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엉뚱한 자서전
#5.
이 앞 글에서 여행 정보 글이 아니라고 했었다. 마이 라이프스타일을 쓰다 보니 '라이프' 자체가 도전적인, 그리고 프런티어적이라 20대 청년 때는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는 게 그것이라 생각해서 대한민국 밖으로 디뎌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나 보다.
이제는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4학년 겨울방학을 코 앞에 두고 있었다. 4학년 겨울방학은 동계훈련이 없다. 어차피 2말 3초에 임관하고 나면 곧바로 OBC(Officer Basic Course, 소위로 임관 직후 각 병과별 군사학교에 입교하여 초급장교로서 6월 말까지 교육시키는 과정, 우리는 초군반이라 통칭했다)에서 약 16주간 군사교육을 또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군단 동기들은 '이때'를 노려 해외 배낭여행을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가곤 했었다. K랑 나는 지난여름 시작은 '좀 많이 불편한 마음'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었지. 나는 이번 기회도 놓치지 않을세라 반드시 떠나리라 작정하고 임관고사를 패스한 후 여기저기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환경공학과 동기 L이 자기는 호주로 간다고 했다. 호주는 남반구라 계절이 우리나라랑 반대여서 겨울에 최적이라고 했다. ㅇㅋ. 지난번엔 유럽을 갔으니 이번엔 다른 대륙으로 가보자 해서 호주를 염두에 두고 항공권을 써치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호주는 지금 여름이고 나 아닌 사람들에게도 호주는 여전히 여름이라서 적당한 가격에 항공권이 없었다. 그렇다고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직항을 타기에도 예산이 부족했다. 농어촌학자금 대출 VIP이긴 하지만 대출도 무작정 많이 받는 것도 나중에 부담이었다. 그리고 가장 망설여졌던 포인트. 바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으로 호주를 간다는 것! 그래서 나는 전격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전혀 다른 곳으로 가보기로. 그리하여 안 가본 대륙 중(아시아랑 유럽 밖에 안 가봤으면서) 당시 싸이월드클럽을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우연찮게 본 글귀 '요즘 서양의 젊은 친구들은 아프리카 트럭킹을 즐긴다더라'는 말에 필이 팍 꽂히는 바람에 '그래, 아프리카로 가자!' 단박에 결정해 버렸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어디?
트럭킹은 지금 네이x에 검색해 보아도 여전히 요즘도 젊은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 상품인 것 같다. 20여 년 전 그때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라는 빅토리아 폭포를 찾아가는 나미비아-보츠와나-짐바브웨 3국을 거치는 트럭킹이 가장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나도 여기에 탑승해 볼까 하여 여행상품을 찾기 시작했다. 가 아니라 일단 당장 겨울방학이 코앞이고 항공권이 급선무여서 아프리카로 가는 가성비 항공권을 찾는 게 가장 일빠따였다. 그래서 하루이틀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은 아프리카니까 가장 상징적인 곳. 아프리카의 가장 아래쪽을 포함하는 남아공에 가보기로 결심하자마자 구매한 항공권은 홍콩을 경유하는 캐세이퍼시픽이었다. 홍콩도 밟아보지 않은 곳이라 경유지로서 최적지라고 여겼다.
그렇다면 트럭킹은 어쩌고?
남아공에 가서 현지에서 출발하는 상품을 알아보기로 했다. 남아공도 보츠와나와 짐바브웨랑도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서 남아공에서 출발하는 상품도 더러 검색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서 여행상품을 구입하면 괜히 패키지 같은 느낌이 들어서 현지에서 직접 발품 팔아 합류할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출발 날짜는 해를 넘겨 2005년 1월 초. 그게 남아공으로 가는 남아있는 항공권 중 가장 빠른 스케줄이었다.
유럽에 갔을 때는 워낙 그쪽 배낭여행이 일반화된 여행이다 보니 교통이나 숙박 등 인프라가 잘 발달되어 있어서 굳이 여기서 예약 등을 해놓고 가지 않아도 전혀 불안하거나 위험할 것 같지 않았지만, 이상하리만치 아프리카라고 하니 최소한 숙소는 예약해 놓고 가는 게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찾은 게 한. 인. 민. 박. 감사하게도 케이프타운 공항에서 숙소까지 픽업도 해주신다고 하셨다.
이번에도 모든 게 준비는 완벽했다.
그런데 지난 유럽배낭여행보다 더 두근세근 거렸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무래도 남들과 전혀 다른 아프리카로 이번엔 딸랑 혼자서 배낭하나 메고 간다는 게 모험적이라고 해야 할까.
