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 다운 길

현장 지휘관의 감각

82년생:엉뚱한 자서전

by 아이히어iHea

#6.

2006.12.21.(목)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H대대장님이 새로 부임하신 지 3주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당시 정보과장대리였다.

오전 당직(내 당직이 아니라) 지휘참모 보고가 끝나고 일상업무를 하고 있던 지휘통제실(지통실)로 11시 전후전화벨이 울렸다. 동기인 교육장교 K가 당겨 받았다. 또 연대에서 뭘 시키려나보다 했다.

“네?! 아, 알겠습니다."

“뭔데?”

“아, x발 y 됐어. 3중대에서 탈영했대!”

“뭐?!!!”

교육장교는 바로 대대장실로 튀어갔다. 나는 전 참모, 중대장님들께 비상이라며 지통실로 긴급히 모이시라고 연락을 돌렸다. 곧장 대대장님께서 지통실에 자리하시고, 부리나케들 인사, 정보, 작전, 군수, 교육, 통신장교, 1, 2, 3, 본부중대장님, 주임원사가 자리하셨다. 4중대장님은 독립중대라 유선상으로 대기하셨다. 그리고 5대기(5분대기조)도 바로 비상이 걸렸다.


3중대장님이 사건 발생 보고를 하셨다.

“9시경 오전일과에 앞서 인원체크를 하는데 T(탈영병이라 T로 하겠다)가 없는 것을 알고 중대를 샅샅이 찾았으나 흔적이 없어 대대로 보고한 상황입니다."

“3중대장! 사람이 없어졌으면 바로 보고를 해야지 지금 몇 시야? 2시간 동안 뭐 했나?!"

“죄, 죄송합니다.”

대대장님은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꾸지람은 후순위였고 각 참모와 중대장들에게 즉각 지휘조치에 나서셨다. 먼저 연대에 보고하고, 동시에 사단 수색대대에 수색견을 요청하셨으며, 인근 대대에도 연락해서 5대기 출동을 지원해 달라고 하셨다. 그나마 다행인 건 총기는 그대로 있어서 무장탈영이 아니었단 점이다.


대대 지통실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3중대는 전 인원이 T의 실오라기 하나라도 흔적을 더 찾기 위해 막사는 물론 대대 주둔지 주변을 한번 더 꼼꼼히 뒤지고 있었다. 곧이어 사단 수색대대에서 수색견 두 마리가 도착했고 3중대에서는 T의 주황색 활동복을 가져다가 냄새를 충분히 맡도록 한 상태에서 3중대 뒤편 구릉과 사격장 주변으로 수색을 시켰다. 주임원사는 각 중대 행정보급관(행보관)과 인근부대 주임원사들께 연락해서 방산 및 양구군 버스터미널 등 T가 양구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길목을 막고 주변을 좀 찾아보라고 협조요청을 하셨다. 우리 대대 및 인근 대대 5대기가 출동하자 대대장님은 수색정찰 구역을 정해주시며 수색하라고 지시하셨다. 나는 정보과장대리로서 지통실을 지키며 교육장교와 함께 상황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 시간 여가 지나도록 별다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와중에 연대장님 1호차가 막 도착하셨다. 이러쿵저러쿵 보고가 끝나갈 때쯤 연대장님께서 2대대 5대기도 지원받으라 하셨다. 우리는 1대대였고 2대대는 연대 옆 다른 면에 주둔하고 있어서 방산까지는 군용 트럭(우리는 60:육공이라 부른다)으로도 시간이 꽤 걸리는 거리였다. 역시 5대기는 5대기다. 얼마 지나지 않아 2대대 5대기 소대장이 인원들을 데려왔다.

대대장님께서 지통실에서 감각적으로 ‘특별’한 지시를 내게 하셨다.

“정보과장! 네가 정보과장이고하니 이 지역 지형지물이랑 산이고 등등 잘 알 거니까 네가 지원온 5대기를 데리고 주둔지 앞 마을 주변으로 수색해 봐”

“네에?? 아, 알겠습니다.”


