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 다운 길

고3 이력서

82년생:엉뚱한 자서전

by 아이히어iHea

#1.

공부는 글씨와 반비례한다 했다.

그런데 예외도 있는 법. 내가 그랬다.

게다가 운동도 곧 잘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당시 ㅌ시 고등부에서 100m를 우승했다.

학교에서는 공부보다는 달리기로 더 유명했다. 열반짜리 학교에서 내가 모르던 친구들도 달리기 하면 나를 알았다고 한다.

20년이 더 넘은 지금도 아주 가끔 동창회를 가면 나한테 달리기로 시비를 붙어온다. 여전히 나는 달리기로는 지지 않는다.

반대로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던 친구들 이름은 내가 다 꾀고 있었다.

3학년이 되었다. 그래도 내신은 반에서 못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내 성이 ㅎ이라 47번이었고 뒤에 한 명이 더 있었으니 48명 중에 다섯 손가락!

모의고사와 내신도 반비례한다더라. 이 명제는 내가 예외가 아니었다.


1학기였고 4월 초쯤이었다.

ㅌ시에서 가깝고 벚꽃 하면 첫 손으로 꼽는 진해에서 군항제 축제기간에 백일장이 열린다고 안내가 있었다.

3학년 올라간 첫 날도 당연히 밤 10시까지 공식 야자를 하던 우리 학교였는데, 웬걸 군항제 백일장에 나가는 학생에게는 하루 수업을 빼준다고 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글짓기로 대내외 상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는 것 같았지만 자신 있게 참가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께서도 무슨 일이신지 아무 말씀 없이 허락하셨던 것 같다.

군항제 당일, 하루 수업 빼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으로 진해에 가서 백일장 부문 중에서 '시' 이런 거는 해본 적이 없으니 그냥 생각나는 글이나 적고 오자 해서 '산문' 부문에 참가했다.

지금 와서 기억을 더듬 더듬어도 도무지 어떤 주제로 적었는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받는 상장과는 사뭇 다른 번지르르 빳빳한 상장을 며칠 뒤 받고서는 국문과를 가야 하나?라는 생각은 1도 없었다.

'참방'이었지 아마.


역시 1학기였고 군항제가 얼마 지나지 않은 4~5월이었던 것 같다.

곧 경남체전이 열린다고 체육선생님이 나를 고등부 시 대표로 추천하셨단다. 2학년 때에도 같은 체육선생님에다 작년 100m를 우승한 걸 알고 계시니 고민 없이 추천하신 모양이다.

곧바로 시 대회가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100m를 2연패 했고 시 대표를 안 할 수가 없게 돼 버렸다.

그런데 나는 속으로 물었다. '시 대표로 나가면 공부는 우짜지?'

바로 대답도 들렸다. '앗싸라비야!!!'

대표 선수들은 오전 4교시까지만 하고 오후는 공설운동장에 가서 연습을 한다는 지침이 내려왔다.

우리 학교에서는 나 말고도 추천 선수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친구는 1, 2학년때에도 체전에 나가던 단골 친구였단다.

2~3주 동안 공설운동장에서 훈련했던 기억이다. 상고, 여상, 우리 학교, 여고, ㅊ고_

여사친들, 남사친들 대략 10명 전후였던 것 같다.

일단은 달리기를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하고 학교대표도 했었던지라 훈련은 익숙했다. 더 좋았던 것은 야자도 패스하고 오전수업만 땡 하고 공설운동장 가서 훈련 끝나면 그날은 끝난다는 거였다. 게다가 훈련이 정규 운동부처럼 그만큼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전부 다 같은 나이또래라 남사친, 여사친들이 다들 친구 먹어서 너무 좋았다.

사실 짧았지만 핑크빛도 있었더랬다.


경남체전은 창원에서 있었다.

나는 고등부 100m와 400m 계주에 출전했다. 비가 아주 찔끔 왔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때는 그렇게 도대회, 전국대회에 한번 참가해 보는 게 꿈이었는데(그때에도 출전한 종목에서 3등 하는 바람에 도대회에 나갈 수가 없었다.) 전문선수가 될 수 없으니 이제 운동은 그만하고 공부나 해야지 하면서 온 고등학교에 와서 그것도 수능을 앞둔 3학년이 도대회에 참가하게 됐다니 아이러니하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는 100m 경기를 대회 중간 이후에 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체전은 그런 것도 없었다. 아주 일찍 했었던 것 같다.

예선을 2등으로 통과하고 오후에 곧장 결승이었다.

결승선을 통과하던 그 찰나순간을 곁눈질로 바닥을 보았는데 내 스파이크발자국이 세 번째였다. 그것도 1등과 2등, 2등과 3등의 간격이 전부다 한 발자국 차이였다. 이거는 아마도 평생 기억할 것 같다. 왜냐하면 2등까지는 전국대회에 나간다고 하더라.(왜 나는 중요한 대회 때마다 3등만 한 걸까)

3등을 하고 우리 시 대표단에 돌아오니 나는 '뭐 그래도 시상대에는 오를 수 있겠구나'였는데, 우리 시에서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아주 쪼끔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우리 시에서 사상 처음으로 고등부 100m 입상자가 바로 나라고 했다.


대회 이튿날은 400m 계주가 있었다.

나는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4번 주자를 했다. 아마도 우리 시에서는 전날 내가 100m를 3등 한 여새를 몰아 내심 400m도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2번 주자가 같은 고등학교 친구였다. 1, 2번 주자에서 1명을 따라잡았고, 지켜보고 있던 순간은 한번 해볼 만하다였는데 3번 주자와 4번 주자인 나 사이에 바통 터치가 문제였다. 내가 너무 일찍 스타트를 한 것 같다. 바통터치 구간을 살짝 넘겨버렸고 당연 실격이다. 그렇지만 나는 끝까지 달리면서 무려 세 명씩이나 제쳤다. 실격만 아니었으면 결승 진출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고 예선 탈락이었다. 우리 시 관계자분들과 코치님은 엄청 아쉬워하셨다.

주 종목 경기들이 이틀 만에 끝나버린 나는 남은 대회기간 내내 우리 시 다른 종목 출전 선수들을 응원했다. 저녁에는 고3이었음에도 가느다란 기억 속에 회식자리에서 맥주 한 캔 먹어보았던 것 같다.

결국 우리 시에서는 내가 3위 입상한 것이 처음이자 끝이었다. 그래도 다들 대단하다고들 하셨다.


학교에 돌아왔더니 우리 반 담임선생님보다는 옆반 담임선생님이 더 호들갑을 떠셨다.

전국대회 상장이었으면 바로 서울대 입시에 써먹을 수 있었는데 아쉽다며 그래도 경남대회라 부산대는 쓰면 바로 가점이 있다고 하셨었다. 그러시면서 "부산대 가나 연대가나 고대가나 (체육교육과는) 선생님 되는 것은 똑같으니 공부 좀 더 해서 앗싸리 서울대 가보자! 거기 나오면 교수되니까!"

그래서 결국 수능치고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정시모집으로 지원했다. 도민체전 상장은 써먹지도 못하고. 실기시험도 보고 논술고사도 보고 면접시험도 봤으나 당시 입시에서 서울대 최고 경쟁률 학과가 바로 체육교육과였고 무려 10:1이었다. 수능을 그다지 잘 본 건 아니었으니 당연 떨어졌다. 붙었으면 아마 아나운서 오정연 씨랑 동기가 될 뻔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