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 다운 길

농어촌학자금 대출 VIP

82년생:엉뚱한 자서전

by 아이히어iHea

#2.

K대(IN서울, 흔히 아는 K대는 아니다.)에 입학했다.

또 다른 IN서울에 있는 K대 지방캠(형이 K대 간 이후부터 줄곧 나는 주변에 IN서울로 갔다고 으쓱해 왔다. 졸업장에는 K대라고만 적히니까)에 간 두 살 위 형이 우리 집 형편에 재수는 안된다며 모로 가도 일단 서울로, 그중에서도 나중에는 전자공학이 뜰 거다라며 전자공학과 하면 K대가 알아준다고 추천해 줬다.

엄마는 등록금 내줄 형편이 안되니 지방국립대에 가라고 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입학금이랑 한 학기 등록금만 내주시면 그다음부터는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약속드렸다.


직업군인(장교)이 하고 싶었던 차에 '군장학생*'이라는 제도로 등록금 해결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2년 먼저 형이 대학에 갔지만 2년 전이나 2년 후나 우리 집 형편은 거기서 거기였고, 형도 직업군인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군장학생과 ROTC**를 순서대로 밟아 나갔더랬다.

나 역시 형과 같이 군장학생과 ROTC를 했고, 그 덕에 4년 등록금 전부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형은 2학년 때 군장학생을 하면서 1학년 두 학기 등록금은 온전히 집에서 감당했지만, 나는 1학년 2학기때 군장학생에 선발되면서 1학기 등록금까지 되돌려 받으면서 4년 내내 군장학생 신분이었으므로 실제로는 4년 내내 집에서 등록금 부담을 덜었었다.


* 군 장학생 : (당시) 국방부에서 매 학기 해당학교 등록금만큼 장학금을 주면서 등록금 수혜기간에 따라 졸업 및 학사장교로 임관 후 의무복무기간(3년)에 더해 3년 내지 4년을 연장복무시키는 제도

** ROTC : 일명 학군단, 또는 학군장교로 일컬어지며 장학금은 없으나 군장학생과 달리 대학생과 장교후보생을 겸하며 방학 동안에 군사훈련을 병행하고 임관 후 2년 4개월(의무복무) 단기 복무하는 제도



형은 지방캠에서 자취를 했다. 임대료랑 생활비가 필요했고 우리 집 형편상 보증금 등은 큰돈이었다. 돌아오는 매 학기 초마다 우리 집은 이 돈 모으느라 비상이었다.

마침 나도 학교 교무처 및 각종 게시판을 두리번두리번거릴 때라 눈에 확 들어오던 안내문이 있었다.

'농어촌 학자금 대출'

농어촌 출신들에게 학자금을 무이자로 대출해 주는 제도였고, 신청자격은 졸업한 고등학교가 시가 아닌 농어촌 지역인 '면' 등에 주소가 있거나 본인 주민등록지가 시가 아닌 '면' 등 농어촌 지역이어야 했다. 당연히 나는 후자인 시골 '면' 출신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대출을 갚는 조건은 졸업 후 4년 뒤부터 48개월 동안 무이자로 꼬박꼬박 갚는다는 것이었다. 이 조건 역시 '어차피 장교로 임관하면 졸업하자마자 바로 월급이 꼬박꼬박 나올 거고, 장기복무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4년 뒤든 뭐든 상관없지 뭐'

나머지 남은 조건은 중복 수혜가 안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아주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군장학생이므로 국방부(육군)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있다는 데 있었다. 업무 담당자들이 이걸 알면 접수할 때부터 의문을 품을 수 있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여기저기 알아봤더니 군장학생은 학교 등에서 지급하는 장학금과는 아예 별도로 취급되어서 군 관계자 아니면 거의 모른다는 것이었다. 뒤에 이야기지만 심지어 대학 4년 중 딱 한번 성적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는데, 성적 장학금은 다음 학기 등록금에서 해당 금액만큼 차감되는데 나는 매 학기 온전한 등록금만큼 장학금으로 지급받으므로 성적 장학금은 일종의 보너스. 즉, 합법적 용돈이 된 것이다.

어찌 됐든 불법이 아니면서도 중복 수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농어촌 학자금 대출을 신청하려고 보니 아버지 도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에서 그 도장을 가지러 고향집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근처 시장통에 3,000 원주고 일명 막도장을 파서 신청을 했더니 다행히 받아주었다.

군장학생과 관련된 내용은 쏙 뻬고 '농어촌 출신자들에게 학자금 무이자 대출해 주는 제도가 있다고 해서 그걸로 형 자취방 비용 대면 될 것 같아요.'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나서는 '첫' 200만 원을 대출했다. 바로 형한테 보내줬다.


다음 학기쯤 어느 날 형이 노트북이 필요하다며 집에 80만 원을 손을 벌리는 일이 있었다.(자기가 아르바이트하면 됐을 것을)

이번에도 나는 농어촌 학자금 대출을 이용해서 200만 원을 빌렸고, 80만 원은 형에게 나머지 120만 원은 집에 보태 쓰시라고 보내드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형한테 설명하고 형이 신청했어도 될 것을 왜 내가 신청해서 형한테 보내줬는지는 그때는 전혀 몰랐다.

부모님은 여기까지만 학자금 대출을 이용한 줄 아셨다.

다음 두 번은 이용이 아니라 '애용'이었으니까.


세 번째는 우리 학군단 같은 단과대 동기랑 둘이서 4학년 여름방학에 '대학생 낭만'으로 떠난 첫 유럽배낭여행 자금으로 썼고, 이 에피소드는 #4. 에서 쓸 예정이다.

마지막은 4학년 겨울방학에(이때에는 졸업 및 임관 코 앞이라 훈련이 없다.) 대학 졸업 및 임관 기념 '제3세계로의 배낭여행' 자금으로 쏟아부었다. 이건 #5.

'애용' 할 때는 예상되는 것처럼 부모님께는 비공식이었고, 왜냐하면 아버지 막도장이 내손에 있었으니까. 졸업 후 임관 직전에 공식화했다. "어차피 군대 가서 못 박을꺼라치면 20대에 외국에 배낭여행 한번 못 가보는 거, 그래서 시원하게 질렀습니다. 임관하면 꼬박꼬박 월급 나오니까 제가 쓴 돈은 제가 갚겠습니다." 그랬더니 엄마 왈 "(처음엔 큰돈이라 눈이 휘둥그레지시며 놀래셨다가도) 잘했다. 네 형은 그런 배포도 없더라."

네 번에 걸쳐서 학자금 대출받은 돈이 무려 840만 원이었다. 당시 우리 집으로서는 실로 대단히 큰돈임에 틀림없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3 이력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