티켓을 발권하고 보니 홍콩까지는 캐세이퍼시픽(세 시간?), 그리고 갈아타서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까지는 남아공항공(14시간? 유럽 가는 것보다 더 길었다), 요하네스버그 도착 후 다시 또 국내선으로 갈아타고서 케이프타운까지 2시간을 더 날아왔다. 완전 도착했다고 안도의 휴~~ 우를 내뱉었으나 민박집 사장님(나는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아니 부르기로 했다. 나 혼자가 아니었거든)께서 30분만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 민박집인 사이몬즈타운까지는 차로 한 시간 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뻗어버린 건 안 비밀.
공항에서 30분이나 기다렸던 그.
'또' 우연찮게 숙소로 삼촌 민박집을 컨택했던 1인 한 살 위 형(i, 역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또 대학은 기억난다. I대. 그래서 지난번 h와 같이 소문자 i라고 하겠다. 싸이월드클럽이 복구되면 바로 이름과 사진을 찾을 수 있고말고)이 있었고, 하필 같은 날 케이프타운공항에 30분 차로 랜딩을 하게 되었단다. i형은 이미 여행 중이었고 이집트 카이로에서 날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세상에 엉뚱한(?) 사람이 나 말고도 하나 더 있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남아공여행 내내 뭔가 복작복작 합이 잘도 맞았다. i형은 남아공일정을 딱히 그려놓고 오진 않았다고 했다. 나는 어쨌든 목표는 트럭킹을 염두에 둔 채 첫날은 개피곤과 함께 그렇게 스르륵 Zzz 지나갔다.
눈을 뜨자마자 이건 뭐 벽 전체만 한 대형 통유리창에 대서양인지 인도양인지모를 바다에 햇살이 부서지는, 세계테마기행에나 나올법한 뷰포인트에서 자고 일어났다는 게 꿈만 같았다. 하룻밤새(한국에서는 하루가 더 걸린 것 같은데) 한국에서 아프리카에 와 있다는 사실에 더욱 실감이 나질 않았다. 나는, 아마도 그때는 파릇파릇한 20대라 시차적응 이런 거는 그닥 없었던 모양이다. 사실 여름에 유럽 다녀오고서는 24시간을 풀로 자긴 했다ㅋ. 아침식사도 어제 한국에서 먹고 왔던 바로 그 한식 밥상이어서 너무 좋았다. 민박집에는 삼촌과 삼촌 아내분 이렇게 딱 두 분만 계셨는데 연배가 40대 후반 이 정도 돼 보이셨던 것 같다.
일단 나는 케이프타운에 왔으니 케이프타운을 한 며칠 여유롭게 여행하기로 하면서 트럭킹은 후순위로 밀리기 시작했다. 영영 밀릴 줄은 모르고. 유럽은 세계사 역사책을 통해서 굵직굵직한 사건이나 유명한 건물, 나라 등은 상식 정도로 공부를 해갔는데 반해, 남아공은 전~~ 혀 그런 것 없이 즉흥적 선택으로 오게 된 거라 사전 공부는커녕 남아공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프리카라는 것과 수도가 요하네스버그라는 것, 그리고 유명한 사람으로 만델라대통령, 2010년 월드컵 개최 국가라는 것. 고작 이 정도의 상식 그 이상 그 이하도 몰랐다. 그런데 수도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틀렸다는 사실도 현지에 와서 알았다. 남아공은 수도가 세 가지로 나뉜단다. 행정수도(프리토리아, 요하네스버그랑 가깝다), 입법수도(케이프타운), 사법수도(블룸폰테인, 들어본 적이.. 없다). 즉, 요하네스버그는 남아공 최대도시일 뿐 수도가 아니었다. 어렸을 적 즐겨하던 브루마블 게임에서는 남아공을 돈 주고 샀을 때 수도는 요하네스버그라고 분명히 적혀있던걸 기억하는데.
한인 민박집이고 삼촌이 너무너무 친절하셔서 우리가 부탁도 드리기 전에 되려 케이프타운 관광포인트를 삼촌차로 틈틈이 몇 군데 데려다주셨고 시간도 같이 보내주셨다. 아마 그게 삼촌 일상이었던 듯하다. 민박집 운영이 사업이실 거니까. 테이블마운틴, 워터프런트, 로벤아일랜드, 볼더스비치, 희망봉(케이프포인트), 라이언스헤드 등등. 지금 생각해 보니 아예 투어를 돌아주신 게 맞는 듯하다, 감사하게도.
