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꼰 연재 5화
2021년 화천에서 보낸 우리 부부의 시골생활 1막이 내렸다. 그리고 지금은 남은 3학년을 마치기 위해 전주에 내려왔다. 2년 만에 학교에 돌아오니 20대 후반 늦깎이 두 대학생의 마음에 새로운 바람이 부는 듯 하다. 신혼부부가 따로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이 조금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는 이마저도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매끼 맛있게 나오는 급식과 좋은 환경에서 수업을 듣는 생활에 참 감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기숙사 생활의 묘미 중 하나로, 기숙사 방 창문 너머로 남편에게 자기 전 손을 흔들어 인사 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우리는 화천에서 화장실 갈 때 빼고는 하루 종일 붙어 있었기 때문에 각자 시간을 보내는 이 시간들이 소중하고 애틋하다.
우리 학교는 교육과정 상 2학년에는 실습을 가기 때문에 3학년 첫 수업에서는 2학년 실습 경험과 졸업 후 영농 계획에 대해서 발표를 하게 된다. 중간에 휴학을 한 터라 벌써 오래된 기억 같지만 발표를 준비하면서 실습을 겪기 전인 1학년 때의 거칠고 어리숙하지만 푸름이 넘치는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 시절의 나의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과 우리가 꿈꾸는 농장에 무작정 찾아갔던 일, 드넓은 고랭지 밭에서의 함께 미래를 약속했던 순간들이 마음 한 켠에 있다. 비록 지금은 현실을 잘 알아버려서 우리가 돼지를 키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지만 오히려 이 학교에 처음 지원했을 때의 마음, 남편과 내가 같은 꿈으로 하나가 되었던 그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음에 감사하게 됐다.
사실 우리 학교는 기반이 있는 영농 2세들을 위해 만들어진 학교이고 그 비율이 월등히 많다. 물론 나와 남편처럼 기반이 없는 창업농들도 있지만 그 안에서 생태농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내가 졸업 후 영농 계획을 발표할 때면 별나라 외계인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과 친구들이 나를 열린 마음으로 존중하며 들어주니 과제이긴 해도 발표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최선으로 준비한다. 다른 친구들의 발표를 들어보니 내가 속한 양돈학과의 친구들은 대게 자신의 농장과 비슷한 환경이거나 더 큰 규모의 양돈장에 실습을 다녀왔다. 그래서인지 나의 발표 사례가 이색적이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양돈장의 경우에는 흰돼지를 컨테이너에서 키우는 시설로 운영된다. 하지만 내가 다녀온 실습장은 흑돼지를 톱밥돈사에서 보다 자유롭게 키우는 곳이었다. 그 곳은 전라남도 곡성군에 있는 ‘돌실한약먹인흑돼지농장’이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젊은 시절 한약방에서 일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적은 봉급으로 생활하던 중 아이가 태어났고 돼지 3마리를 얻어다 키우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 돼지들을 정성으로 키우고자 한약방에서 쓰고 남은 약재들을 달여 돼지에게 먹였는데 그 시작으로 말미암아 말 그대로 지금의 한약 먹인 흑돼지 농장을 만드신 것이다. 물론 다른 농장주님들도 돼지들을 애정으로 키우시겠지만 우리 선생님은 조금 더 특별하다. 가업을 이을 아드님에게나 실습생인 나에게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돼지를 죽이는 것은 쉬우나 살리는 것은 어렵다. 어떤 상황에서도 돼지를 끝까지 살리려고 애써야 한다.”
돼지가 우리에게 생명을 내어주는 대신 우리는 돼지에게 노동력을 바쳐 키운다. 물론 사람이 질 좋은 고기를 얻기 위해 건강하게 키우는 이유도 있지만 살아 있는 동안 돼지가 만족스러운 삶을 살도록 보살피는 법을 배웠다. 다른 농장에 비해서 돼지 사육장의 밀집도가 낮고 톱밥이 있으니 돼지들이 본성대로 땅을 파며 놀 수 있다. 운동장이 있어서 스톨에 갇혔던 어미 돼지들은 날이 좋을 때 밖에 나와 산책을 한다. 여름이면 나는 주로 수레에 낫을 싣고 풀을 베는 것이 일이었다. 농장 구석구석 맛있는 풀들을 베어다가 돼지들에게 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선생님과 산에 가서 황토를 캐오고 광양 어느 바다에서 바닷물을 길러와 온갖 가지 재료로 생균제를 만들었다. 생균제는 돼지 사료에 섞어서 먹이는 천연 유산균 같은 것이다. 직접 주운 매실로 만든 청도 들어가는데 즙을 짜고 남은 열매들을 새끼돼지들에게 간식으로 주면 자돈사 전체가 ‘오독오독’ 씨앗 씹는 소리로 가득하다.
양돈장에서 배운 것 중 가장 기억나는 하나만 꼽으라면 분만사에서 새끼 받는 일을 말하고 싶다. 분만 시간이 다가오면 어미 돼지가 예민해 지는데 옆에 꼭 붙어서 안정을 시킨 뒤 젖 마사지를 해준다. 그러면 젖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첫 새끼를 낳는다. 깨끗하게 말린 수건으로 새끼를 닦아 숨통을 틔워주고 탯줄을 자르고 젖을 먹인다. 보통 흑돼지는 12마리까지 낳는데 10마리 이상의 어미가 분만을 하니 새벽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분만이 이어져 돼지들도 사람도 고된 하루가 된다. 규모가 큰 어느 농장에서는 새끼돼지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500g이 안되는 체중미달이 태어나면 그냥 생명을 끊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농장은 미숙돈까지 젖병으로 키우고 아파서 가망이 없어 보이는 돼지들도 따로 방을 주어 평안히 가게 했다.
농장 위아래로는 천 평 규모의 밭이 있었는데 돼지 분뇨를 발효시켜 만든 질 좋은 퇴비로 농사를 지으셨다. 감자를 캐다 말고 분만을 받으러 갈 때도 있었고 돼지 똥을 치우다 고추를 따러 갈 때도 있었다. 완벽한 그림은 아니었지만 내가 꿈꾸는, 생명이 존중받는 경축순환 농업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실습을 마치고 짐을 싸 곡성역을 떠날 때에는 ‘시골에서 살아갈 용기’를 얻은 감동이 일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3학년이 되어 발표를 하고 있으니 내 안에 차분한 용기를 확인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살았던 화천에서 어쩌면 우리의 꿈대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울함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여전히 남편과 나의 마음에 경축순환 농장에 대한 꿈이 살아 있음에 감사하다. 어쩌면 용기를 잃고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 때마다 처음 꿈을 꾸었던 푸른 시절을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이 순간도 푸름을 믿으며 오늘 하루만큼 꿈에 가까워져 본다.
https://youtu.be/s25014pt-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