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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준 Nov 17. 2022

37. 이식은 또 다른 시작

 조혈모세포이식은 치료의 끝이자 시작이었다. 이식한 지 한 달이 넘어가자 몸에 이상한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갈증현상이 있어서 물을 안마시면 목이 자주 말랐다. 자고 일어나면 입이 말라있었고, 아프기 전보다 물을 더 자주 마셨다. 이식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이식 초기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입안이 건조해서 충치가 남들보다 잘 생기는 편이다. 두 번째 반응은 점상출혈이었다. 숙주반응의 일종인데 숙주반응이란 유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장기나 혈액 등을 이식 받을 때 공여자의 면역세포가 수용자의 몸을 공격하는 반응을 말한다. 종류나 정도가 다를 수는 있지만 조혈모세포를 이식 받은 환자에게 일반적으로 일어났다. 나의 경우에는 좁쌀 크기의 붉은 반점이 배와 사타구니 부위에 생겼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좀 간지러웠고, 붉은색 반점이라 징그러웠다.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해보니 혈소판 수치가 2,000이 나왔다. 정상수치가 대략 13,000 이상인데 2,000이면 위험한 수치였다. 검사실에 들어가 골수검사를 받았다. 이식 후에 골수검사만은 제발 받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받게 되었다. 다행히 D병원에서의 골수검사는 별로 아프지 않았고 무난하게 잘 마쳤다. 하지만 골수검사가 문제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재발의 가능성이었다. 만에 하나 재발한다면 항암치료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했다. 끝판왕만 남겨둔 게임이 갑자기 꺼지면 이런 기분일까? 한번은 몰라도 두 번은 버틸 자신이 없었다.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나와 우리 가족은 골수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것 같았다. 얼마 뒤 골수검사 결과가 나왔고, 다행히 재발은 아니었다. 조혈모세포는 잘 만들어지는데 자기혈소판을 공격하는 현상이었다.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혈소판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매일 병원에 가서 혈소판을 수혈 받았고, 스테로이드 주사도 맞았다. 그렇게 첫 번째 숙주반응이 무섭게 지나갔다.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았다고 해도 재발과 숙주반응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 환자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최소 5년은 지나야 그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것이었다. 그 기간 동안 최대한 건강에 신경쓰고 조심해야했다.  


 하지만 그 다음 발생한 숙주반응도 피할 수 없었다. 이식한 지 9개월 정도 지나자 대상포진을 억제하는 조비락스라는 약을 끊었는데, 그로부터 1주일 뒤에 인중에 작은 물집이 생겼다. 단순한 물집인줄 알았는데 그 다음날이 되자 엄청난 통증이 생겼다. 손으로 인중 부분을 만지면, 누군가가 입술을 가위로 자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었다. 과장을 좀 하면 골수검사만큼이나 아팠다. 병원에 빨리 가서 약을 처방 받았고, 고통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숙주반응은 불청객 같은 존재여서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내게 찾아올지 몰라 더 무서웠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내 몸에 나타난 숙주반응이 별일 아닌 것처럼 덤덤하게 진료를 봐주셔서 이제 이식까지 다 해서 관심이 작아지셨나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숙주반응은 양호하게 넘어간 편이었다. 심하게 오는 분들은 시력이 안 좋아지거나, 피부가 상하는 분들도 있었다.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내리는 한 편 이 정도 수준에서 넘어가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 글에 담지 못한 이야기와 정보는 인스타그램에 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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