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 다운 길

세상은 진짜 넓은 게 맞다!

82년생:엉뚱한 자서전

by 아이히어iHea

#3.

학군단(ROTC)은 대학생활 간 각각의 방학 동안에 총 네 번의 군사훈련을 받는다. ROTC에 선발된 후 처음으로 받는 2학년 겨울방학 동계훈련, 정식 후보생이 된 후 받는 3학년 여름방학 하계훈련, 겨울방학 동계훈련, 4학년 여름방학 하계훈련까지.

학군단은 육. 해. 공 전국적으로 인가받은 대학교 약 100여 군데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여대에도, 일반 학군단에 여군들도 같이 선발한다고 하니 우리 K대 학군단은 남녀공학이 되었단다.

학군단은 네 번의 방학 동안 군사훈련 간 '첫' 군사훈련기간만 제외하고 한 내무반에 전국의 학군단 후보생들과 섞여서 훈련을 받는다. 첫 군사훈련인 2학년 겨울방학 동계훈련은 ROTC에 선발된 후 같은 학군단 후보생들과의 군인으로서 동질감을 갖게 하기 위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은 내무반을 쓰게 하는 것이리라.


3학년 여름방학 하계훈련이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학생중앙군사학교가 충북 괴산에 최신식 건물로 지어져 있지만 내가 후보생이던 2003~2004년 당시에는 경기도 성남에 있었고, 내무반은 나무 관물대가 있던_ 예전 군대드라마에나 나오던 진짜 그런 내무반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생년월일은 MZ여도 후보생과 군생활은 그 이전세대 때나 다름없었다.

우리 내무반에 우리 학교 근처(지하철로 근처다) 또 다른 K대 동기가 한 명 있었다. H. 그리고 더 생각나는 동기 이름은 지금까지도 까먹을 수가 없다. 한. 국. 인.(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한국인도 H네) 어쨌든 H들이라 내무반 뒤쪽에서 삼삼오오 모여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K대 H랑 친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느라.


하계훈련이 끝나고 3학년 2학기에 H랑 몇 번 대학로에서 호프(당시는 호프라고들 했다)를 마셨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3학년 겨울방학 동계훈련이 끝나고 나면 한 보름 나절 중국 칭다오, 상하이 쪽으로 배낭여행을 갈 계획인데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훈련 때는 전혀 몰랐는데 알고 보니 K대 국사학과에, 중국어를 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인재였었다. 그래서 자기네 국사학과 동기, 후배랑 해서 세 명인데 나도 껴서 네 명으로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다.

남녀비는 2:2! 안 갈 수가 없는. H, 국사학과 동기라던 1번, 후배라던 한 학번 아래 2번(1번, 2번은 여자다!), 그리고 나. 여행 가서 2:2 편 먹을 때는 H랑 2번, 나랑 1번이 자주 짝을 맺곤 했다. 사진 같은 거 찍을 때 말이다.


시간은 금방이다. 진리다.

동계훈련이 끝나자마자 2004년 1월 중순쯤 인천공항이 아닌 인천'항'에서 출발했다. 이동수단은 비행기가 아닌 배였다. 비행기 두 시간이면 갈 거리를 역시나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대학생이라 비행기보다 더 싼 배로 가기로 했다. 무려 17시간. 지금은 가격으로 보나 시간으로 보나 답정너는 비행기다.

크루즈 같은 빅선박을 타고서 가는 건지 안 가는 건지 흔들림도 없이 17시간을 어떻게 때우나 싶어 이곳저곳을 샅샅이 구경해 봐도 한 시간 반이면 끝. 이번엔 밖에 나가 바다라도 보자 해서 꼭대기에 나가면 360도 망망대해에 바다 빼곤 우리 배랑 간혹 날아오는 갈매기 외에는 없어서, 그리고 1월이라 몹시 추웠던 때라 바로 방으로 복귀. 뭐니 뭐니 해도 장시간 때우는 것은 네 명이 고하니 숨겨온 고스톱이 최고였다. 그래도 시간은 느릿느릿이라 자꾸 시계눈치만 보면서, 어떻게 17시간을 버텼나 모르겠다.(물론 잠도 잤다)


중국은 비자가 필요해서 그런지 도착비자로 신청한 뒤 무사히 입국했다. 인생 '처음으로' 다른 나라에 발을 내딛는 감격이란. 별거 없었다. 그래도 가슴이 두 근 세근은 했더랬다.

첫 목적지는 칭다오. 중국 동부에서도 유럽풍 느낌을 느낄 수 있었던 곳. 칭다오 맥주로 유명한 바로 그곳. 우리 넷은 일단 청춘이기에 큼직큼직한 거리를 제외한 주요 이동수단은 튼튼한 '다리'뿐. 왜냐하면 주머니 사정도 딱 대학생 지갑 정도만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걷다 쉬다 걷다 쉬다 하다가 피자헛에 닿았다. 중국에도 피자헛이라니. 그때만 하더라도 중국을 '요즘의 G2중국'으로 생각하지 못한 아직은 세계를 보는 눈이 좁았던 탓이리라. 그런데 피자는 피잔데 서울에서의 피자와 다른 무엇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향신료! 중국 특유의 향에 더해 약간은 동남아식의 향신료가 더해진 처음 맡아보는 향이어서 피자한입 하기가 쉽지 않았다.


