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엉뚱한 자서전
#4.
H와 중국 배낭여행을 다녀온 게 3학년 겨울방학 2004년 1월. 이제 내게 남은 기회는 단 두 번:4학년 여름방학, 그리고 4학년 겨울방학.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 든든한 3,000원짜리 아버지 막도장과 농어촌학자금 대출이라는 빽이 있으니 계획만 확실하다면 자금조달은 시간문제였다.
고등학교 때 듣기론 대학생이 되면 캠퍼스 낭만이라며 따스한 햇살 아래 여사친들과 잔디밭에 누워보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다. 그런데 우리 학교 K대에는 잔디밭이 없었다. 지금은 아주 멋들어지게 있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 낭만이 유럽 배낭여행이라 했다.
4학년 1학기 3월 초부터 학군단 단과대 동기 K와 유럽 배낭여행 프로젝트에 의기투합했고, 플랜을 차근차근 세우기 시작했다. 일단 예산은 각각 300만 원으로 하고, 나는 농어촌학자금 대출로 조달하기로 이미 맘먹은 지 오래. 항공권은 여느 대학생들이 그러하듯 최저가다 보니 경유는 필수. 숙박은 일정의 반은 유스호스텔을 미리 예약하고 나머지는 현지에 가서 상황별 대처하는 것으로 정했다. 그리고 현지 이동수단으로 유레일패스도 한국에서 미리 구매해 놓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국제학생증도 혹시 현지에서 할인 등을 받을 수 있다니 종로에까지 가서 발급받았다. 모든 준비는 계획대로 완료되기 일보직전까지 왔다.
이제는 여권이 남았다. 지금이야 아마도 후보생이라 할지라도 여권 만드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우리가 가려던 2004년에는, 후보생 신분자들은 아직 군대 미필자였기 때문에 ‘신원보증’이 필요했고 또한 여권 자체도 단수여권이었다.
신원보증? 이게 뭐람?!
군대 미필자가 혹시 외국에 나갔다가 영영 귀국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보증할 수단이 필요했었다. K와 나는 각 아버지들께서 상호 신원보증해 주기로 했는데, K의 아버지 직업이 아무래도 수상했다. 나아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K의 아버지는 국정원에 다니셨다는 것을 한참이나 지난 뒤에 알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정원은 심지어 가족들도 그 회사가 그 회사인지 잘 모른다고 한다. 신원보증문서에 적힌 K의 아버지 회사 역시 처음 들어본 회사 이름이었으니까.
모든 준비는 기말고사 전에 끝냈다.
그런데 막상 여름방학이 다가오니 가장 중요한 걸 놓친 것이 아닌가. 바로 하.계.훈.련.
ROTC는 여름방학 동안은 4주간 훈련을 받는다. 대학 여름방학은 두 달. 그럼 우리가 한 달 배낭여행을 가기로 했으니 훈련이 끝나자마자 가던가,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훈련을 가야 했다. 학군단이 전국에 100여 개 이므로 두 달 동안 전부 훈련을 소화하려면 방학하자마자 훈련을 입소하는 A조와 한 달 뒤 입소하는 B조로 나뉘는데, 우리 학군단은 B조에 걸렸다. A조였다면 훈련 끝나고 갈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편했을 텐데 세상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학군단으로서는 후보생들의 전체 훈련성적으로 학군단 성적을 매기므로 A조의 경우는 방학 전부터 사전교육을 시키는가 하면 B조는 아예 방학중에 집체교육을 시키는 학군단도 있었다.
우리 학군단도 그때는 학군단 성적을 잘 받았어야 했는지 집체교육을 한다고 공지했기에 K랑 나는 멘붕이었다. 먼저 훈육관님께 한소리 듣겠네 예상하고 가타부타 배낭여행 갈 계획이라고 보고했더니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며 학군단장님과 담판 지으라고 하셨다.
학군단장실에 불려 들어갔다.
“뭐? 어딜 간다고?”
“유우우럽 배낭여행입니다!”
“집체교육을 빠지겠다는 건데 훈련 자신 있나? 이번 4학년 하계훈련은 후보생 마지막 훈련이라 이번 훈련 성적이 임관고사(필기)를 제외한 가장 큰 점수가 들어가는데 반드시 가야겠나?”
“……”
“나가봐”
하시기 무섭게 “집체교육자료를 들고 가서 여행 간 매일매일 공부하겠습니다!"하고 내가 임기응변으로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증명하나?"
“제가 돌아와서 훈련성적으로 학군단 내에서 3등 안에 반드시 들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각오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아. 아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에도 ‘요’ 자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을 깜빡했다.
“3등 이내 약속 꼭 지켜라! 조심히 다녀오고"
“알겠습니다! 카, 캄사합니다!”
주먹을 불끈 쥐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야호.
집체교육자료를 들고 가긴 했지.. 만.. 유럽에서 그걸 볼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ㅋ
#4-1.
런던 in 파리 out 하는, 시계방향으로 도는 일정으로 짰다. 많은 한국 대학생들이 선택하던 바로 그 루트였다. 대신 우리는 시간이 한 달 밖이라 스페인 쪽 이베리아 반도랑 헝가리 쪽 동유럽, 그리고 그리스 쪽까지는 갈 수가 없었다.
영국(런던)-> 벨기에(브뤼셀)-> 네덜란드(암스테르담)-> 독일(여러 군데)-> 체코(프라하)-> 오스트리아(빈)-> 이탈리아(여러 군데)-> 스위스(여러 군데)-> 프랑스(니스, 빠리)
20대 때만 해도 내 평생 또 유럽 갈 일이 있을까 했지만 신혼여행으로 ‘꽃보다 누나(2013)’보다 1년 먼저 크로아티아를, 재작년(2023) 출장으로 다시 유럽을, 올해(2025)는 ‘잠깐 쉼’의 클라이맥스로 포르투갈을 간다. 그것도 혼자.
