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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준 Dec 02. 2022

39. 환자가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방법(2)

 구민회관에서 강의를 들으며 행동반경을 조금 넓혔고, 난이도가 조금 더 높은 활동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봉사활동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집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모 중학교에 방과 후 학습 선생님으로 봉사활동을 지원했다. 나는 대학교에서 밴드를 하며 기타와 이런 저런 악기를 다룰 줄 알아서, 그 중학교의 밴드부를 맡게 되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착하고 순수했지만, 담배를 피거나 껄렁껄렁한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이 안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고, 음악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성취감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일 년 동안 매주 아이들과 합주 연습을 하고,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이런저런 활동도 했다. 연습이 끝난 후에는 사비로 떡볶이 같은 분식도 사주었다. 

 그러던 중 중학교 축제가 열리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좀 더 악기를 잘 알려주고 싶어서, 대학교 밴드부 친구들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요청했다. 친구들은 먼 거리임에도 중학교까지 한 걸음에 달려와주었고, 아이들에게 성심성의껏 자기의 연주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한 달 동안 맹연습을 한 결과, 아이들은 축제에서 멋진 연주를 선보이며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환호를 받았다. 아이들의 신난 모습을 보며 가슴이 뿌듯해졌다. 일 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언덕길에 있는 학교까지 가서 아이들을 가르친 보람이 있었다. 아이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고, 사회 활동을 하기 위한 체력과 스트레스에 대한 인내를 기를 수 있었다. 

* * *

 부상을 입은 야구선수가 수술 후 조급한 마음으로 복귀했다가 재발한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환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식을 받았지만, 아직 완치는 아니었다. 빨리 다른 친구들처럼 복학도 하고 취업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아팠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사실 인정하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왜 이런 병에 걸려서 고생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절망과 괴로움은 이식을 하고도 몇 년 동안 악령처럼 나를 괴롭혔다. 힐링은 말처럼 쉽고 달콤하지 않았다. 그것은 고통의 시간이며 자신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힘든 병을 앓는 환자들은 신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고통을 함께 겪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냥 어쩔 수 없이 생긴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쁘게 살다보면 시간 속에 묻혀지고 잊혀지는 것 같다. 그래도 많이 힘들다면 심리치료를 받거나 관련 영상과 책을 보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 *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천천히 집 근처의 활동에서 시작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사회 생활로 범위를 넓혔다. 나의 말랐던 허벅지에 버스와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수준의 작은 근육이 붙었고, 두 시간 넘게 의자에 앉아 학교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허리도 강해졌다. 2010년은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공백기로 보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복학이라는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의미 있는 한 해였다. 


* 글에 담지 못한 이야기와 정보는 인스타그램에 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instagram.com/ihave.to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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