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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02. 2015

S:soul 영성에 닿는 말

chapter 1



이성과 감성 후의 미래: 영성의 시대


이성과 감성.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두 가지 루트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려 한다. ‘영성’이다. 이성과 감성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주된 요소라지만 영성이 더해질 때 비로소 깊고 완전한 소통이 이뤄진다. 영성이라고 해서 종교적인 이야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영혼 없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듯이 영성과  상관없는 인간은 없다. 


회사에서의 업무보고는 온전히 이성에 침투하고, 연인에게 속삭이는 사랑의 노랫말은 온전히 감성에 가 닿는다. 하지만 어떤 말은 듣는 이의 영적 영역으로 들어와 영혼을 울리기도 한다. 가령 마더 테레사의 글을 읽을 땐 내 안의 이성과 감성 이상의 것이 반응함을 느낀다. 이것이 영성이다. 칼로 자르듯이 이성에만, 감성에만, 영성에만 가 닿는 말은 없겠지만 세 가지 영역 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영성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점점 이성보다는 감성, 감성보다는 영성을 중요시하는 시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출간된 <드림 소사이어티 Dream Society>의 저자인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우리가 이성보다는 감성이 중요해진 시대를 산다고 주장했다. TV만 틀어 봐도 그의 예측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제품의 기능을 내세우던 광고들이 주였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은 대부분 광고들이 감성코드를 자극한다. 가령 ‘나이키’는 자사 운동화의 우수한 통풍 기능이나 탄력 있는 쿠션에 대해 어필하는 대신 한계에 도전하는 한 스포츠맨의 결의에 찬 눈빛을 비출 뿐이다. 나이키가 파는 것은 단순한 운동화 그 이상의 ‘도전정신’이다. 


이렇듯 롤프 옌센의 말대로 이성보다는 감성이 중요한 시대가 도래했고, 이젠 그 다음의 것을 내다볼 때가 온 것 같다.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은 영성의 시대다. 우리는 자신의 영성을 늘 돌봐야 하며 영성이 충만한 인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성-감성-영성을 동시에 움직이는 말, 특히 영성에 가 닿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영적으로 성숙한 존재가 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영적인 삶을 산 인디언들은 모든 만물 속에 깃든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였고 그것들과 영적인 교감을 이뤄냈다. 인디언들은 영적 성장을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꼽았고 일상의 모든 행위를 신성한 의례로 만들었으며 일상과 종교를 하나로 인식했다. 그들은 영적인 말을 할 줄 알았다.  






무엇보다 우리 인디언들은 문자가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말을 더 신뢰했다. 얼굴 흰 사람들과 조약을 맺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가슴에 담긴 말을 곧바로 말할 줄 알았다. 

                                                                        -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중



“당신은 빙빙 돌려서 말하고 있다. 제발 분명하게 말하라!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을 들을 귀와 가슴을 갖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아주 나쁜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제발 부탁하건대, 단순하게 말하라.” 

                                                                                   - 백인 관리에게, 야키마 족 추장




#1. 인디언처럼 말하라 :
우리 가슴에 오는 햇빛처럼 직설적으로 말하라


머리보다는 가슴에서 나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인디언들이다. 인디언의 연설은 단순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힘이 있었다. 그들은 말에 대한 성스러운 믿음을 지녔다. ‘말은 변하지 않는 별들과 같고, 사람의 심장에서 나오는 것이며, 세상을 창조한 위대한 영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영원히 잊지 않는다’고 믿었다. 한마디를 내뱉을 때도 껍데기뿐인 말을 피하고 영혼이 담긴 말을 하려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디언의 말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들의 말은 밤하늘의 별들처럼 영롱하게 듣는 이의 영혼을 건드린다. 언제나 본질을 응시하며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본질을 꿰뚫는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늘 어머니 대지 그리고 하늘과 숲, 작은 동물들과 소통하며 깨어있는 정신으로 자연(본질)과 교감했다. 또한 침묵 속에서 자기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마음의 눈은 너무도 바쁘게 움직인다. 좋은 집, 멋진 옷, 트위터의 이름 모를 팔로워와 같은 하위가치들에 마음을 분산시킨다. 본질을 놓치고 살고 있단 사실 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때문에 현대인의 말은 백화점 진열장에 놓인 상품처럼 화려하지만 울림이 없다. 시를 읊조릴 때 풍기는 향이나, 자연의 광활함에 서려있는 신성함이 없다. 사람의 가슴에 곧장 가 박히는 힘이 없다. 


자본주의 탓일까. 우리는 계산하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다. 시간, 노동력, 기술 등 대부분의 가치가 돈이라는 획일적 가치로 치환되다 보니 언제나 머리를 굴리고 손익을 따져보기 바쁘다. 심지어 말을 할 때도 이런 버릇이 나오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비굴해 보이는 것 아닐까?’, ‘이렇게 말하면 내가 좀 있어 보이려나?’ 끊임없는 계산 속에서 우리는 곧바로 진심을 표현하는 법을 잊고 산다. 마치 화려하지만 불필요한 포장지에 진심이란 알맹이를 세 겹, 네 겹 싸서 상대에게 건네는 꼴이다. 그나마 힘들 게 포장을 벗겼을 때 진심이 들어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없을 때, 우리 마음은 공허하다. 


인디언은 빙빙 돌려 말하는 백인들에게 ‘가슴에 오는 햇빛처럼 직설적으로 말하라’고 요구했다. 허풍이 아니었다. 인디언이 남긴 말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맑고 향기로우며 지혜로 가득 차 있다. 인디언들은 영혼이 담긴 말을 할 줄 알았다. 그것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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