독일에서 들여왔다는, 독일풍 건물들이 아직도 남아있던 칭다오 맥주 공장 지역을 쓰윽 한번 둘러보고 구시가지 지역도 H의 리얼트립한 가이드에 따라 여기저기 포인트들을 둘러본 뒤 저 멀리 신시가지를 보니 확실히 칭다오도 근대와 현대가 섞여있었다.


칭다오 다음은 상하이. 가깝진 않았던 거리를 중국의 '고속철도'를 타고 이동했다. 한국의 KTX도 그즈음 전후로 개통했던 것 같은데(KTX호남선 개통 직전 탑승 이벤트에 당첨돼서 4학년 여름방학 때 유럽배낭여행을 가게 되는 학군단 단과대 동기랑 둘이서 1박 2일 목포여행을 4학년 올라가던 2004년 3월 초에 다녀왔으니까. 경부선은 먼저 개통했겠지 뭐) 중국의 그것을 먼저 타보다니. 돌아올 때는 고속철도가 아닌 2층침대가 있던 기차였던 것 같다. 이것도 기차로만 16시간이었나 걸렸지 아마. 잠도 잤었고.


상하이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포인트는 '상해임시정부'

장교후보생이었던 탓에 기념사진도 거수경례하는 사진으로 찍었다. 싸이월드에 올려놨는데 싸이월드 사진들을 백업 안 해놔서 찾을 방법이 없다.

그리고 와이탄거리 동방밍주 앞에서 V자를 그렸던 거나 와이탄 옆으로 길게 늘어선, 세계사 역사책에나 등장하는 옛 근대식 건물들을 보고 있자니 실로 '내가 진짜 중국에 와 있구나' 싶었다. 우리의 상하이 숙소는 유스호스텔로 와이탄에서 두 세 블록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주 넓은 침대형 다인실 방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구조가 양 옆으로 널찍한 벽에 침대가 비대칭으로 대여섯 개씩 따로따로 붙어 있었다. 한국에서도 본 적이 없는 신기한 구조 그 자체였다.(사진이 없다) 더 우연이라고 할 법한 일은 그날 저녁에 있었다. 방이 크다 보니 남자여자, 나이가 많고 적고 상관없이 배낭여행객들이 있었는데 하필 그날은 외국인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 한 중년의 한국인 아저씨 한분이 같이 묵었는데, 도란도란 모여서 어떻게 오게 됐니 등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손금을 좀 볼 줄 아는데 볼 테야?" 하셨고, 우리는 호기심에 흔쾌히 자기 손바닥을 내어 놓았다. 지금에 와서 H와 1, 2번의 손금 설명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내 것만 기억할 뿐이다.

"너는 30대까지는 엄청 고생할 것 같고, 40대는 조금 풀리는데 50대 되면 건강을 조심해라!"였다. 10년 단위로 아주아주 함축적으로 말씀해 주셨는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40대 초반이 되고 보니 30대까지는 1000% 맞았던 것 같다.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고 나면 드라마틱하게 장면장면마다 풀어쓸 계획이니 핸들 꼭 잡자! 손금 얘기를 듣고선 그때는 그냥 덤덤했다. 장교후보생이니 뭐, 그리고 군장학생이라 못해도 4년은 연장복무해야 하니 전역한다고 쳐도 서른 살까지는 군대서 고생할 거니 맞을 수도 있겠다 싶어 재미 삼아 넘겼다. 그런데 한 살 두 살 먹다 보니 여전히 상하이에서의 '첫' 손금을 봤던 22살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하긴 하다.


상하이를 뒤로하고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이 있었던 '난징', 아주아주 예쁘고 중국다운 정원과 동양의 베네치아 같던 '쑤저우', 그리고 항저우까지. 검색해 보니 보통 여행상품으로 상하이(상해), 항저우(항주), 쑤저우(소주)를 삼각형으로 묶어서 많이들 다니시나 보다. H도 중국어를 잘하다 보니 우리를 그쪽으로 안내했던 모양이다. 영어회화가 입에 익숙지 않았던 터라 영어로 말을 걸지도 않았지만 영어를 잘 쓰지 않았던 중국인들 사이에서 H의 니하오 중국어는 '인마는 중국어를 언제부터 어떻게 이렇게 공부를 했더랬지' 하고 감탄 연발을 쏟아댔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돌아오던 기차는 2층침대가 있던 아랫급 기차였는데 고속열차와 비교해서 너무 레벨이 차이가 났었다. 심지어 자고 일어나 고양이세수라도 할 마냥 화장실에 갔다가 여자 승무원도 간단히 물로만 고양이 세수를 하던 모습이나 중국인 아저씨는 세수는커녕 그 찔끔찔끔 나오던 물로 이미 떡져서 기름이 좔좔하던 머리에 묻혀가며 빗질을 하고 있노라니 '아, 역시.. (생략하고 싶다)'

그래도 화장실을 나오면 좁은 통로에 1인 좌석테이블이 있어 바깥을 볼 때는 끝도 없는 들판에 '와~ 이게 대륙이구나' 싶었다.

다시 칭다오에 와서 인천으로 돌아오기 전 H랑 1, 2번과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우리가 갔다 온 곳을 점을 찍어봤더니 고작 엄지손가락-검지손가락 사이(ㄴ자, '한 치'라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길이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서는 '세상은 진짜 넓은 게 맞다!'를 가슴에 '첫' 세기면서 '다음은 어디?'를 그때부터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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