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의 일이 다 거칠어진다.
- 주시경
좋다고 말하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좋다고 말하면 마음이 먼저 알고 기쁨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좋다고 말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 월간 <좋은 생각> 中
#8. 거칠지 않은 말
: 말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
EBS <다큐프라임>이 청소년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영혼의 상처, 언어폭력’편을 본 적 있다. 제작진은 욕설을 쓰지 않는 고등학생 집단과 욕설 없이는 대화가 힘들 정도로 욕설이 심한 고등학생 집단을 나눴다. 그런 후 도미노 블록을 세우는 똑같은 미션을 부여하고 두 집단이 어떻게 과제를 수행하는지 지켜봤다. 결과는 이러했다. 욕설을 쓰지 않는 집단의 아이들은 서로의 말을 존중하고 리더의 의견에 따라주어 도미노를 완성한 반면, 욕설을 많이 쓰는 집단은 한 학생이 의견을 내면 ‘뭔 개소리야’라고 받아치는 식으로 서로를 배려하지 않았고 결국 도미노 세우기 미션도 실패했다. 물론 도미노 실패의 원인이 100% 욕설 때문은 아니겠지만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을 지켜봤을 때 부정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말이 말로써, 욕설이 욕설로써 끝나는 게 아니라 '관계'나 '성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실험이었다.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정신이나 성격,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가 습관처럼 욕을 한다면 그건 단지 그 사람의 언어습관일 뿐이라고 단정하기엔 언어와 정신 사이의 관계가 깊어 보인다. 욕설을 많이 하게 되면 자신과 타인을 향한 인내심이 줄어들고, 사소한 일에도 욱하는 성격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욕은 욕을 하는 사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EBS 제작진은 동일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MRI 촬영을 시도했다. 욕을 자주 하는 학생과 욕을 하지는 않지만 자주 듣는 학생의 뇌를 관찰했다. 그 결과 욕을 한 가해 학생의 뇌에서 감정조절을 담당하는 해마의 크기가 작고 발달이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욕설을 들었던 피해학생의 뇌에서도 해마의 크기가 작고 발달이 느린, 똑같은 현상이 관찰됐다는 것이다. 결국 욕이란 욕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욕이 갖는 에너지의 파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우리의 정신에 손을 뻗치고 있다.
비단 욕설뿐 아니라 유행어나 속어도 쓰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TV에서 한 방송인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평소 남편과 이야기를 나눌 때 ‘겁나’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겁나’는 엄청, 많이라는 의미의 유행어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그녀는 그런 단어 선택이 사랑에 담긴 진심을 훼손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그 단어를 쓰지 않기로 남편과 약속했단다. 대신 ‘정말’, ‘엄청’, ‘많이’라는 단어를 썼다. 요리를 했을 때 남편은 ‘겁나 맛있어’ 대신 ‘엄청 맛있어’라고 말했고, 서로 대화를 할 때 ‘많이 사랑해’, ‘정말 고마워’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둘 사이의 관계가 더욱 진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그 이후부터는 속어나 은어, 유행어를 쓰지 않고 바른말만 쓴다고 털어놨다.
속어나 욕설을 할 때면 기분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 있고 욕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를 종합해 봤을 때 욕이나 속어 등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이유는, 위에서 열거한 모든 근거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근본적인 '말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을 지켜낸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이 말씀하시길,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의 일이 다 거칠어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