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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02. 2015

스피치에세이
<i hear you>

프롤로그: 내가 스피치에세이를 쓰는 이유



네 이야기는 누군가의 영혼에 머물며 그들의 피와 자아와 목적이 될 수도 있어. 그 이야기는 그들을 움직이고 이끌 거다. 그리고 그들이 네 이야기 때문에 무엇을 하게 될지 누가 알겠니. 그게 네 역할이고, 네 재능이야.  

                                                                               - 에린 모겐스턴 <나이트 서커스> 중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머물며 싹을 틔우고 꽃 피우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 아니, 그 전에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 안에서 누군가의 말이 불꽃처럼 타오르며 당신을 꿈꾸게 한 적이 있는지.


우주에 뱉어진 당신의 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별처럼 오래도록 우주 속을 떠다닌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할지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돈이 많은 사람이든 가난뱅이든,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든 가방끈이 짧은 사람이든 한 사람이 입 밖으로 낸 말은 똑같은 우주 안에서 똑같은 공간을 차지하며 똑같은 생명력을 갖고 살아간다. CEO의 목숨과 건설노동자의 목숨이 똑같이 소중하듯이.  


그리하여 말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기회'다. 가진 게 없고 배운 게 없어 이름 없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라도 이 우주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아름다운 발자국을 남기고 죽을 수 있다. 단지 말로써 말이다. 2AM의 노랫말에 이런 대목이 있다. '줄 수 있는 게 이 노래 밖에 없다. 가진 거라곤 이 목소리밖에 없다. 이게 널 웃게 만들 수 있을진 모르지만 그래도 불러본다.' 이 남자의 가난한 노래는 어쩌면 여자의  마음속에 반짝, 하고 밤하늘 별처럼 박혀서 여자의 남은 생을 아름답게 비출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다이아몬드 반지만이 빛나는 유일한 것은 아니다.




내가 처음 스피치를 접한 건 9년 전이다. 시작은 이랬다. 대학교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갑자기 나를 호명하셨다. 이러는 법이 어딨냐는 불평을 구시렁거릴 틈도 없이 교단으로 나가야 했다. 횡설수설, 어리바리, 중구난방, 두루뭉술. 갑자기 주어진 발표에 나 조차도 무슨 말인지 모를 내용을 지껄이고 자리로 돌아왔다. 5분 전만 해도 졸릴 정도로 안락했던 나무의자는 자갈이 깔린 의자처럼 나를 불편하게 했다. 붉어진 얼굴은 원상복구 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 날 마지막 수업에 가지 않았다. 넋 나간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켰다. 검색창에 '발표 잘 하는 법'을 적어넣었다. 엔터. 


'스피치'라는 단어가 스크린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보는 단어였다. 물론 중학생 때 끼고 다닌 노란색 영어단어집에서 'speech 연설'이라고 외운 적은 있지만 먼 훗날 이렇게 다시 만나 나와 인연을 맺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사이트를 탐색했다. 스피치 학원이란 게 꽤 많았다. 하지만 대학생이던 내게는 소화하기 힘든 수강료였다. 한참을 뒤지는데 '스피치 동호회'란 존재가 구세주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1회에 5000원의 다과비만 내면 발표 연습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멍석이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9년을 꾸준히 'speech'란 단어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9년이라니! 물론 스피치를 연습하고  한두 달 후에는 수업시간에 갑자기 불려나가도 차분하게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스피치와 계속 연을 이어나간 이유는 단순히 말을 잘 하려는 목적을 넘어, '말'과 '소통'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처음 1년은 학교에서 발표를 잘 하려고, 다음 1년은 취업 면접을 잘 보려고, 그 다음 1년은 평상시에도 말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스피치 모임에 나갔지만 3년이 지나고는 점점 그 이유가 바뀌어간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 듣는 재미의 참맛을 알게 됐다. 시간이  갈수록 말하기 보단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모임에 나가는 나를 발견했다. 더불어 나의 내면이 확장되어감을 느꼈다. 




사실 난 화법, 화술, 이기는 대화법과 같은 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말'이란 건 법칙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며 더군다나 이기고 지는 게임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말'이란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더 참신한 표현을 생각하려 했지만 더 좋은 건 찾지 못했다. 말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고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은 단순히 '말 잘하는 법'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영혼을 잘 담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스피치에세이 i hear you를 시작한다. '스피치' 뒤에 '에세이'를 붙인 작가의 의도를 눈치 채 주길 바란다. 서점에서 많이 보아 온 이론적, 자기계발적 스피치 책을 쓰고 싶진 않았다. 그런 방법론적인 스피치 책을 쓰기에 나는 학술적 지식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내가 쓰고 싶은 건 그야말로 '에세이', 말을 하고 듣는 '영혼의 활동'에 대해 9년 간 사유한 것들을 자연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하고 싶다. 'i hear you'라고 이름 붙인 이유도 눈치 채 주면 좋겠다.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이 시그니처처럼 하는 말 'i see you'는 '당신의 외면 너머의 영혼을 봅니다'란 의미다. 'i hear you' 또한 '당신의 말 너머의 영혼을 봅니다'란 뜻으로 이 책에서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함축한 시그니처다.   


이 책은 s.p.e.e.c.h란 단어 첫머리마다 타이틀이 부여돼 6챕터로 이루어졌다. S:soul/ P:peace/ E:energy/ E:emotion/ C:choice/ H:humanity. 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영혼, 평온함, 에너지, 감정, 선택, 인간미에 대해서 9년 동안 스피치 동호회 혹은 스피치 학원 등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느낀 것들을 펼쳐보려 한다. '안 떨고 발표하기'와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부터 말과 소통에 대한 추상적인 고찰까지 다양하게 담아내려 한다. 가진 것 없고 부족한 내가 이곳에 적힐 나의 '말'들로 우주에 별 하나를 만들고 그 별이 당신  마음속에 내려가 귀한 다이아몬드가 되어 빛을 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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