다시 한번 나 스스로 다짐하지만 이 글들은 정보전달 글이 아니므로 각각의 감상은 패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은 또 개인시간이 하루이틀 있어서 혼자서 막(?)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혼자 여행하기로 한 날 아침 삼촌이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만델라대통령이 차별정책 철폐를 위해 평생 노력하셨음에도) 여기는 아직도 흑인, 백인 등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서 흑인 빈민가 지역은 가급적 조심하고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
실제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돌아오는 기차에서 몸소 경험하고 나서 '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곱씹었다. 기차가 1, 2, 3등급 칸으로 나뉘길래 나는 배낭여행자이니 저렴한 3등 칸을 구매했는데 티켓판매원도 약간 의외였는지 눈 동공이 좀 커졌었다. 아니나 다를까 탑승을 하니 죄다 흑인들만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좌석 의자가 90도 직각 ㄴ자 긴 나무의자가 각 열에 맞춰서 있더라니. 나는 조금 무서웠지만 현지인들의 눈 맞춤을 애써 피해 가며 조용히 한 시간 동안 옴짝달싹하지 않고 왔다. 집에 와서 삼촌이랑 i형에게 기차 얘기를 해드렸더니 삼촌왈, "기차는 동양인은 보통 2등 칸을 타는데 3등 칸은 거의 흑인들만 타고 2등 칸은 적당히 섞여 타기도 하고 1등 칸은 백인들만 탄다."라고 하셨다.
#5-1.
케이프타운을 며칠 동안 어느 정도 돌아봤다고 할 찰나 잊고 있던 트럭킹이 생각나 삼촌께 추천해 주실 만한 루트가 있는지 여쭤봤더니 몇 군데 찝어는 주셨다. 그리고나서 하시는 말씀.
"내가 사실 요하네스버그에도 집이 하나 더 있어서 낼모레 거길 가봐야 할 일이 있어서 차를 타고 7~10일 정도 군데군데 캠핑을 하면서 올라갈 생각인데 너희들도 괜찮다면 같이 안 갈래? 케이프타운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남아공 남쪽 지도를 쭉 훑어보는 것도 트럭킹 못지않을 텐데. 그것도 어차피 내가 올라가야 하는 거라 몸만 가면 돼"
"Of Course요!!!"
즉, 공짜 프라이빗 트럭킹을 시켜주시겠다는 게 아닌가. 트럭만 봉고로 바꿔서~ 생각할,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낼모레 출발하신다고 하셔서 남은 시간 동안은 못 가본 케이프타운 숨은 현지 포인트들을 몇 군데 더 돌아봤다. 누드비치도 있다고 하셔서 가봤는데 누드인 분은 아무도 없었다.
봉고킹에서 기억나는 포인트는 셋.
아굴라스 곶.
블로크란스 브릿지 번지점프.
그리고 더 반.
먼저 아굴라스 곶.
우리는 흔히 희망봉을 바스코 다 가마가 발견한 아프리카의 끝단. 대서양과 인도양의 기점이라고 알고 있을 텐데 삼촌이 아굴라스 곶에 닿으며 알려주시길, 남아공 아니 진짜 아프리카의 남쪽 땅끝이면서 대서양과 인도양이 지리적으로 나뉘는 포인트가 바로 아굴라스 곶이라고 했다.
두 번째 블로크란스 브릿지 번지점프.
그리고 아굴라스 곶을 한~~ 참 지나 아주 유명하다는 번지점프에 다다랐다. 물론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우리는 중간중간 아프리카 대자연과 캠핑, 그리고 여유와 남아공을 느끼며 아주 천천히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방금 길쭉한 다리를 하나 건너온 것 같은데 아치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리 아래에 있어서 다린지 아닌지 잘 모를 그냥 도로로 느껴졌을 뿐이었다. 지나오자마자 삼촌이 바로 좌회전을 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번지점프라는 설명과 함께.
이건 삼촌이 비용을 대 줄 수 없으니 하고 싶으면 해 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언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번지점프를 해볼 수 있겠냐며. 바로 망설임 없이 우리나라돈으로 10만 원 정도 주었던 것 같다. 당연히 남아공 화폐로.
여기는 크게 심장을 벌렁벌렁하게 하는 게 두 단계로 나뉘는데, 번지점프대가 다리 아래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그쪽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것. 걸어가는 통로가 도로 바로 밑 다리 위에 설치돼 있으면서도 꽤 긴 철제 난간인데 사방이 철조망처럼 구멍이 슝슝 뚫려있고 바닥도 그래서 번지점프 타러 가면서부터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는 것(아, 이건 사진이 있어야 하는데 싸이월드클럽..)
번지점프대에 다다르니 한켠에 기네스북 인증서와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216m.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번지점프란다. 나는 줄 길이만 216m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뛰기 전에 안내요원들이 물어봤다. "어디서 왔어?"
"나 한국에서 왔는데, 다음 달에 장교가 될 예정이야."
