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에게 가장 추운 계절은 공채시즌이 끝난 겨울이다. 2013년 하반기 공채 시즌이 끝나고 시린 겨울이 왔다. 취업은 정말 어려운 것이었다. 한 해 동안 서류전형과 면접에서 모두 떨어져 갈 곳도 없었고, 자존감은 바닥을 기었다. 심리학 수업에서 들었던 ‘학습된 무기력’이 떠올랐다. 개를 가운데 담이 있는 상자에 넣고 바닥에 전류를 흘려보내면 개는 전기 충격을 피하기 위해 담을 넘어 전류가 흐르지 않는 반대쪽 바닥으로 뛰어간다. 하지만 양 바닥에 전류를 흘려보내면 개가 담을 넘어도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없는 것이 경험이 되어 나중에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게 개는 무기력을 학습하게 된다. 상자 속의 개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취업한 후배로부터 집에서 쉬지 말고 아르바이트라도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통해 시장의 과일 가게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사장은 나보다 몇 살 많은 형이었는데, 면접을 보고는 바로 다음 날부터 일하자고 말했다. 시장 한가운데 있었던 과일가게는 작았지만 장사는 잘되는 편이었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퇴근길에 들러 과일을 한 두 봉지씩 사갔다. 생각해보니 기업에 이력서를 넣을 때 영업직무로 주로 지원을 했는데, 정작 누군가에게 물건을 팔아본 적이 없었다. 면접관들은 나의 그런 모습을 간파했던 것일까? 처음 본 사람에게 말을 걸어서 물건을 파는 것은 흥미로웠다. 물론 큰 회사의 영업 직무와 작은 과일 가게에서의 영업은 차이가 있겠지만, 무언가를 파는 본질은 같았다. 배우고 경험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니 과일가게에서의 아르바이트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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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한 일은 통신사의 모니터링 아르바이트였다. 면접에 정장을 입고 갔더니, 그렇게 입고 온 지원자가 나밖에 없었다. 며칠 뒤 편한 복장으로 출근하라는 합격문자를 받았다. 높은 빌딩에 위치한 통신사는 대학생이 선망하는 대기업이었다. 지금은 알바생이지만 나중에 꼭 입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출근했다. 아르바이트 업무는 서울의 통신사 대리점을 모니터링하는 일이었다. 손님인 척 대리점을 방문하여 직원들의 서비스를 평가했는데, 최신 휴대폰의 장점은 무엇인지 할인이나 부가서비스에 대한 설명은 충분한지 손님 응대에 불친절함은 없는지 파악하여 회사에서 준 평가지에 체크를 했다. 여러 동네를 돌아다니며 대리점을 방문했고, 확실히 잘하는 대리점과 못하는 대리점은 차이가 났다. 매장에 들어갈 때부터 나갈 때까지 시종일관 친절로 대하는 직원이 있고, 그 반대인 직원도 있었다. 눈치가 빠른 대리점은 내가 블라인드 모니터링 요원이라는 것을 알아채기도 했다. 일하는 내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걸어다녀서 다리가 아팠지만, 도보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서울의 안 가본 동네를 돌아다니고, 사람들의 태도와 모습을 보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취업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력서에 알바 경력 한 줄이라도 보태어서, 투병했던 2년의 공백기를 조금이라도 채워야만했다. 인턴활동이나 해외연수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그래야 면접에서 만날 옆의 지원자의 화려한 스펙에 조금이라도 경쟁이 되지 않을까. 대부분의 취업준비생이 그렇듯이, 취업을 위한 몸부림은 그만큼 처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