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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Oct 12. 2015

봄동산의 선생님  




봄동산의 선생님
(1:1 대화가 필요한 순간)





나는 일대일 대화를 좋아한다. “차 한 잔 하시죠”라는 말을 좋아한다. “소주나 한 잔 하시죠”라는 말도 좋아한다. 그 안에 담긴 개별성을 좋아한다. 누군가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일대일 대화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노트북은 다 좋은데 오디오 소리가 약한 게 단점이다. 어느 날은 늘 듣던 음악을 처음으로 이어폰을 끼고 들었는데 마치 전혀 다른 음악처럼 들렸다. 이렇게 좋은 노래가 내 컴퓨터 안에 있었나? 내가 다른 곡을 잘못 재생한 건가? 하지만 잘못 누른 게 아니었다. 이어폰을 끼고 들은 음악은 그 감동이 훨씬 개별적이고 가깝게 다가와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완전히 새로운 곡을 발견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악기의 소리가 하나하나 다 들렸다. 


중학생 때 나는 지각쟁이였다. 선생님은 지각한 학생들을 때론 엄하게 혼내셨고 때론 부드럽게 타이르셨다. 하지만 순종적인 나의 기본의 성격과는 별개라는 듯, 나의 지각병은 누구의 말에도 순종할 줄을 몰랐다. 중학교 2학년이었고, 계절은 참 좋은 봄날이었다. 나의 담임은 30대 후반의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어느 날 종례가 끝나고 내게 다가오셔서는 같이 나가서 걷자고 말씀하셨다. 안 그래도 숫기가 없던 나는 내게 닥친 지금 상황이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선생님과 단둘이 학교 밖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바로 옆에는 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동산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곳으로 나를 데리고 앞장서서 걸으셨다. 나는 수줍고 어색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반 발짝 뒤에서 선생님을 따라 걸었다.


선생님은 원래도 그랬지만, 나와 함께 걷던 그 날도 말이 많지 않으셨다. 봄의 기운으로 뒤척거리던 나무들, 풀들, 흙들. 아직도 기억에서 생생한 그때의 동산에 우리는 도착했다. 숲길을 따라 걸으며 선생님은 내게 말을 건네셨다. 지각을 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였다. 내가 크면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인데 그때 지각을 하면 그냥 벌서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지금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가지면 회사에 다니게 돼도 지각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을 거라고 하셨다. 봄이어서 그랬는지, 평소보다 훨씬 천천히 걸어서 그랬는지, 내게 말씀하시던 선생님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감미롭게 다가왔다. 마치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처럼 포근하게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지각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토록 많은 조언을 들어왔지만 그날 봄동산에서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는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마음에 들어왔다. 제멋대로인 내 지각병도 처음으로 빼꼼히 그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달라졌다. 아침에 더 긴장했고 회사에 다니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할 줄 알게 됐으며, 지각하지 않는 더 나은 나를 스스로 원하게 됐다. 커서 생각해보니 그때 나의 담임선생님은 참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지각하는 습관은 좋지 않다는 것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려주듯 개별적으로 알려주기 위해 함께 뒷산을 걷자고 제안하셨던 그녀의 마음을 지금에 와서야 헤아려본다. 그 마음을 지금에 와서야 진지하게 생각하고 감사해함이 죄송할 따름이다. 참 예쁜 마음을 가진 분이셨구나... 그녀의 인간적인 마음의 빛이 눈부시다. 다시금 생각해보니 그때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은 지각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한 가지만은 아니었다. 사람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법도 가르쳐주신 셈이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싶을 땐 1:1로 대화해야 한다는 것을 덕분에 알게 됐다. 그 선생님이 문득 보고 싶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절대 지각하지 않고 1시간 먼저 나가 그녀를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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