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5. choice
#1. 균형미와 파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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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 <백매白梅>를 직접 본 적이 있다. 매화가지의 꼬부라짐이 춤을 추는 듯 리듬감으로 출렁거렸다. 그 리듬을 타고 달빛 아래 은은하게 빛나는 매화의 낭만이 코끝을 타고 향기로 전해져 왔다. 내가 미술관의 코너를 돌아 이 그림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다른 시간과 다른 세상에 던져진 듯 감동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단지 낭만 때문만은 아니었으며 어렴풋하게 단원의 영혼이 느껴져서였다. 단원의 영혼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낸다면 꼭 이 매화처럼 생겼을 거라 생각했다. 균형미와 파격미가 동시에 느껴지는 이 매화처럼 말이다. 단원의 그림은 오래 들여다보아도 지루하지 않다. 그 이유는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균형미와 그 속에 한 방울 떨어져 있는 파격미 때문이다. 이것이 단원의 그림, 단원 정신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균형미는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그것으로 끝나버리면 생명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 방울의 파격이 있어야 한다. 질서만 있고 변화가 없는 작품에는 인간미가 없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로 균형과 질서만 있고 변화와 파격이 없다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막무가내의 파격은 파격이 아니다. 파격이란 격을 깨뜨리는 것이니 먼저 격이 있고 나서 파격도 가능하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난초를 먼저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 화룡점정처럼 난초 잎 하나를 일탈시키는 멋이야말로 품격 있는 파격미다.
어떤 스피커는 얌전한 난초처럼 완벽한 말하기를 한다. 흠집 하나 없는 논리와 말투. 하지만 완벽함과 감동은 늘 일치하는 것이 아니어서 이런 스피치는 감동 대신 지루함을 주곤 한다. 한가닥 빠져나오는 난초 잎의 파격미가 더해진다면 그의 스피치는 한결 생동감을 얻을 것이다. 조리 있고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하다가도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전할 때는 비논리적이고 직관에만 의존하는 한 마디를 던지는 것도 파격이 되겠다. 유머 역시 파격이다. 촘촘한 질서로 짜여진 무채색의 카펫에 아주 작지만 강렬한 붉은 색의 문양 하나를 보태는 것. 그리하여 시각적으로 지루하거나 밋밋하지 않은 카펫을 짜내는 것이 유머 있는 스피치를 하는 일이다. 다만 유머를 할 때 조심할 것은 파격이란 말이 원래 그러하듯 격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이다. 조리 있고 질서 있는 말의 틀이 먼저이며, 그런 다음 그 귀퉁이 하나를 깨부수는 것이 유머이다. 시종일관 웃음을 유도하려고 애쓴다면 그것은 안정된 틀 없이 무조건 깨부수고 보는 위태로운 일이 될 것이다.
영혼이 느껴지는 말, 매력이 넘쳐흐르는 말이란 완벽하게 짜여진 말이 아니라 98%의 진지함을 바탕으로 2%의 엉뚱함이 섞여진 말이다. 과하지 않은 파격미를 머금은 이런 말은 달빛 아래 꼬부라진 매화가지의 낭만을 빼닮았다.