나는 사실 지금은 1대대 소속이지만 불과 대여섯 달 전까지는 2대대 소속이었다. 그래서 2대대 인원들이 좀 익숙하긴 했다. 게다가 지금 5대기가 내가 있던 5중대 순번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마도 6월 말에 새로 전입 왔을 소대장은 얼굴을 모르겠는데 상. 병장급 서너 명은 얼굴이 익숙했다.

“어?! 부중댐이 여기 계셨습니까?”

얼굴을 잘 아는 분대장이 물었다. 1대대로 오기 전 아주 잠깐 부중대장 직위였었다.

일단 실제 사건이다 보니 60을 함께 타고 대대 앞 마을로 내려갔다. 도착하자마자 지통실로부터 무전이 왔는데, 마을 어르신이 아침에 병사 하나가 담뱃불을 빌리는 것 같은 모습을 목격하셨다고 했다.

옳거니!

“소대장, 5대기는 원래 교리상 최하위부대여서 더 이상 쪼개면 안 되지만 현장상황에 맞춰서 둘로 쪼갠다. 1조는 내가 맡고 2조는 네가 맡는다. 2조는 마을 쪽을 수색하고 우리는 마을 앞 강 주변을 수색한다. 상황 발생하면 바로 보고해라. 알겠지? 그리고 뒤에 세 명은 내가 데려간다."

세 명은 내가 얼굴을 아는 병사들이었다. 지휘하기가 편할 거니. 그렇게 나는 5대기를 둘로 쪼개 5명을 데리고 강가 쪽으로 내려왔다.


강가를 수색하기 시작한 지 한 시간여 남짓. 1조 맨 뒤에 자리한 분대장(b라 한다)이 무전기로 보고해 왔다.

"정보과장님, 방금 마을 쪽 10시 방향 산 능선에서 사람 같아 보이는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산이 높아 보여서 그런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래? 지금은 뭐가 없는데?"

"아까 제가 봤을 때는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가 없어졌는데, 아마도 반대편으로 넘어간 모양입니다."

ㅇㅋ 저거다!

"우리는 산 능선으로 간다. 따라와!" 1조에게 전부 지시하고 내가 앞장섰다.

"2조, 2조, 여기는 1조. 우리는 정면 10시 방향 산 능선으로 올라간다. 너희는 계속 수색 유지하고 특이사항 있으면 보고할 것. 이상!"

그날따라 산에는 엊그제 온 눈으로 최소한 발목 이상은 쌓여있었다. 그리고 올라가는 길은 음지여서 그런지 눈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나를 선두로 뒤에 다섯 명이 일렬로 세네 걸음 간격으로 앞만 보고 산 능선상을 목표로 계속 올라갔다. 뒤에 일병급 두 명이 조금 처졌으나 상관없이 계속 한 시간 이상을 올라갔다. 나중에서야 확인해 본 바로는 그 산은 무명 600~800 고지되는 산이었다. 방산면 자체가 지대가 높은 데라.


한 시간여 반을 죽어라 능선상에 올라서니 바로 전투화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것이 아닌가. 곧장 지통실로 무전을 쳤다.

"여기는 정보과장, 현재 마을 뒤 무명 800 고지 능선인데 전투화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대략 260~270 같아 보이는데 혹시 T의 전투화 사이즈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2~3분 뒤 무전이 다시 왔다.

"정보과장님, 265 정도 된다고 합니다." 작전병이 대답했다.

"ㅇㅋ. 이 쪽 능선에서 전투화 방향이 xx고개 방향으로 계속 찍혀있어서 쫓아가볼 테니까 대대장님께 보고해 줘."

뒤쳐진 일병급 두 명이 다 올라온 뒤 다 같이 전투화 발자국 길이랑 방향 등을 한번 더 확인하고서 가쁜 숨도 한번 더 호흡을 가다듬었다.

"T의 것이 맞는 것 같다. b병장, 대단한데! 잘했어! 이거 계속 쫓아가면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만 더 힘내자!"