가성비 항공권이다 보니 20여 년 전 런던으로 가던 항공사와 중간에 어디를 경유했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기내에서 기막힌 '인연'을 만났더랬다. 우리는 나랑 K랑 건장한 대학생 남자 둘이었는데 자기만큼 큰 배낭을 짊어진 딸랑 혼자 유럽 배낭여행 온 여대생 h(이름이 가물가물해서 대문자 이니셜로는 안될 것 같고, 다니던 학교가 H여대였다. 그래서 소문자 h라고 하겠다)를 만났다. 어찌어찌하다가 말을 섞었고 우린 런던에서 2~3일 머무를 건데 h도 그 정도 머무른다고 했기에 그렇다면 도착하고서 숙소 갔다가 □시에 워털루 광장에서 보자고 했다. 그때도 핸드폰은 있었는데 국민메신저는 없었기에 로밍을 하지 않은 이상 서로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었고 그래서 우리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약속을 잡았다. K랑 나는 '밑져야 본전이지 뭐' 하면서 기대반 걱정반으로 정시에 워털루 광장 앞으로 갔다. 10분 정도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이걸로 끝이다라고 하는 순간 h가 왔다. 오~~
우리는 h랑 셋이서 런던을 2~3일 같이 돌아다니고서 벨기에를 넘어갈 무렵 헤어지게 됐다. 그런데 루트가 그래서 그런지 최소한 두 번은 중간 나라에서 우연히 더 만나게 된다. 참 신기방기 했다. 그런 우연 때문이었던지 나는 "우리가 ROTC라 이번 배낭여행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바로 군사훈련을 한 달 동안 받는다. 혹시 괜찮다면 편지 좀 보내줄래?"라고 슬며시 던졌는데 받아주었다. 실제 훈련 간 유럽에서 보내온 엽서카드 편지를 받았다. h는 두 달 넘게 여행을 한다고 했던지라 우리가 훈련받는 동안에도 유럽에 있었다. 더 기막힌 일은 훈련이 끝나고 2학기 중간에 있었다.
학군단은 한 번씩 단과대별로 호프 모임을 가지면 꼭 커플로 가야 하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때 나는 여자친구가 없었던 터고 K는 오래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나는 어쩔 궁리를 하다가 불현듯 h가 생각나서 h에게 다짜고짜 전화한 뒤 이래저래 설명을 했다. h도 머뭇거리지 않고 승낙해 줬다. 그런데 사건은 그 모임날에 있었다. h가 술을 진탕 마시는 바람에 내가 h집 근처까지 택시를 태워서 바래다줬는데, 하필이면 택시에서 핸드폰이 바지에서 떨어진 모양이다. 다음날 K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h에게 커플값을 비싸게 지불했다고 하더라. 그 이후로 h와는 다시 연락할 수 없었고, 20여 년이 지나 지금은 이 글의 에피소드가 되었다.
#4-2.
에피소드 #4. 는 여행에 대한 정보전달형 글이 아니다. 말 그대로 나의 엉뚱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글이라서 감안해서 읽어주셨으면 한다.
한 달 동안 알찬 유럽 낭만 배낭여행을 갔다 오자마자 바로 예정된 하계훈련에 입소했다. 학군단장님과의 약속을 가슴 한편에 불질러 놓은 채.
장교 임관 전 마지막 군사훈련인지라 그리고 훈련 반영점수가 가장 컸던 탓에 전국의 후보생들 전부다 한결같이 눈에 불이 켜져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래 기본적으로 체력에 자신이 있어서 그런지 땀뻘뻘나는 여름 군사훈련에도 자신감 뿜뿜이었다.
기억나던 훈련은 두 가지. 하나는 사격인데 20발 기록사격에서 무려 18발을 맞혔다. 멀가중멀가중멀중가중(군인이라면 몸이 기억할 수밖에 없는 사격순서). 두 번째는 공수훈련. 온몸 비틀기 8번으로 대표되는 체력훈련과 11m 막타워 훈련이었다. A등급(최고등급)으로 마무리했다. 공수훈련은 실제 대위 때 특전사를 가게 되는데, 특전사의 제대로 된 공수훈련과 비교하면 수박 겉핥기 공수훈련이었다. 그래도 11m 공중에서 뛰어내리는 짜릿함이란!
더위에 지치고 힘들어질 때쯤 h로부터, 유럽으로부터 엽서편지가 진짜 도착했다. 편지가 훈련성적에 도움이 되긴 된 모양이다. 됐을 것으로 믿는다.
하계훈련을 무사히 수료하고 학교로 복귀했더니 그 짧았던 두 달의 여름방학이 벌써 끝나버렸다. 2학기 개강 후 군사학 시간에 하계훈련 성적 발표가 있었다. 뚜둥! 무려 2등씩이라니!! 우리 학군단 동기 32명 중에 2등이었다. 학군단장 표창도 받았다. 나중에는 임관성적도 그대로 2등을 유지했다. 군번이 무려 전국 ROTC 3,000여 명 임관 동기들 중에서 115등이었다. 학군단장님과 훈육관님은 그 약속 못 지킬 줄 알았는데 지킨걸 보니 유럽 가서도 진짜 공부했냐고 물어보시길래 "네! 낮엔 돌아다니고 저녁엔 공부했습니다."라고 거짓 대답을 했다. 과연 믿으셨을까.
그렇게 4학년 여름방학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