿐만 아니라 시카고에 제 2의 양조장을 설립했습니다. 지역을 벗어나 전국적인 양조장이 되었는데, 2017년에 하이네켄에 완전히 인수되면서 이제는 글로벌 기업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40년간의 웨스트 코스트 IPA를 정의할 수 있는 10가지의 맥주'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앵커 리버티 에일,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 블라인드 피그 에일, 스톤 IPA, 플리니 디 엘더 등이 있습니다. 물론 라구니타스 IPA도요.
라구니타스 브루잉은 이제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아닙니다. 이미 대기업에 인수된 구스 아일랜드나 발라스트 포인트처럼 앞으로 라구니타스는 접근성은 높아질 것이고 좀더 대중성을 띄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모기업의 글로벌 유통망으로 인해 한국의 편의점에서 3캔 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