내가 선두, 그리고 올라온 순서 그대로 발자국을 왼쪽에 두고 능선에서 천천히 쫒기 시작했다. 그런데 약 10여분이 지났을 까. 갑자기 옆에서 어디서 날아온 건지 500MD(잠자리처럼 생겼고, 보통 전방사단의 경우 사단장님의 헬기로 통한다) 헬기가 날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코 옆에서 날면서 수색을 보조해 주기 시작했다. 한 시간을 더 쫓아가다가 보니 갑자기 발자국이 순간 사라졌다. 잠깐 멈추고 주위를 한 바퀴 빙 둘러봤더니 바로 9시 방향 아래 계곡 쪽으로 사람 형체 하나가 저~기 멀리서 아래쪽으로 계속 내려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야이 새x야아~~~ 야인마~~"

들릴 턱이 없다.

"이제 다 잡았다. 전부 조심히 따라 내려와라."


30분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산을 쫓아 내려와서 바로 1m를 앞에 두고 온몸을 던져 T를 덮쳤다.

"(숨을 쉭쉭 몰아쉬며) 야, 왜 탈영한 거야?"

"추.. 추.... 추워서요~~"

"너 집이 어디야?"

"광준데요.. 내년 3월에 다시 오면 안 될까요?"

춥다고 탈영했으면서 빨리 도망치려고 야상도 안 입고 전투복 상의만 두벌 껴입고 있었다. 추워 죽겠는데.

T를 잡고 산 아래 도로까지 겨우 내려왔더니 주임원사께서 대기하고 계셨다. T를 인계하고 주임원사가 저를 안아주시는데 뜨거운 눈물이 핑 돌았다. 무슨 감정이길래 그랬는지 여전히 헷갈린다. T는 헌병대에 가서 영창을 몇 주 갔다 와서는 다른 부대로 갔단다.

대대 지통실로 금의환향(?) 했더니 기다리고 계시던 연대장님께서 강하게 악수를 해주시고서는 한마디 해주시고 돌아가셨다.

"수고했다."


그리고 다음날 사단이 이런 평가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군단으로부터.

"너희 부대는 국지도발 대비태세가 잘 돼 있는 부대다!"

중대 탈영병 사건이 군단까지 보고돼서 사단이 국지도발 대비태세가 잘 된 부대라고 칭찬을 받는 아이러니라니.


2007년 1월 초.

2007년 연대 제1호로 나랑 5대기 1조 다섯 명이 연대장 표창을 받았다. 나는 간부라 포상휴가 없이 표창장만 받았지만 병사들은 전부다 4박 5일 포상휴가도 같이 받았다. 대신 대대에 돌아오니 이걸 포상휴가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모호한 부상이 하나 있긴 했다.

대대장님이 대대 전 간부들을 지통실에 모아두고 지금부터 한 달간 휴가 금지령을 내리셨는데 나만 예외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만 2007년 1월에 내 연차를 써서 포상휴가 아닌 포상휴가를 다녀올 수 있었다.




#6-1.

탈영병 사건 이후부터 나는 대대장님의 최애 총애를 받는 간부가 되었다. 그래서 항상 일과가 끝나고 오후 5시가 넘으면 대대장님과 함께 1호차 뒤에 탑승해서 대대 근처에 있는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인 두타연(지금은 출입할 수 있는 것으로 안다)으로 가서 거의 매일 달리기를 했다. 대대장님 보조를 맞춰서.

게다가 대대장으로 계실 동안 나는 한 번도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다. 인사과장이던 동기 K는 2~3일에 한 번씩은 씩씩 거렸던 것 같다.


그런 대대장님이 대대장 임기를 끝나고 사단 군수참모로 영전하셨었는데, 내가 대위일 때쯤엔가 교육장교이던 동기 K로부터 오랜만에 연락 한 통을 받았는데 H 중령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K는 지금도 현역이고 몇 해전 중령으로 진급했다. 대대장님이 간암인지 폐암을 안고 계셨단다. 병세가 악화돼서 돌아가셨단다. 대대장 하실 때는 건강하시더니.


#6-2.

이 에피소드는 #7.에 가서 적는 게 나을 법하다. 대위로 진급해서 중대장을 특전사 13공수로 가게 됐는데, 이 사건 당시 연대장이셨던 모 대령께서 진급하셔서 준장으로 13공수여단장으로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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