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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두개 Apr 25. 2022

나무는 어느 곳에나 있지만

비타꼰 연재 마지막화


 남편과 나는 20대의 마지막을 대학생 신분으로 보내면서 공부는 뒷전이요 열정적으로 놀궁리만 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농사를 짓게 된다면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 일로 꽃구경은커녕 동네 밖을 못 벗어나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은 유채꽃이 만개하는 4월의 어느 날 나를 데리고 완도에 갔다. 이번 여행은 국내 유일의 난대 수목원인 완도수목원과 느림의 미학이 있는 청산도가 주요 일정이었다. 그 곳의 자연 경관은 강원도와는 사뭇 다르게  따뜻하고 나지막한 느낌이었다. 뾰족뾰족 침엽수가 많은 강원도와 달리 넓고 부드러운 손바닥 모양의 활엽수로 가득했다. 기후와 지형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이 놀랍고 아름다웠다.


 낮은 산들이 드넓은 평야를 포근히 감싸 안은 풍경을 보면서 남편은 연속해 감탄했다. 남편은 남쪽 동네를 참 좋아한다. 하지만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정착지로 남쪽 동네를 선택할 일은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하곤 한다. 왜냐하면 겨울이 짧기 때문이란다. 겨울이 짧으면 농부가 누리는 겨울 방학도 짧아지니 나 또한 동감이다. 우리는 일정을 마치고 전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이런 별난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운전에 집중하는 사이 나는 창밖으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트럭에 실려 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문득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나무는 어느 곳에나 있지만 꼭 그 자리에 맞는 나무가 있나봐.”

 그리고 남편이 덧붙였다.

 “방금 그 말 되게 멋진데? 문학적이야. 그럼 너는 나에게 그런 나무야.”

 “오빠도 내게 그런 나무지.”


 나도 모르게 뱉은 그 문장은 오랫동안 마음 깊은 곳 엉켜있던 매듭을 풀어주었다. 그 매듭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스스로 던진 질문들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서부터 시작된 근원적 질문은 농부의 길을 선택한 뒤로 ‘가치는 있지만 현실은 막막한 유기농 농사를 왜 지어야할까?’까지 확장되었다. 유기농 농사를 짓겠다고 했지만 나는 모순 그 자체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구체적으로 파고드는 질문들에 괴로웠다. 제초제를 치지 않으려고 손으로 잡초를 다 뽑으면서 고된 밭일 뒤에는 꼭 육식을 한다. 건강한 밥상을 지키기 위해 제철 나물들을 찾아 먹지만 조금이라도 갈증이 나면 탄산음료를 벌컥 들이킨다. 장을 보러 갈 때는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꼭 가방을 메고 가면서 스트레스가 심한 날에는 과자를 펼쳐 놓고 먹으며 폴리에스테르 봉지를 마구 배출한다.


 신념에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일상의 행동들을 자각하면서 과연 내가 세상에 떳떳한 유기농 농부가 될 수 있을지 아득하다. 그리고 뒤이어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모든 철칙을 지켜가며 완벽한 자연주의 농부가 된다고 한들 이 세상이 바뀔까? 나 한명의 올바른 농부가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무력해지는 것이다. 경축순환을 구현한 생태 농업도 결국 내가 살아남기 위한 생존 수단임을 시인한다. 그러나 고백하건데 이기심 가득한 마음 가운데 흠 없이 지켜내고 싶은 것이 있다. 비록 엉망진창일지라도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소망이다. 우리는 그 소망을 농업에 투영하고자 한다. 땅에게 해를 덜 하자. 자연이 주는 만큼 돌려주자. 다양한 생물들의 터전을 지켜주자. 놀라운 자연의 섭리를 깨달아 널리 알리자. 생명을 귀히 여기자.     



 신념과 일상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도시를 떠나와 시골에 왔지만 아직도 예전의 습관과 허물을 벗지 못했다.  농부가 되려면 길이  것만 같다. 이렇게 부족한 내가 생태 농업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당당하게 자연의 편일  있는가. 이런 의구심마저 마땅히 있어야  나의 자리에서 뿌리내리려는 소망이고 싶다.  나무는 어디에서 떠나와 어디로 옮겨지고 있었을까?  나무가  필요한 자리에 가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서로의 옆에 있어야 하는 존재처럼 우리가 선택한 농업이 세상에  필요한 부분이기를 믿어본다.

어디에나 있지만   자리에 있어야 하는 어떤 나무야, 새로 심겨진 곳에서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다. 조화로운 풍경이기를, 삶이기를.








 안녕하세요. 비타꼰 구독자 여러분. 6화에 걸쳐 연재 되었던 저의 글이 <비타꼰> 함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종이 잡지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었던 <비타꼰>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감히 인사를 전해봅니다. 최신으로 급변하는 오늘  생태와 평화를 말하는 것은 다소 뒤쳐진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경축순환 농사를 꿈꾸는 제게는 <비타꼰> 마지막이  다른 생명의 시작을 위한 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비타꼰>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새롭게 태어날지 모를 일이니까요. 저에게 연재의 기회를 주시고 매번 풍성하게 <비타꼰> 만들어주신 모든 노고에 다시 감사를 표합니다.

지금까지의 글을 세상과 저의 약속으로 여기면서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는  그루 나무로 성장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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