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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Oct 06. 2015

사장님의 덕목




사장님의 덕목
: 황태해장국에 담긴 휴머니즘





“실력이나 명성보다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 능력 또는 소통을 하려는 의지. 전에 다니던 M기타 리페어샵 사장님은 실력이 좋은지 어느 정도 정평이 나 있지만, 기타를 어떻게 세팅해주길 원하는지 관심도 없고 작업에 대한 설명도 전혀 해주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10초 거리에 있는(진짜 10초) R기타 리페어샵은 가게도 작고 손님도 없지만, 선택할 수 있는 세팅 방법들과 그에 따른 각각의 장단점을 아주 열의 있게 설명해 줘서 마음이 놓였다. 실력이야 누가 우위에 있는지 잘 모르지만, 설령 근소하게 M사장님이 더 잘 한다고 해도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R가게로 단골집을 바꿀 수밖에 없다.”


밴드를 꾸려 음악활동을 하는 대학 동기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다. 나 또한 통기타를 사러 낙원상가에 간 적이 있는데 이 집이 저 집 같고, 저 집도 이 집 같아 어떤 가게를 선택해야 할지 영 혼란스러웠다. 여덟 가게 정도를 둘러보며 설명도 듣고 가격도 비교해보며 구석구석 발품을 판 끝에 결국 한 가게를 선택했다. 내가 선택한 그 가게는 여덟 군데 중에 가장 가격이 저렴한 곳도, 규모가 큰 곳도 아니었다. 단지 사장님이 내게 성심성의껏 이것저것을 설명해준 곳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이 사장님 가게로 직행한 것이다. 다른 사장님들에게는 기타를 팔겠다는 의지가 먼저 보였다면, 이 사장님에게는 나로 하여금 좋은 기타를 선택하게끔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이 먼저 보였다. 


어딜 가나 형식적인 친절이 많다. 백화점은 직원들의 친절교육에 공을 들이지만 기성복 같은 친절에는 웬만해선 감동받기가 힘들다. 하지만 내가 지금 소개해줄 황태해장국 사장님은 그렇지가 않다. 이 해장국 집은 언제나 줄을 서서 먹어야 할 만큼 손님들로 북적이는 곳인데, 하여튼 여러모로 독특한 곳이다. 일단 그렇게 긴 줄이 서 있는데도 음식 하나가 나오는데 30분가량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큰 솥에 미리 끓여놓고 바로 퍼주면 될 것을, 사장님은 절대 그러는 법이 없었다. 손님들로 북적이는 점심시간에도 한결같이 한 그릇 한 그릇을 즉석으로 만들었다. 재료 또한 고향에서 농약 없이 재배한 것만을 고수한다. 그래서인지 그 얼큰하고 시원한 맛은 다시 찾아오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한다.


하지만 이 집의 가장 독특한 점은 주인아저씨의 금메달감 소통능력이다. 진한 전라도 사투리로 가족을 대하듯 손님을 대하는데 아무리 냉혈한이라도 사장님의 한 마디에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아따 이 아가씨는 아주 참하게 생겨부렸네. 근데 ‘배고파 죽을 뻔 했어요’가 뭐여~ 참한 얼굴에서 말이여~” 무엇보다 대단한 건 손님에 대한 정보를 잊어버리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때 같이 온 수원 아가씨는 대학원 졸업 했슈? 벌써 시집 가버린 건 아니지? 안부 좀 꼭 전해주드라고~ 아니면 같이 한번 오고!” 오지 않은 사람 안부까지 물으며 근황을 궁금해 하는 사장님의 오지랖에서 따뜻한 인간성이 느껴졌다. 이쯤 되면 이 집의 황태해장국이 얼마나 맛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마음 안에 얼큰하고 뜨끈뜨끈한 인심 한 그릇 채우고 돌아오면 그렇게 속이 든든할 수가 없었다. 이 해장국 집에 빈자리가 없는 건 아마도 사장님의 손맛 플러스, 거부할 수 없는 인간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백화점처럼 세련되게 포장된 친절은 아니지만 황태해장국 사장님의 친절에는 영혼이 담겨 있었다.   


기타가게 사장님, 해장국집 사장님을 보면서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덕목은 다름 아닌 ‘휴머니즘’이란 생각이 들었다. 손님을 돈으로 보지 않는 태도. 손님도 인간인데 지금 저 사장이 돈을 향해 인사하는 건지 나를 향해 인사하는 건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한 명의 손님을 매출 한 건으로 대하지 않고 피가 도는 인간으로 바라보고 소통하려는 노력은 가게 인테리어에 들이는 공만큼이나 중요한 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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