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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Oct 12. 2015

이토록 잘생긴 배우라니!





이토록 잘생긴 배우라니!
(작디 작은 행동 하나)





한 남자 배우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얼굴은 못 생긴 편에 속하지만 인격자로 알려져 많은 팬층을 거느린 배우였다. 그를 인터뷰하면서 놀란 점이 있어 글로 옮겨 본다. 아, 그 전에 잠깐 영화계 인터뷰 관례에 대해 설명하자면 인터뷰는 보통 개별 인터뷰와 라운드 인터뷰로 나뉜다. 개별 인터뷰는 말 그대로 기자와 배우가 1:1로 하는 인터뷰고, 라운드 인터뷰는 2명~8명의 기자와 한 명의 배우가 1:多로 나누는 인터뷰다. 보통 A급 배우들은 수많은 매체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별 인터뷰 대신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뷰를 할 때 배우들은 으레 삼청동의 한 카페를 한층 또는 통째로 빌려서 1시간 단위로 기자들을 교체해가며 하루 종일 인터뷰에 임한다. 이날 그 남자 배우의 인터뷰도 라운드 인터뷰로 진행됐다.


그날 인터뷰는 다른 때보다 많은 7명의 기자들이 참석한 터라, 카페의 테이블을 다닥다닥 붙여 앉은 채 진행됐다. 크지도 않은 테이블에 각자 노트북을 올려놓고 나면 마우스를 움직일 공간이 부족했다. 나 또한 노트북 오른쪽에 냅킨 하나만 한 작은 공간에 마우스를 올려놓고 또 그 옆 간신히 남은 공간에 커피를 올려놓고 인터뷰에 임했다. 나는 테이블에 조금 늦게 당도한 이유로 그 남자 배우의 옆자리에 앉게 됐는데 이런 저런 질의응답이 오가며 인터뷰가 10분쯤 진행됐을 때 그 배우가 자연스럽게 내 커피 잔을 잡는 것 아니겠는가! ‘어!... 이거 내 커피인데...’ 하고 속으로 당황하려는 찰나, 다행히 그는 그걸 마시는 대신에 다만 자신의 테이블 쪽으로 잔을 당겨 놓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터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나는 살짝 당황한 후에 곧바로 그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우와’ 하고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괜히 인격자는 아니었다.


좁은 테이블 공간에 커피까지 놓고 마우스질을 하는 내 손놀림이 꽤나 어색해 보였나보다. 그 배우는 비교적 넓은 자신의 앞 공간으로 내 커피 잔을 옮겨 놓아 내가 좀 더 넓은 공간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게 뭐 대수인가 싶은 아주 작은 행동이지만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행동도 아니었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활 속에서 습관화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정도로 세심한 액션이 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나조차도 이 커피를 옆으로 조금 옮기면 좋겠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당사자가 불편을 느끼기 전에 먼저 그것을 감지하고 조치를 취할 정도면 배려심이 몸에 밴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보다 마칠 때 그 배우의 얼굴은 한결 내 눈에 잘 생겨보였다.   


그때 ‘배려’라는 키워드와 함께 내게 다가온 깨달음은 ‘때론 행동이 말보다 진실하다’란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저의 장점은 배려심이 깊은 것입니다”라고 백 번 말한다고 해도 정작 배려를 보여야 할 때에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면 그의 말은 아무런 진실도 담지 못한다. 반대로 어떠한 말도 없이 작은 행동 하나로 배려를 보여준다면 그건 백 번의 말보다 강한 힘을 가진다. 잠깐 스치는 표정에서 숨겨둔 진심이 드러나는 것처럼, 작은 행동을 통해서도 말로 담아내지 못한 진심이 담기기 때문이다.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네는 대신 책상 위에 빵 하나 놓고 가는 일, 지하철에서 졸다가도 벌떡 일어나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 취업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동생에게 아무렇지 않게 영화표 하나 끊어주는 일. 그런 작은 행동이 갖는 힘은 생각보다 큰 것이어서 내가 인터뷰 때 그랬듯이, 받은 사람에겐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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