"오, 멋진데! 그럼 Back으로 뛰어볼래?"
"그 정도야 뭐 식은 죽 먹기지!"
앞서 사람들은 전부다 앞으로 뛰었는데 나는 Back으로 뛰기 위해서 발뒤꿈치가 공중에 떠 있고 발가락 힘만으로 버티고 서 있었다.
"쓰리, 투, 원, 번지"
"..."
끝도 없는 양쪽 절벽과 쩌~~어기 200m 이상 아래에 있는 블로크란스강 속으로 그것도 거꾸로 빨려 들어가는 번지 느낌이란 해본 자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이 순간을 i형이 옆에서 사진으로 찍어놨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가끔 써먹기도 하는 인생샷이 됐다. 이때부터 지금껏 해본 번지점프는 216m 이상은 없었다. 특전사에 가기 전까지. 뭐 특전사의 점프는 번지점프가 아니니 제외해야 하는 게 맞다.
마지막 더반.
더반은 2018년 동계올림픽으로 우리나라 평창이 지명되던 IOC총회가 있었던 남아공에서 세 번째 도시다. 물론 이 사실을 안 것은 여기를 다녀오고서 6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그런 도시를 내가 먼저 갔다 왔다는 것. 끝. 더반까지는 케이프타운에서 해안 쪽으로 서쪽으로 서쪽으로 계속 지나쳐왔는데 더반을 찍고는 요하네스버그 쪽 내륙으로 방향을 틀었다.
#5-2.
약 3주 정도 남아공 봉고킹을 하고서 귀국길에 올랐다. 김태희와 같은 비행기를 탄 줄도 전혀 모르고.
홍콩에 내렸다. 공항에 내리는 순간 같은 비행기를 탄 것 같지는 않은 중고생들 족히 수백까지는 아니고 1~2백여 명이 보라색 츄리닝을 입은 한 여성에게로 함성을 지르며 후다다닥 몰려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옆에는 매니저로 보이는 남성 두어 명이 제지를 하면서 급히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모습이었고 이 찰나를 놓치지 않고 나는 사진을 남겼더랬는데 찍고 나서 확대해 보니 아니, 내가 아는, 엊그제 TV에서 본 그 김. 태. 희. 아닌가!
뭔 일이지 싶어서 바로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아 글쎄 케이프타운에서 강도를 당한 게 아닌가. 뉴스기사왈, 한창 인기리 있던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드라마가 끝나고 화보촬영차 케이프타운을 갔다가 교민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현지 강도를 당한 것. 3일 만엔가 바로 돌아갔다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 게다가 복귀 편 항공기를 김태희랑 같이 타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내에서는 볼 수 없었는데 대체 어디 있었던 거지? 아! 최소한 비지니스를 탔겠구나. 윽.
그래도 김희선 이후로 한국 최고의 미녀라던 김태희를 실물로 봤다는 행운을 거머쥔 것으로 만족했다. 다만 키는 예상보다 적었고 160cm이 안되더라. 158? 우리 아내도 160인데.ㅋ
#5-3.
남아공 항공권을 끊을 때부터 홍콩을 미리 염두에 둔 건 아니었는데 마침 남아공항공이 한국까지 취항이 안된 것도 있었고 홍콩 경유가 가장 저렴하면서 시. 공간적으로도 딱 알맞춤이었다. 그래서 홍콩 경유시간을 3박 4일 정도로 넉넉히 잡아놨었다.
홍콩은 1997년 중국으로 영구 반환되었지만 여전히 싱가포르와 비슷한 도시국가처럼 운영되고 있는 나라 같은 나라가 아닌 도시다. 그리고 홍콩은 꼭 한번 가봐야 하는 야경 명소 중의 명소. 사실은 그거 하나 보고 경유지로 찍은 거긴 하다. 일단 나한테 찍히면 하고 보는 게 바로 나다. 그런 명언도 있잖나.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일단 하고 보자'
옛다, 그래서 홍콩에서 배 타고 한 시간이면 가는 마카오도 풀셋으로 돌아다녔다. 결국 이번 배낭여행도 3국을 다녀온 셈이다.
휴학을 할 수 없었던 ROTC 후보생(지금은 할 수 있다는 것 같다)으로서, 그리고 이때 아니면 외국 배낭여행을 현실적으로 갈 수 없었던 나로서 스스로 정의한 '대학낭만'의 두 가지 중 하나를 두 번의 배낭여행으로 총 9개국+3개국을 다녀오고서 군대에 갈 수 있어서 한결 뿌듯했다. 나머지 하나인 캠퍼스낭만:잔디밭 눕기는 영영 못했던 걸로 졸업장을 받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